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나서야 정부 주최 차원의 첫 추모식이 열렸다. 정부의 첫 공식 초청을 받고 입국한 외국인 유족도 함께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피해자와 시민을 향해 두 번 허리 숙여 "국민 생명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는 없었다"고 사과했다.
29일 오전 10시 29분, 이태원 참사 날짜와 숫자가 같은 시각 서울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지면서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됐다. 유족과 내빈 360여 명, 참여 시민 300여 명 등 추모식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1분간 울린 사이렌 소리에 묵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추모사 영상이 상영됐다. APEC 행사로 추모식에 오지 못한 이 대통령은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대통령은 "그날, 국가는 없었다"며 "지켜야 했던 생명을 지키지 못했고, 막을 수 있던 희생을 막지 못했으며, 사전 대비도, 사후 대응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거란 신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 사회의 고통과 상처만 깊게 남았다"며 "감히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참사 유가족과 국민께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발언을 마친 직후 이 대통령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미흡했던 대응, 무책임한 회피, 충분치 않았던 사과와 위로까지, 이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다시는 국가의 방임과 부재로 인해 억울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며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며, 이 기본과 원칙을 반드시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발언을 마친 후 다시 허리를 숙여 피해자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답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송해진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유가족 인사 발언에서 "이제는 말 아닌 행동으로, 형식이 아닌 진심으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으로 보여달라"며 "이번 정부에서는 부디 달라지길 바란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더 안전한 내일을, 내일을 여는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송 운영위원장은 "국가 기관과 공직자들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정을 펼쳐달라"며 "그리하여 이 거대한 비극 이후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게 해달라. 그것이 159분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다"라고 밝혔다.
참사 3주기에 이르러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참석한 것에 대해 송 운영위원장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다했다면, 159분의 희생자는 지금 우리 곁에서 각자의 내일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정부가 오늘 함께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영된 수 분가량의 추모 영상에선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2023년 겨울 국회 앞까지 오체투지를 진행한 모습, 삭발식을 거행한 모습 등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던 투쟁 현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를 본 정세진 아나운서는 "유족들이 꼭 모시고 싶어했다"며 다음 발언자로 우원식 국회의장을 소개했다. 정 아나운서는 "지난 1~2주기 공식적인 추모식은 모두 국회에서 개최됐다"며 "이때 국회 생명안전포럼 대표, 국회의장 등의 자리에서 길을 열어줬다"고 설명했다.
무대에 오늘 우 의장은 "국회는 참사 발생 100일 때 국가 기관으로서 최초로 추모제 열었고, 1주기엔 여야 의원 주축으로, 지난 2주기엔 국회 차원에서 공식 추모제를 열어 조금이나마 유족 슬픔에 함께하고자 했다"며 "서로가 꼭 잡은 손으로 다짐한 건 한 가지다. 국가의 부재, 진실의 부재, 책임의 부재, 그 기막힌 현실을 넘어서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독립성과 권한을 온전히 지켜가며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며 "하나도 숨김없이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는 조금도 남김없이 응당한 책임을 지게끔, 국회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그동안 미룬 생명안전기본법을 꼭 통과시키겠다"며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모욕과 혐오가 더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더욱 그 대책 강화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송기춘 특조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진실은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우리 사회 정의와 희생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강력한 무기될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송 위원장은 "진상조사와 피해 구제를 위해 유족에게 연락드리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아무 일 안 하다가 이제 와서 뭐 하러 이러느냐' 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계시다"며 "국가에 대한 기대를 접었거나, 참사 희생자·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도 참사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조위는 작년 6월 활동을 시작해 희생자 신청사건 92건, 피해자 신청 22건, 피해자 직권 123건, 진상규명을 위한 직권 6건, 안전사회를 위한 직권 과제 8건 등 총 251건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을 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생명, 한 가족의 상처,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책임의 흔적으로, 특조위는 그 진실을 충실히 밝혀 곧 국민께 보고드리겠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참사를 직접 겪거나 목격한 분, 구조 활동에 참여해 고통받은 분, 참사 관련 국가 기관에서 일하며 진상규명에 필요한 정보를 갖고 계신 분들의 자발적 제보와 협조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도 요청했다.
각계 예술인·시민들 피해자에 연대 약속
문학, 음악, 공연 등 각계의 문화예술인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박소란 시인의 '가을밤 산책' 낭독을 시작으로 가수 안예은 씨가 상사화, 만개화 등 노래 두 곡을 불렀다. 안 씨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장내 곳곳에선 훌쩍임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됐던 배우 문소리 씨도 추모글을 낭독했다. 12명의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10여 분간 '찬란히 빛나는 나의 별'이란 제목의 작은 공연을 올렸다.
가수 안 씨는 노래를 부르기 전 "코로나 이전, 저는 핼러윈 시즌에 이태원에 언제나 있었다"며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참사가 일어났단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르기 전에도 "잊지 말아야 할 죽음이 더는 없게 해달라. 피와 눈물로 써 내린 죽음이 더는 없게 해달라"고 발언했다.
문소리 씨는 이창동 감독 영화 <시>에 나왔던 시 '아녜스의 노래'를 낭독하기 전, 희생자 고 안지호 씨와의 추억을 말하며 눈물을 여러 번 쏟았다. 문 씨는 2021년 드라마 촬영으로 6개월간 경남 창원에서 지내며 안 씨 등 자기 일을 봐주는 스태프들과 한집에서 지냈다. 안 씨는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가던 문 씨는 "한 집에서 먹고 자고, 유튜브를 보면서 같이 운동도 하고,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같이 촬영 나갔다가 촬영 끝나고 돌아오면 떡볶이도 먹고 그런 시간을 보냈다"며 "무척 똑똑하고 밝고 씩씩하고 예의 바른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문 씨는 "'지호야 너희 부모님은 정말 좋으시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딸을 키워내서 얼마나 뿌듯하시겠니?' 오죽하면 이 말을 여러 번 했을까"라며 "촬영 후 복학한 지호는 의상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종종 소식을 전했고, 2022년 10월 29일 졸업 작품 준비를 마치고 이태원에 갔다가 숨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모 공연 사이, 노르웨이 유학생 고 스티네 에벤슨 씨의 부모가 무대에 올라 외국인 유족 대표로 발언했다. 이들은 참사 당시 "스티네(의 관)가 집으로 돌아온 뒤, 한국(정부)으로부턴 긴 침묵이 이어졌다"며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소식은 또 다른 오스트리아인 피해자 인홍 씨의 누나 나리 씨를 통해서였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이들은 "나리 씨를 통해서 1주기 추모식 소식을 알 수 있었고 그때 다시 한국을 찾아, 한국인 부모들이 1년 내내 싸워온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 지 아직 알 수 없고 새 정부가, 그리고 진행 중인 조사 속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스티네와 그의 친구들, 세상 넘어 우릴 이어주는 사람들을 여전히 믿고 있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임원단 소속 활동가 5명이 무대에 올라 시민대책회의 공동선언문을 낭독한 후 추모제는 끝났다.
이들은 "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왜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도, 쏟아지는 인파를 CCTV로 지켜보고도 신속 대응을 안 했는지, 왜 공적 구조 활동은 지연됐고 정부 재난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유족들 호소를 외면하고 진실규명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지"를 물으며 "성역없이 진상을 온전히 밝힐 때까지, 우린 시민들과 함께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참사 당일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이들이 잇달아 생을 놓는 안타까운 비극을 겪었다. 피해 생존자, 구조자들의 현재진행형 고통에 닿기 위해 노력하고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3주기 기억식은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며, 절망의 어둠 속에서 진실을 찾고 희망을 잇기 위해 애쓴 지난날들은 우리가 누릴 안전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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