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당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프레시안books] 엘리자베스 코멘의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짧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전반적인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그 불편함은 크게 세 가지 원인에서 유래했다.

첫째는 의학에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타자화하고, 소외시키고, 심지어 해를 끼친 역사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잔혹하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히스테리'란 말은 '자궁'에서 유래했다. 여성의 몸에는 남성에게 없는 자궁이란 기관이 있다. 그 자궁이 몸속을 멋대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여성은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이며, 걸핏하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는 생각은 오래도록 의학계를 지배했다. 그래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우울증이 생긴 여성에게는 '코 근처에 매캐한 물질을, 질 근처에 향기 나는 물질을 놓아 자궁이 제자리로 내려가도록 꼬드겨야 한다'는 조언이 유행했다. 영화나 소설에서 여성이 정신을 잃으면 손수건에 브랜디를 적셔 코에 갖다 대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 정도라면 애교로 봐줄 수 있겠다. 하지만, '과도한 지적 자극이 히스테리를 유발한다고 믿어 여성을 최대한 무지하고 온순하고 나태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몇 달씩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이면서 모든 지적, 창의적 활동을 차단'한 소위 '안정 요법'이라든지, 변비나 과민성 대장 증상을 고친답시고 결장을 잘라낸다든지, 여성의 우울증, 마비, 실명을 초래하는 자위 행위를 막기 위해 음핵을 잘라내는 행위는 실제로 여성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하고 많은 경우 영구적인 장애나 사망을 초래했다.

저자는 방대한 내용을 철저히 조사했다. 나는 의학사에 문외한이 아니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책은 영리하게도 길고 끔찍한 기록을 신체 계통별로 정리했다. 피부, 뼈, 근육, 혈액, 호흡, 소화기, 비뇨기, 생식계, 면역, 내분비, 그리고 신경 및 정신과 영역으로 나눠 요령 있게 요약한 덕에 비슷한 내용도 반복되는 느낌 없이 읽히며, 이야기가 질서 있게 매듭지어진다.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서술의 해상도가 낮다는 점이다. 지금은 첨단과학 중 으뜸이요(의학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자), 인류의 운명을 바꿀 기술로 꼽히지만, 사실 의학이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200년 전에는 마취를 하지 않은 채 팔다리를 잘라냈다. 그전까지 기나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의학은 주술이거나 사기이거나, 사람 잡는 농담이었다. 그러니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치료와 관행 중 적지 않은 것들은 의학이 여성을 특별히 잔혹하게 대했다기보다 의학 자체의 한계, 또는 그 시대 전체의 무지몽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 분만 합병증으로 자주 생겼던 질-방광 누공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결코 치료하기가 쉽지 않았다. 의사들이 특별히 여성의 고통에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의학의 수준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지금까지도 의료계가 여성의 판단을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예를 드는데, 그 또한 적절치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과 속눈썹이 빠진다든지, 유방절제술을 받고 변해버린 모습이 환자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임을 강조하며, 그런 걱정에 빠진 환자를 동료 의사들이 비웃는 모습이 '역겨웠다'고 쓰는 대목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나는 저자보다 거의 20년 먼저, 미국보다 훨씬 보수적인 한국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수많은 암 환자를 봤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는 의사는 결코 보지 못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미국에서는 특별히 못된 녀석들만 의대에 가나?'라고 생각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또한 여성의 호소나 의사가 무시된다며 예로 든 성형수술이나 코로나 백신 부작용은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려해야 할 수많은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문제다. 성형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그 자체가 성형업계의 만트라가 아닐까?)이라는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며, 코로나 때 의료계는 사망자가 늘고 유행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짜 뉴스와 싸워가며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예시를 조금 줄이더라도 각각의 예를 좀더 공들여 분석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정직하게 써주었더라면 오히려 호소력이 있었을 것 같다. 조금 비슷한 구석만 있으면 한꺼번에 싸잡아서 여성을 경시했다고 몰아붙인다는 느낌을 주는 탓에 주장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그대로 세 번째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결론>에서 '이 책은 의학 시스템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거나 지금의 시스템을 만든 남성들을 비난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며, 인간적인 의료, 약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의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기에는 본문의 서술 방식이 너무 강하고 단정적이다. 예컨대 '지금도 태아와 비교할 때 임신 중 여성의 건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라든지, '평균적인 교육을 받은 의과대학 졸업생은 음핵의 위치와 구조, 기능에 거의 무지하다' 같은 말은 의아할 따름이다. 의사가 과민성 대장 증상으로 찾아온 환자를 '까다롭고 성질이 괴팍할 거라고 예단해서 쉽사리 짜증이 난다'거나, 환자에게 "있잖아, 자기야, 남자친구라도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때?"라고 조언을 한다는 대목은 아무리 비유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가? 이런 악의적인 서술 방식은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오히려 바람직한 의료가 어떤 것인지 차분히 생각해보는데 방해가 된다.

본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털끝만치라도 움직이려면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대신, 함께 생각해보자고 초대해야 한다. 아무리 어처구니없고 불의한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글이란 자비로워야 힘을 갖는다.

나의 불편함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성실한 조사와 공들인 서술로 쓰인 노작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고를 조금 확장해 '여성'의 자리에 '모든 소수자와 약자'를 대입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저자도 몇 차례 강조했듯, 의학은 당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취약한 상태인 사람의 몸과 정신을 다루기 때문에 그 영향이 직접적이고 심대하다. 빈곤층, 소수 인종과 소수 민족, 장애인,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에게 의학이 저지른 과오와 폭력을 증언하자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어찌 보면 여성은 '사회적 약자 중 가장 다수인 집단'이다. 그런 여성조차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이토록 광범위하게 차별받고, 비인간적으로 대우받고, 악마화되었다는 사실, 그런 일이 지금까지도 완전히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다른 소수자와 약자 집단이 어떤 식으로 취급되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더 나은 시스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존중받는 의료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신과 나의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실천이다.

▲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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