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치매 치료제 시장은 전 세계 제약산업의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항체 기반 신약과 혁신적 치료 기술이 '돌파구'로 홍보되고,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이 쏟아지며 새로운 의약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치매를 제약기술로 해결해야 할 의학적 위기로 규정하는 관점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치료제 중심의 접근이 강화될수록 치매를 둘러싼 사회적·환경적·돌봄적 요소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질환의 의미와 책임 구조도 특정 방향으로 고착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개발된 치매 약물은 대부분 치매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 완화에 그칠 뿐 근본적인 병리적 치료 효과를 갖추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는 임상 실패율의 만성적 증가와 효과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암 치료제의 임상 실패율은 81%이다. 그럼에도 대중이 느끼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 돌봄 부담에 대한 불안은 신약 개발에 대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며 산업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치료 효과의 불확실성과 산업적 팽창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적 상황은 치매라는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해 왔는지 근본적으로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논문 바로가기 : 치매라는 사회적 문제의 재현 - 바키의 문제화 접근법을 통한 성찰)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저자들은 치매를 단순히 '뇌 질환'으로 다루기보다, 사회가 치매를 어떤 문제로 그려 왔는지에 주목한다. 치매는 흔히 명확한 원인이 있는 '질병(disease)'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여러 증상이 뒤섞여 나타나는 '증후군(syndrome)'에 가깝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의학·정신의학·문화적 설명이 달라지면서 치매의 의미 자체가 흔들려 왔고, 이 모호함은 치매를 '위기', '재앙', '시한폭탄'처럼 묘사하는 공포 담론을 강화해 왔다. 이런 표현들은 치매를 마치 정체성과 존엄을 파괴하는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들면서, 실제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지우는 모순을 낳는다.
연구에 따르면 치매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치매를 사회적 죽음과 동일시하는 파국적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예방 가능성'과 '잘 살아가기'를 강조하는 개인 책임 중심의 서사다. 여기에 과학계와 정책이 공유하는 '신화적 치매'라는 관점까지 더해져 치매를 단일한 뇌 질환처럼 다루는 경향도 존재한다. 하지만 치매 경험은 사회적 관계, 환경, 불평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이 논문은 치매에 대한 여러 의미와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이 힘을 얻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배제되는지를 정치학자 바키의 '문제화 접근법(WPR, What is the Problem Represented)'이라는 분석 틀을 통해 탐구한다.
바키의 문제화 접근법은 정책이 무엇을 문제로 규정하는지, 그 이면에 어떤 전제가 숨어 있는지를 여섯 가지 질문으로 점검하는 비판적 분석 도구다. 연구진은 이를 영국의 치매 정책에 적용해 치매가 어떤 논리 구조 속에서 '문제'로 형성돼 왔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기존 정책이 놓치고 있는 사회적 영향과 대안적 가능성을 드러내며, 치매 정책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1. 이 문제는 무엇으로 재현되는가?
영국의 치매 정책은 고령화에 따른 치매 환자 증가와 비용 부담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조기 진단과 치료 확대, 가족 지원 강화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조기 발견'에 무게를 두었으나 근거 부족과 조기 진단이 가져올 잠재적 피해를 간과해 이후 '시의적절한 진단'으로 정책 방향이 조정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치매를 사회적 재난이자 개인적 비극으로 묘사하는 담론과, 반대로 '치매와 함께 잘 살기'를 강조하는 접근이 충돌하는 복합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다.
2. 이러한 문제 재현의 근간이 되는 전제나 가정은 무엇인가?
첫 번째 가정은 치매를 의학적 개입을 통해 질병의 경과를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상정하는 의료 중심 관점이다. 이 관점은 치매를 단일 병리(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로 환원하여 이해하고, 특정 병리를 겨냥한 약물 개발이 치매의 핵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반복되는 임상 실패와 생의학적 한계는 이러한 접근의 근본적 제약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투자는 여전히 치료제 개발에 집중되어 왔다. 그 결과 치매가 다양한 원인과 경로가 얽힌 복합적이고 비가역적인 생애 과정적 상태라는 사실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가정은 '전문가 중심의 진단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기존 1차 의료 서비스가 치매를 적절히 진단하고 관리하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NHS 메모리 클리닉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그러나 치매 약물의 효과는 제한적이며, '진단이 돌봄의 관문'이라는 인식은 오해다. 실제로 많은 돌봄은 치매 진단 이전부터 가족과 지역사회에 의해 기능적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공되며, 진단 자체가 돌봄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치매는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생애 전반의 위험과 보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삶의 궤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이러한 문제의 재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치매 문제는 권익단체가 과학자 및 임상의와 연합하여 정치인들에게 로비 활동을 펼친 결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연합체는 치매를 다양한 원인을 가진 복합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일하고 명확한 문제처럼 제시하도록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치매를 '극복해야 할 질병'이면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 '예방 가능한 상태'로 동시에 재현되게 했다.
4. 무엇이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가?
치매는 여전히 병리가 불분명한 복합 질환이지만, 신경학 중심에 치우친 연구와 정책에서는 행동·심리 증상과 같은 실제 당사자의 경험, 돌봄 현실, 사회적 배제 문제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치매를 '장애' 또는 여러 만성질환과 함께 발생하는 '복합 유행현상(syndemic)'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심혈관 질환 예방이 뇌 건강에 미치는 효과 등도 정책에서 주변화되어 있다.
5. 이러한 문제 재현은 어떤 효과를 낳는가?
치매 연구가 의료 중심의 생의학 연구에 너무 치중되고 사회과학 연구가 부족하게 되면 노인 건강 증진의 효과적인 방안 모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조기 진단이 항상 좋은 것이라는 상식적 믿음이나 치매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실제로는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다학제적 재활 접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6. 이러한 관점은 어떻게 옹호되고, 어떻게 대체될 수 있는가?
치매 문제는 과학자·임상의·권익단체 등이 형성한 연합에 의해 규정되고 옹호되며, 이 과정에서 기술 중심·서비스 분절화·과잉의료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이런 흐름을 바꾸려면 생의학 중심 관점을 사회적 관점과 통합하는 새로운 연구·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치료보다 예방 중심의 공중보건 접근(예를 들어 치매지원사, 치매친화 공동체 등)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진은 이 여섯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가 치매의 무엇을 '문제'로 규정해 왔는지 근본부터 다시 묻게 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해결책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연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치매는 약물만으로 해결되는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맥락, 돌봄 환경, 사회구조가 함께 작용하는 복합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치매를 '정복해야 할 병' 중심으로 이해하며 자원과 관심을 생의학적 영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투입해 왔다. 그 과정에서 돌봄의 현실, 사회적 불평등, 지역사회 환경처럼 치매 경험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들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의 치매 정책과 담론 역시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비껴가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치매로 인한 경제적 비용과 가족 돌봄 부담이 주요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했지만, 실제 서비스 제공 체계에서는 민간 병원과 요양시설 중심의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해 결과적으로 의료화·시설화가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치매 당사자의 일상적 경험과 자기결정권,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고, 문제행동으로 분류되는 행동·심리증상(BPSD) 역시 비약물적 개입보다 약물 중재가 먼저 고려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치매는 약물만으로 해결되는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맥락, 돌봄 환경, 사회 구조가 교차하는 복합적 현상이며,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사회가 어떻게 조건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의 치매 정책은 치료제 경쟁과 시설 중심 보호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 비약물적 지원, 사회참여 확대,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과 같은 대안적 방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치매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문제로 본다는 관점 자체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결국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한국 사회 역시 치매를 바라보는 관점과 대응 방식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서지정보
Iliffe, S., & Manthorpe, J. (2025). Representing the Social Problem of Dementia: Reflexions on Carol Bacchi's What Is the Problem Represented to Be Approach. Social Policy and Society, 1–13. doi:10.1017/S1474746424000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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