'중년 좌파' vs 'MZ 우파'?…세대론, '망국적 지역주의'의 새로운 버전

[박세열 칼럼] '세대주의'는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

지역주의의 기원을 흔히 박정희에서 찾지만, 지역주의가 '우리가 남이가'(1992년 초원복국집에서 부산 출신 김기춘이 한 말)로 상징되는 독특한 정신 문화로서 정치인들에 의해 남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선거 때부터다. 신군부 독재의 핵심 인물 노태우는 '보통사람'을 강조하면서 갑자기 '3김 청산론'을 '망국적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이 '3김 청산론'에 가장 열광했던 게 당시 조선일보다.

'독재 타도'가 표면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선거 전략으로서 '지역주의'가 민주주의의 열풍을 타고 사람들의 내심에 스며든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부족한 '정통성'에 대한 심적 두려움의 발로로 믿을만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학연, 혈연의 연장선으로서 영남에 공을 들였다면,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은 '선거 심리전술'로서 유권자들에게 이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여론전 방식을 고도화했다. 쉽게 말해 당시엔 '전라도의 김대중'만은 안 된다는 정서가 필요했다.

지금 지역주의는 다소 변형된 상태로 유통된다. 호남의 민주당 몰표와 TK의 국민의힘 몰표라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지역주의를 공론장에서 제기하는 건 인종차별론자 수준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게 보편적, 윤리적 상식으로 통한다. 지역주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 혹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되 존재하는 것이 됐다. 마치 인종주의처럼.

지금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정치 여론과 선거공학 차원의 '세대주의', 혹은 '세대감정'은 어쩌면 정치 캠페인으로서 '지역주의', '지역감정'의 망국적 고질병을 계승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대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지역주의' 선거전략의 대체재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조합해 본다.) 이를테면 지금 세대주의는 과거 지역주의가 해 왔던 역할로 선거판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걸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게 이준석 같은 무능한 선거 기술자다.

이준석은 한때 '세대 포위론'을 내세웠다. 이준석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강했던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공치사로 여기는 착각 속에 빠져 있지만, 선거 공학적으로만 따졌을 때 이 갈라치기 전략은 어느정도 통했다. 급기야 그는 2030 세대(특히 남성)와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의 노년층으로 민주당 주지지층인 40~50대를 '포위'하는 형국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에 '사다리 걷어차기' 프레임을 씌워 세대 감정을 고양시키고, n86세대를 콕 찍어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검찰이 가세해 천문학적 돈이 오고간 '재개발 사업'(대장동 개발 비리)을 얹었다. 무능력한 윤석열은 이 바람에 올라타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2024년 총선에도 '이준석 없는 이준석 전략'이 메인이었다. 73년생 보수 정치인 한동훈을 내건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은 '4050 세대'를 집중적으로 때렸다. 조선일보의 작년 3월 24일자 기사는 백미였다. 제목은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 무엇을 누릴 걸 다 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년에 이르면 세상일에 미혹돼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늘의 뜻마저 알게 된다고 했다. 마흔 살 불혹(不惑)과 쉰 살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다. 이 무르익은 나이엔 삶의 이치를 깨달아 노인과 자식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거라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진보 중년'의 시대가 닥치기 전까지는."

조선일보는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라고 분석한다. '배고픔 모른 X세대' 진보 중년이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지 않고, 이기주의자가 되어 엇나간다는 비판이다. 조선일보가 소개한 2030의 반응이란 건 "정규직을 독식하고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값 상승 덕을 본 중년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정치 구도를 왜곡한다", "우린 상승의 기회 자체가 박탈됐는데 중년 좌파는 'MZ는 역사의식이 없다'고 훈계만 한다"는 성토다.

게으른 세대 갈라치기 전법이었다. 이준석류의 이런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스피커가 된 조선일보의 논리가 "호남은 소외되고 영남만 발전시켰다"거나 "호남은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빨갱이들"이라는 '지역 갈라치기'와 그 '성분' 면에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조선일보의 '엑스세대론'은 최근 '영포티 논쟁'으로 발전한다. 극우 커뮤니티 등에서는 특정 세대에 '혐오'와 '조롱'을 덧씌우며 이를 '놀이'처럼 향유한다. 보수 경제지들은 2030 세대와 4050 세대, 그리고 '은퇴 세대'를 나누고 가른다. 특히 부동산 관련 보도를 할 때 도드라진다. 문재인 정부 시절 보수 경제지는 대출을 죄고, 부동산세를 올리는 정책을 비난하며 '영끌'과 '빚투'란 신조어를 청년 앞에 단골로 가져다 붙였다.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기사들이지만, 실제 통계에 따르면 '2030 주택 구입'의 '영끌론'은 엉터리였다. 청년 세대의 주택 구매는 '영끌'보다는 '부모의 도움' 등에 따른 경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물론 이런 '부모 찬스'도 결국 '흙수저 청년 불만'으로 환원돼 다시 '세대 갈등론'으로 사용됐지만 말이다.

매일경제 2018년 9월 18일자 기사 제목은 "세대갈등 번진 집값…'노력없이 욕심만' vs '기성세대 배만 불려'"다. 이 기사는 "수도권 집값 폭등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주택자나 비수도권 지역 2030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에 '노력 없이 욕심만 낸다'는 기성세대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세대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부류의 기사들 속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로 2030은 강남 입성 못한다', '4050 세대가 2030 세대의 렌트비를 착취한다'는 식의 담론들이 계속 나온다.

있는 현상 그대로를 그린 것이라고? 지역주의를 보면서 '있는 현상 그대로', 인종차별을 보면서 '있는 현상 그대로'라고 강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그런 게 아니다. 세대간 자산 격차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이를 대결구도로 보는 건 다른 문제다. 세대론은 어쩌면 현대판 '지역주의론'이다. 이를테면 서울 강남에서 자란 20대와 시골에서 상경해 서울에 정착하려는 20대의 욕망과 가치관이 같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자수성가한 4050 세대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성공한 4050 세대의 욕망과 가치관이 같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나마 우리 사회는 지역주의나 인종주의 같은 걸 겪으면서, 공론장에서 이런 주제를 다룰 땐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무비판적 '세대주의'에도 비슷한 합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준석은 '청년'과 '노인'의 연합을 통해 중간 세대를 갈라치기하는 '세대포위론'을 주장한 바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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