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 안 되는 비자(구직비자)였지만, 그래서 일을 했다는 이유가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것이면,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냐?"
지난달 28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베트남 유학생 고 뚜안(가명) 씨의 어머니가 18일 오전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계속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이 죽여 놓고, 왜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냐"고도 거듭 물었다.
대구에서 상경한 그는 남편과 함께 이날 저녁 7시 서울 중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세종로 출장소 앞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강제단속 규탄 및 고 뚜안 3차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딸 뚜안이 사망한 직후, 부부는 그동안 대구에서 열린 추모 집회와 기자회견에 여러 번 참석했고, 그때마다 맨 앞자리를 지켰다. 딸의 사망 22일째인 이날은 처음으로 서울 추모제를 찾았다.
뚜안 씨의 아버지는 작업복을 입고 왔다. 딸이 생전 사준 작업복이다. 그는 딸의 사고 소식을 듣고, 일하고 있던 칠곡군에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대구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도 이 옷을 입고 있었다. 유족과 함께 상경한 김희정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장례 당일만 빼고, 계속 이 작업복을 입고 계시다"고 전하며 목이 메었다.
유족은 이날 추모제에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우리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뚜안 씨의 아버지는 집회 발언대에 서서 "이 비극을 통해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변화가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뚜안 씨는 취업을 준비하던 유학생이었다. 6년 전 입국해 계명문화대를 졸업한 후 계명대 관광경영학과로 편입해 학사 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취업은 쉽지 않았고, 지난 10월 초 대구 성서공단 내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 파견노동자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사 2주일 만에 공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공장에 난입한 수십 명의 출입국 단속반원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이들이 공장을 떠난 직후 피신해 있던 3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주노동자 죽음 밟고 성장하는 한국 자본주의
첫 추모 발언에 나선 김희정 집행위원장은 첫 문장도 채 마무리 못하고 울음이 북받쳐 말을 잠시 쉬었다. 그는 "죽어도 되는 노동자, 대체 가능한 노동력, 이것이 이주노동자의 다른 이름이고 뚜안의 이름이었다"며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밟고 성장하는 한국 자본주의"라고 소리쳤다.
김 위원장은 뚜안 씨가 죽은 날, 또 다른 다친 이주민을 만나러 창원출입국사무소에 가 있었다. 창원 출입국 단속반이 시내 한 2층 식당을 급습해 미등록 이주민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이주민 3명이 추락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이들은 머리가 깨지고, 허리뼈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졌다. 사장 놈은 출입국이 지급하는 보험료를 가로채고 퇴직금도 가로채 자신이 병원비를 냈다 거짓말했고, 낫지 않은 상처에도 서둘러 퇴원시켰다"며 "목발 짚은 부상자의 다리는 곪아 터져 있었으나, 그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죽지 않고 치료 잘 받으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영된 짧은 영상엔 가수 아이유를 좋아하고 평소 네일아트를 즐겼던 뚜안 씨의 일상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려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직했다는 문구도 스쳐 지나갔다. 영상은 "비자 정책을 바꿔야 한다",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과 존엄이 보장돼야 한다"는 문구로 끝났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 소장은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던 한국인만 노동자고, 현대차 부품사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냐"며 "누구는 인권을 존중받아야 하고, 누구는 이렇게 쓰고 버려져야 하느냐"고 물었다.
지난 9월 16일 울산 현대자동차 내 한 부품업체에서 벌어진 울산 출입국 사무소의 폭력적 단속 사건을 이른 것이다. 9월 초 미국 조지아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국인에 대한 폭력적 단속이 논란이 된 직후였다.
김 소장은 "지난 6월엔 경주에서 한 태국 여성 노동자가 단속 과정에서 발목을 크게 다쳤고, 이로 인해 유산까지 했다"며 "아이를 잃은 그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고 결국 추방됐다"고도 말했다.
그는 "한쪽에선 일손이 필요하다고 이렇게(고강도로) 일을 시키고, 다른 한쪽에선 잡아가고 추방하고, 그렇게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들이 반복된다"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체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은 토끼몰이 추방, 노동만 '빼먹는' 한국
랄라(필명)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도 발언대에 나와 "정부는 미등록, 불법이니 단속해야 한다는데, 불법과 합법의 경계 그 기준을 정한 건 누구인가"라며 "그 기준이 이리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반성 없이 단속추방을 매번 반복하며 문제 상황을 지속시키는 정부의 방향은 옳은가"라고 물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사의 자동차부품은 불법인가?"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이어 "이들이 키우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인가? 이들이 조립해 만든 아리셀의 리튬전지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인가?"라고도 물었다.
권 활동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위협하는 것은 없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노동할 뿐"이라며 "정부는 법의 허용 범위를 벗어났기에 '불법 존재'라 하나, 잣대가 되는 그 법 자체가 오히려 문제"라고 말했다.
추모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 100여 명은 차례로 뚜안 씨의 영정 사진 앞에 서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이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고용허가제로 왔든, 유학생으로 왔든 모두 먹고 살아가고 일하고 사랑하고 공부하는 인간이기에 어렵게 나눠 놓은 체류자격 제도에 맞춰지기 힘들다.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뚜안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이주민 체류자격을 제한하는 각종 제도의 정비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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