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확대가 노동자 안전에 미치는 영향

[서리풀연구通] 노동자 안전, 장기 주주가치 핵심요소로 다뤄야

올해 한국 주식시장은 이례적으로 뜨겁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겨냥한 상법 개정(7월 3일 국회 통과)과 2024년부터 추진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 자본효율 제고에 대한 기대를 키우며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그러나 주주친화 개혁이 기업 현장의 노동자 안전을 어떻게 비껴 가는지 함께 살피지 않으면, 개혁은 반쪽이 될 수 있다.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와 이사회 독립성 제고다. 구체적으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신설, 전자(비대면) 주주총회 도입, 상장회사 사외이사 명칭의 '독립이사'로의 변경과 의무 선임 비율 확대,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3% 의결권 제한 등이 포함됐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 같은 변화는 대주주 전횡과 사익편취 우려를 낮추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며, 기업이 투자 활동과 주주환원 및 사업재편을 포괄하는 장기 밸류업 계획을 제시하도록 압박한다. 전자총회는 참여 비용을 낮춰 감시와 견제 기능을 실질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거시적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 막대한 유보금이 보다 높은 배당 성향을 통해 경제로 순환하면 소비가 진작될 수 있고, 부동산 편중이 심한 한국의 자산구조가 다변화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 모든 변화는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를 완화하려는 구조적 노력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의 흐름이 현장의 안전과 건강을 밀어낼 위험 또한 커지고 있다. 기관 투자자가 광범위한 자산군을 동시에 관리하며 수익률 경쟁을 벌이는 환경에서, 경영진은 단기 성과를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기 쉬워진다. 안전 설비 교체, 정비시간 확보, 교육과 시스템 개선 같은 안전 투자는 즉각적인 이익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 압박이 강해질수록, 한정된 현금흐름이 안전예산을 잠식하는 유인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소개할 연구(☞논문 바로가기 : 기관 주주들의 투자 분산과 직장 안전)에 따르면, 이와 같은 우려가 단순한 추정에 그치지 않음을 시사한다. 기관 투자자의 분산(investor distraction)이 커질수록 직장 내 상해 또는 질병 발생률이 유의하게 증가한다. 기관 분산 지표가 표준편차 1단위 상승할 때 평균 상해 발생률은 약 11.16%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며, 그 부정적 효과의 약 38.84%는 경영진의 단기주의를 통해 매개된다. 곧, 느슨해진 감독이 단기주의를 부추기고, 그 결과가 안전 투자 축소와 사고 위험 증대로 이어진다는 메커니즘이다. 연구의 표본과 맥락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방향성에 대한 경고로 읽을 만하다.

이 부정적 효과는 한국 노동현장의 취약성과 결합할 때 더 커질 수 있다. 일부 기업의 지배구조 취약성, 정보 비대칭, 다층 하도급 구조, 높은 산재 발생 건수와 사고사망만인율 등은 '감독 약화→단기주의→안전 투자 축소'의 고리를 증폭시킬 토양이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사회적 개입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 후퇴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파제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대응의 초점은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장기 가치의 구성요소'라는 원칙을 법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맞춰야 한다.

첫째, 이사의 충실의무를 해석하고 운용할 때 장기 주주가치의 핵심 요소로 '노동자 안전'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반복적 중대사고 기업에 대해서는 이사회 차원의 안전·보건위원회 설치와 개선계획 공시를 의무화하고, 미이행 시 공시 의무와 감독상의 불이익을 부과하는 장치를 검토할 수 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결정을 내릴 때에는 향후 일정 기간의 안전투자 계획과 목표 지표를 함께 공시하도록 해, 현금 배분이 안전을 훼손하지 않음을 시장에 설명하게 해야 한다.

셋째, 기관 투자자의 스튜어드십 활동에도 안전성과 관련된 최소 기준과 평가항목을 포함해야 한다. 의결권 행사 지침에 안전과 산재발생 예방 성과를 반영하고, 사고 발생 시 이사회 책임과 재발 방지 계획을 점검하는 절차를 정례화하면 감독의 빈틈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원청과 하청의 안전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사회 내 노동자 대표 참여 등 이해관계자 관점을 보완하는 장치도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없다. 기업은 오너 일가와 주주만의 것이 아니며, 그 기업과 협력업체와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사회가 함께 위험을 부담하고 가치를 만들어 낸다. 주주가치 제고와 노동자 안전은 제로섬이 아니다. 안전은 장기 가치의 전제이며, 그 전제를 훼손하는 주주가치 제고는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번 개혁의 성과가 진정한 '가치'로 남으려면, 그늘에 놓인 노동자의 안전을 제도와 시장의 중심부로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서지 정보

Chowdhury, H., Han, H. D., Krishnamurti, C., & Zheng, J. (2025). Institutional shareholder distraction and workplace safety. The British Accounting Review, 101671.

▲ 지난 1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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