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책임 회피, '나중에' 정치
문재인 전 대통령 근황 이야기부터 해보자. 지난 11일 문 전 대통령은 "차별방지법을 우리가 지금까지 입법하지 못한 것은 정치의 실패이며,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고백하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입법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SNS를 통해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책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추천하면서 쓴 글이다.
홍 교수 본인이 "입법이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분"이라고 지적했듯, 차별금지법에 대한 문재인 정부·민주당의 입장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일이다. 2017년 '문재인 민주당' 시절 일어난 일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나중에' 사건이었다.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에게 성소수자 인권 관련 질문을 하려는 한 시민을 둘러싸고 당원들이 "나중에! 나중에!"를 외친 것이 민주당의 '인권 침묵'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한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역시 지난해 대선·전당대회 국면에서 각각 차별금지법을 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나중에'를 천명한 바 있다. 세 대표 모두가 그 필요성'은' 인정한 법, 나아가 지난 1997년 김대중 총재 당시부터 제정 필요성이 표명됐던 이 법이 거대 여당 민주당의 가치와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이 법은 왜 항상 미뤄졌는가?
"종교계 등의 불신과 반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문 전 대통령의 말은 눈길을 끈다. 진심이길 바라지만 설득하지 '못한' 것인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따라야겠다. '리스크는 크고 실익은 적다'는 국회의 셈법은 문 정부 당시에도 공공연했다. 물론 인정한다. 차별금지법은 현실적으로 소수 의제다. 당 안팎 종교계와 야당은 반발할 것인데, 당 내부의 인기요소로도 작용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시민사회가 문 전 대통령의 태도를 비판해온 이유는 그가 스스로, 뒤늦게, 일부나마 자인한 "책임"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사회적 논의조차 방기한 채 '나중에'를 외치는 사이, 민주당 내에서 차별금지 의제는 반대가 아닌 무관심을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10만 당원 입당의 '팬덤정치'를 이끌었고 180석의 '슈퍼여당'과 함께 했던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아이러니 아닌가.
차별금지법에 '나중에'를 외치는 일은 이재명의 '국민주권정부'와 정청래의 '당원주권정당'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일단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이 대통령, 지난해 7월 기자회견) "해결할 과제가 너무 많다"(정 대표, 같은달 당대표 선거 토론회)는 등의 말은 문 전 대통령의 지난 입장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아서, 누군가는 문 전 대통령의 입법 촉구를 두고 '지금의 정부·여당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오래된 비겁함을 새삼 꺼내어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차별금지법을 대하는 민주당 전현직 대표들의 상통하는 태도가 '당원주권'을 부르짖는 현 민주당의 맹점을 꼬집기에 더 없이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문 전 대통령이 본격화를 알린 팬덤정치와 그 응용판인 현 민주당의 당원주권주의, 모두 민심이나 당심을 이 같은 '책임 회피'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다.
당원주권주의와 권력지향 포퓰리즘
두 차례의 '명청갈등' 논란을 뚫고 1인 1표제 당헌 개정을 이뤄낸 정 대표는 "진정한 당원주권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묵묵하게 해야 되는 일들에 대한 수요가 좀 줄지 않을까"(권칠승), "대중추수가 과도화된 나머지 극우유튜버의 전횡에 좌지우지되는 사례"(이언주)라는 등의 지적은 이미 민주당에서 우려를 넘어선 현실의 단면에 가깝다.
가령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론의 분노와 맞물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유행한 '쇼츠 정치'는 어떤가. '누가 더 윤석열 부부를 효과적으로 조롱하는가'가 당내 인지도 상승의 조건이 되면서 '회의장이 자기PR의 장이 됐다'는 평가가 국회를 휩쓸었다. '법사위 열차'의 기관사였던 정 대표 자신이 그 수혜자이기도 한데, 청와대가 '입법 지연'을 지적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대입해봐도 흥미로운 풍경이다.
정청래 지도부 초기 재판중지법 추진 당시엔 강성 유튜브의 막강한 화력도 실감했다. 친여 유튜브 매체 대표격인 김어준 씨가 재판중지법 추진의 동력이 됐다는 평이 정치권을 휘감았고, 그것이 결국 이 대통령 본인의 의중과도 어긋난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당은 우스운 상황에 처했다. 해당 법안이 여야관계는 물론 국민여론에도 파장이 컸던 점을 생각하면 우스움을 넘어 서늘한 사례이기도 하다.
당 원로 정치인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당시 "김어준 씨를 민주당의 '상왕'이라고 칭한 지가 꽤 됐다"며 "그놈의 '당원주권'을 하도 떠들어서"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이 대통령은 임기 초 '방탄 이슈'라는 상당한 압박을 받기도 했는데, 정 대표 이전 '당원주권'의 가장 영리한 활용자이자 그 최대 수혜자가 이재명 대표였다는 사실 또한 공교로운 일이다.
최근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에 이르러 정 대표 또한 당원주권의 역풍을 맞이하는 모양새다. 반청 세력이 결집하면서 애써 가려온 계파갈등이 노골화됐고, 국회 밖 당원들의 싸움은 그보다 거칠어졌다. 합당 의원총회가 진행된 11일 민주당사 앞에선 '정청래 제명' 피켓을 든 당원들이 시위를 벌였다. '반청'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당심'이 되어 정청래 당원주권정당 앞에 도착한 셈이다.
차기 당권을 둘러싼 계파갈등에 대해 더 붙일 말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재명·정청래가 활용해온 당원주권주의가 거꾸로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이 공교로운 그림에 있다. '당심에 따라' 이재명도 바라지 않은 이재명 지키기를 밀어 붙인 정청래. 당의 대중추수를 우려한다더니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반청 당심' 추수에 앞장선 이언주. 두 그림은 권력지향적 포퓰리즘이라는 한 점에서 맞닿고 있다.
사실 이들은 이미 성공한 '이재명 모델'의 후발주자들이다. 당원주권주의의 선발주자 이 대통령이 먼저 '친명 민주당'을 이룩했고, 그 뒤를 정청래 대표가, 다시 이언주 최고위원 등이 입맛에 맞는 '당심'을 발굴하며 따라가는 모양새다. 이 메커니즘은 박상훈 박사가 지적한 '팬덤 당원'의 욕망, 즉 "팬덤 리더와 직접 연결"되고 "정당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당원의 새로운 욕망과도 정확히 부합하며 더 증대되고 있다.
배타적 포퓰리즘에 '나중에'로 밀리는 것은?
이는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세계가 재확인했던 포퓰리즘의 본류와도 닮아있다. 특정한 정치적 대상을 선택·발굴하고, 정치적으로 그 반대 급부에 선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배타적 포퓰리즘의 방식. 팬덤심리를 추동하는 동시에 바깥의 존재를 강력히 공격하는 이 방식은 당원주권주의의 '원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표 팬덤정치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
역시 각 정치의 내용과 당위엔 차이가 있지만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팬덤에 휘둘린다'는 세간의 오래된 지적도 양당의 팬덤정치가 이 배타적 포퓰리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것이다. 극우 세력에 함몰돼 얼마 안 남은 정치적 당위성마저 스스로 거세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이, 민주당의 당원주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위험한 가능성 중 최악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평행세계의 미래를 제쳐두더라도 직시해야 할 지금 당장의 문제는 있다. 끝없이 권력을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주류의 욕망을 추수하는 포퓰리즘의 성격에 기반해, 당원주권주의의 맹점인 책임 회피의 정치가 자연스럽게 정착한다는 점이다. 이제 처음의 이야기, "당원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묵묵하게 해야 되는 일들", 이를테면 뒤늦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 주류 법안들이 주요 갈등 소재로 쓰여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의원이 모이니 당원이 모이고 당원이 모이는 자리에 다시 의원이 모인다. 결국은 '국회의 셈법'이다. 정치적 리스크는 적지만 실익은 클 것이다. 정치적 리스크가 크다면 실익은 더욱 클 것이다. 가령 차별금지법도 당권을 논할 만한 주류 의제였다면, 이들은 기꺼이 베팅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안타깝게도 차별금지법은 현실적으로 소수 의제다. '정치적 판단'을 위해 그 자리에 앉혀 놓은 누군가들이 때마다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뒤로 미뤄 놓았다. 당원의 관심도는 떨어지고 당심을 원하는 의원도 다시 모일 필요가 없다. 진보를 표방해온 민주당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진보 의제가 즐비해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잊혀졌고, 균형발전은 규제완화와 행정통합 이슈로 변질됐다.
다수의 욕망을 취사선택하고 편집하면서, 정작 그 다수의 욕망을 명분으로 어떤 사안에는 눈을 감는다. 당원주권시대의 최악의 미래가 극단적으로 고립된 야당 국민의힘과 같은 모습이라면, 당원주권시대의 엄연한 현재는 스스로 표방했던 진보와 다양성의 가치를 서서히 질식시켜 가는 집권여당의 모습일 것이다. 당원주권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여러 우려에도 오히려 관련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겠다.
다만 뒤로 미루면 어떨까. 다수 정치인이 이른바 '상왕'의 영향을 받고, 입법속도보단 쇼츠PR에 매진하며, 동료 의원 갑질 의혹이나 자당 성범죄자 정치인의 공식석상 복귀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그 정당은 건강한 정당이 아니다. 이 같은 환경에서 당원주권주의의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을지, 당 안팎의 논의가 아직은 더 필요한 것도 같다. 그러니 당원주권주의부터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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