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구속영장이 기각되든 말든, 전혀 상관이 없는 이유

[박세열 칼럼] 국힘은 추경호가 구속되길 바라는 게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내란의 밤, 여당 원내대표 추경호의 행보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내란특검이 추경호에 대해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지금 그는 구속 갈림길에 서 있게 됐지만 추경호가 구속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사법 체계는 '어리석음'과 '무능함'까지 엄벌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란의 밤 추경호의 행보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참담한 수준의 어리석음을 이미 상징하고 있다.

의원총회를 국회가 아닌 당사에서 연다는 얘기는 과문한지 모르겠으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원내대표실은 국회 본청에 있고, 의원총회는 국회의원들의 활동 공간인 국회에서 열린다. 그런데 추경호는 추경호는 11시 3분에 국회로, 11시 9분에 당사로, 다시 11시 33분에 국회 예결위회의장으로, 또 다시 12시 3분에 당사로 의원총회 장소를 바꿨다. 두 번이나 의원총회를 국회 밖인 당사에서 열겠다고 공지했는데, 경찰이 막아 의원들의 국회 진입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의원들을 의정활동 공간이 아닌 국회 밖으로 한데 모으려 했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추경호 본인은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 있었다. 본회의장까지 2분 거리에 있었음에도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심지어 18명의 의원들을 이끌고 본회의장에 있는 당대표 한동훈을 본회의장에서 나오라고 요구했다. 추경호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인 한덕수와 통화했고, 정무수석 홍철호와 통화했다. 이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통화하면서 '표결 불참'을 당부하는 취지의 협조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추경호 측의 반응은 이렇다. "윤 전 대통령이 먼저 전화를 건 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끊었다", "계엄을 왜 했느냐 따져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추경호 변호인 측, 동아일보 6일자 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행동 지침도 내릴 수 없었던 무능한 원내대표다'라는 게 추경호의 변호 요지다. 조희대 법원의 그간 행보를 봤을 때 추경호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비상계엄이 위법한 지 몰랐다는 박성재의 손을 들어줄 때처럼, '무능함'과 '어리석음'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는 논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추경호와 윤석열의 통화 내용은 둘이 입을 닫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고, 추경호가 계엄 직전인 11월 29일 윤석열과 만찬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그들이 밝히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추경호 측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 개의와 의결이 가능했다"고 강변한다. '내란의 밤'에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이 '야당의 의석수'에 나라를 맡겼다는 자기 고백이다. '본회의장에 모여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라'는 당 대표의 지시를, 정작 금뱃지를 단 헌법기관들은 대놓고 거부했다. 총 든 군인들이 국회로 몰려드는 그 밤에, 그들은 알 길 없는 계엄의 속사정이나 가늠하면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방치했다.

그 중 몇이나 윤석열의 쿠데타 구상에 충실히 따르려 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계엄은 잘못했지만 탄핵은 반대하고, 부정선거를 외치지만 내가 당선된 것과는 무관하며, '윤어게인'은 있을 수 없지만, 그걸 외치는 사람들의 표는 탐내는, 저런 사람들이 정말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란 말인가?

만약 추경호가 구속된다면 그가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장기말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내란을 모의하고, 계엄 해제 표결을 적극 방어했다는 정황들이 부각될 것이고, 추경호에 동조했던 의원들의 혐의들도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내란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해체된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따라 국민의힘은 위헌정당 해산 심판대에 서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우린 새 보수정당의 탄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연쇄 파장을 '조희대 법원'이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을 석방하고 박성재 법무장관의 영장을 기각했던, 지금까지 법원의 행보들을 보면 그렇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추경호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국민의힘은 정치적 동력을 회복했다는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내란 특검을 공격하고, 채상병 특검을 공격하고, 김건희 특검을 공격할 것이다. 마치 그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는 것처럼. 법정에서 자신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또다시 면회하고, 장외로 뛰쳐나가 이재명 정권을 끝장내자고 목 놓아 외칠 것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보수 언론은 '특검 수사가 엉터리였다는 게 입증됐다'며 대대적으로 역공을 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일들은 국민의힘이 '내란의 늪'에 더 깊숙히 빠져들도록 만들 것이다. '우린 내란 세력이 아니다'라는 헛된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내란 정당' 딱지를 뗄 수 없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이 되든, 불구속이 되든 어쨌든 추경호는 특검에 의해 기소될 것이고, 윤석열의 불법 계엄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국회의원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법원은 규범을 마련해 줄 것으로 믿는다.

추경호가 구속되든 말든, 영부인의 각종 비리를 감싸기 급급했던 여당, 만취해 군인들과 술 먹었다는 걸 자랑스레 말하는 대통령에 쩔쩔 매는 여당,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이리저리 허수아비처럼 끌려다니던 지리멸렬한 모습이 그날 생중계 된, 그리고 특검이 밝혀낸 '내란의 밤' 국민의힘의 모습이었다. 전한길 같은 극우 유튜버에 휘둘리는 정당, 당대표가 내란 우두머리혐의로 수감된 윤석열 면회를 가고, 최고위원은 허섭한 논리의 혐중 음모론을 제기하는 그런 정당. 정치브로커 명태균에게 휘둘리고, 사이비 종교 신천지, 통일교에 휘둘리는 정당, 그래놓고도 반성도 없는 정당이 '내란 프레임'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한들 유권자들이 믿어줄 수 있을까?

추경호는 '국민의힘'이라는 블랙코미디의 조연 배우일 뿐이다. 불법 무도한 계엄 앞에서 본회의장 표결에 불참하고도 뻔뻔하게 "야당만으로도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느니, "표결 거부권도 의원의 권한"이라느니, 기껏 '처벌'을 피하고자 변명하고 있는 걸 "당당함"으로 포장할수록 모순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중도층 유권자들은 더욱 국민의힘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인정받고 취해있을 바에야, 국민의힘은 차라리 추경호가 구속되는 걸 바라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일 수 있다. 홍준표의 말처럼,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드는 게 나라를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일 것이다. 법원은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심판하기 어렵지만, 유권자는 그 모습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추경호가 구속되건 말건, 국민의힘이 해산되건 말건, 크게 상관 없는 이유다.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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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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