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와 트럼프의 도박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시설을 거의 무력화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은 장거리 전략 타격 무기인 토마호크 미사일의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공습을 감행했다.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테헤란은 미군과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으로 지옥이 되었다고 한다.
이란은 중동의 대국답게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튀르키예 같은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들 국가 간에는 국제 열차도 운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국제 열차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테헤란에서 출발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행 아시아 횡단 급행 열차이다.
테헤란역을 떠난 이스탄불행 국제 열차는 다음 날 오전 이란 북서쪽 도시 타브리즈(Tabriz)를 거쳐 이란 국경 라지(Razi)역에서 오후에 출국 심사를 한 뒤 국경을 넘는다. 열차 승객들은 튀르키예 국경 카피쾌이(Kapıköy)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세 시간여를 더 달려 반(Van)역에서 모두 내려 페리로 갈아탄다. 배에 오른 여행자들은 6시간의 호수 항해를 마친 뒤 탓반(Tatvan)항 역에서 튀르키예 열차로 갈아타고 앙카라를 경유해 이스탄불까지 달리게 된다. 총 3,000킬로미터 거리에 60시간이 걸리는 대장정 코스로 4인 침대칸 1인 요금은 55유로, 현재 환율로 9만 6천 원 정도이다. 최근 튀르키예의 Van역 승강장에 도착하는 이란 피난민들의 모습이 국내 국제뉴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 서울 스트리트가 있을 정도로 두 나라는 우의를 다지려 노력해왔다. 이란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이란 철도 역시 한국과 인연이 있다. 2012년 한국철도는 사용 중이던 디젤기관차 10량을 정비해 수출했다. 또 구형 새마을호 객차도 수선 과정을 거쳐 이란으로 수출했다. 나는 2016년 11월 외신 기사를 통해 이란 철도 사고 소식을 알게되었는데 사고 현장의 사진 속 객차는 너무도 눈에 익은 차량이었다. 한국 땅을 달렸던 새마을호 객차가 테헤란 동쪽 셈난시로 향하는 고원지대에서 불타고 있었다.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 이역만리에서 운명을 다했던 새마을호 객차들을 마음속으로 추모했다. 지금도 테헤란역 승강장에서 옛 새마을호 객차를 볼 수 있다. 객차 곳곳에는 <손조심>이나 <자동문> 같은 한글 안내판이 붙어있고 코레일의 마스코트도 붙어있다.
실크로드의 중요한 통행로였고 옛 페르시아 제국의 명성을 담은 땅 이란에도 한국의 문화와 기술, 기관차와 객차까지 들어가 있다. 더 기이한 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중요한 논리 중 하나는 마치 평행이론처럼 한국전쟁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비극적 실패로 귀결된 그 논리를 따라가 보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단순한 도식에서 출발했다.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의 거대 악이다. 또한 자국민도 학살하는 독재정권이다. 최근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대대적 반정부 시위는 이란 정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군대를 동원해 사악한 이란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면 이란 민중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새 이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이란의 민주개혁과 발전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언뜻보면 그럴듯한 시나리오지만 외부 침공에 의한 내부 세력의 각성과 호응은 현실로 구현되기 힘들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추종한 노선이 한반도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었다. 1950년 북한은 민주기지 노선이라는 대남 해방 전략을 세웠다. 해방된 인민공화국 북한이 전체 한반도 해방을 위한 민주기지가 되는 것이다. 남한은 미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 이승만 정권이 폭압적으로 인민을 지배하는 반동 체제로 간주했다. 이승만정권은 제주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여수와 순천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북한 정권은 남한의 민주적인 지식인, 학생, 노동자들은 당장이라도 이승만 정권에 맞서 투쟁할 수 있을 것처럼 보았다. 인민의 나라 북한이 민주기지가 되어 군사력을 앞세워 남한을 밀어붙인다. 이어서 폭압에 신음하던 남한 민중이 파도처럼 일어나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고 단숨에 통일을 이루게 된다. 김일성이 군사 지원을 얻기 위해 스탈린과 마오저뚱을 설득할 때도 북의 침공과 남의 봉기는 한 세트였다. 한반도 전쟁은 단기전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해 국군의 방어선이 무력하게 붕괴되고 수도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는 과정속에서도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남한 내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한반도는 중국과 소련을 국경으로 두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의해 통일되면 동북아시아에 사회주의 불록이 강화되고 이웃한 일본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최전선으로서의 남한의 위기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를 잃는 것이 된다. 미국의 적극적 개입은 북한군을 다시 북으로 몰아버렸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기전을 장담했던 북한 수뇌부들의 판단과 무관하게 전쟁은 3년이나 이어지며 한반도를 끔찍한 살육의 땅으로 만들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한은 거대한 파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2차대전 종전 후 사라진 수요로 인해 침체에 빠졌던 군수산업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조건들을 확보했다. 더구나 강화된 반사회주의 분위기는 일본 사회가 전후 반성을 통한 민주적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했다. 일본 미군정 초기 주어졌던 자유주의적 권리들이 유보되거나 폐기 됐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 반공의 교두보가 되어야 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전후 책임 추궁이나 민주적 개혁 시도 의지를 쉽게 버렸다. 여기에 호응해 일본은 미국의 제1 행동대원이자 아시아의 맹주로서 위상을 확보했고 다시 군국주의의 길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의 민주기지노선은 처참한 실패를 했다. 남한 사회는 극단적인 반공 사회가 되었다. 무엇이든 북한과 연계가 되었다고 하면 바로 제거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냉전 벨트 반공 국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태평양 전쟁 책임이나 반성의 길에서 슬쩍 벗어났다. 일본의 재무장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되었다. 남북한은 치열한 이념전쟁과 체제대결로 내몰렸다. 남한에서 벌어지는 대중 운동은 이중의 고통을 겪어내야만 했다. 노동이든 농민이든 학생운동이든 또 어떤 사회 개혁 운동이든 좌경용공의 딱지가 붙었고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 맞서는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독재권력이 수십 년간 유지됐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공격으로 이란은 더 구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란이 신정체제를 더 강화하게 되리라는 것은 굳이 국제정치 전문가가 아니라도 예측할 수 있다. 온 나라의 도시가 공습으로 파괴되고 있고 초등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란 민중들에게 미국과 이스라엘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인류사에 가장 악독한 악당 하메네이를 제거했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들이 죽인 것은 이란 민주주의의 씨앗들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보편적 이성과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개혁을 열망하던 이란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어쩌면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호전적 극우세력이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 이란이 극단적 체제일수록 자신들의 극단적 행태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권이 저지른 전쟁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세상에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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