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주검 인계 지연이 가자지구 1단계 휴전의 뇌관으로 떠오르며 2단계 협상으로 가는 길도 꼬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주검을 절반도 돌려보내지 못한 상태에서 장비 부족을 호소하며 추가 인양에 난색을 표명했고 이스라엘은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투 재개 위협까지 나오며 관련 수사도 점차 험악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IDF)은 적십자사를 통해 인질 주검 2구를 추가로 돌려받아 신원 확인을 위해 법의학연구소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번 휴전 협정을 통해 이날까지 인도된 인질 주검은 총 28구 중 9구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송환된 주검 4구 중 1구는 신원 확인 결과 이스라엘 인질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에 합의를 준수해 "모든 인질"을 돌려보내라고 재차 촉구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스라엘 맹폭으로 인한 잔해 탓에 특수 장비 없인 주검 추가 수습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하마스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성명에서 "구금 중이었던 모든 이스라엘 생존 포로(인질) 및 접근 가능한 주검을 넘겨 합의에 따른 약속을 이행했다"며 "나머지 주검의 경우 회수 및 인양을 위해 광범위한 노력과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1단계 휴전의 기반이 된 트럼프 종전안은 휴전 발효 72시간 내 생존 및 사망 인질 48명 전원 귀환을 약속했지만 하마스는 합의 당시부터 숨진 인질 수색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시사해 왔다. 반면 사망자를 포함해 모든 인질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해 왔던 이스라엘 정부는 주검 송환이 늦어지자 "전투 재개"를 언급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 국방 "전투 재개" 위협·트럼프 "내가 말만 하면 이스라엘군 복귀"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 사무실은 15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안에 따라 하마스는 억류 중인 모든 사망 인질을 송환하고 무장 해제해야 한다"며 "하마스가 합의 이행을 거부한다면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전투를 재개해 하마스 완전 격퇴 및 가자지구 현실 변경, 모든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도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군이 "내가 말만 하면" 전투에 복귀할 수 있다며 하마스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가 무장 해제를 거부할 경우 "내가 말만 하면 이스라엘은 즉시 그 거리(가자지구)로 복귀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들어가 그들(하마스)을 박살 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가자지구에서 공개적으로 활동 중인 하마스 전투원에 대한 미국의 경계 메시지도 나왔다. 중동을 담당하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15일 성명을 통해 "하마스에 가자지구에서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향한 폭력과 총격을 즉시 중단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며 "지체 없는 무장 해제"를 주문했다. 중부사령부는 이러한 우려를 중재국들에게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가자지구 치안을 위해 하마스에 "일정 기간 동안 승인"을 내줬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엇갈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가 현재 폭력단(갱단)을 소탕하고 있다며 이들의 활동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고도 밝힌 바 있다.
하마스는 관련해 전쟁 기간 중 치안 공백 상태에서 구호품 약탈 등을 일삼았던 폭력단 및 범죄자에 대한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 중이다. 이번 주 초 하마스 무장단원들이 가자시티에서 여러 명의 남성을 공개 처형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기도 했다. 다만 외신들은 하마스의 이러한 움직임이 가자지구 통제를 재확립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있어 휴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단계 협상 길도 꼬여…이스라엘은 '추가 인양 난항' 하마스 주장 의심
인질 주검 송환이 쟁점이 되며 휴전 2단계 협상으로 나아가는 길도 꼬이고 있다.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단계 협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지만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총리실 고위 관계자가 이 보도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우린 여전히 1단계에 있다"며 "1단계가 완료됐을 때 2단계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회담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이는 숨진 인질 귀환, 즉 1단계의 완전한 이행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휴전 1단계는 이전에 시행한 적 있는 인질과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교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2단계 이후에선 하마스 무장 해제, 국제안정화군 투입 등 가자지구 안정 및 재건, 전후 통치 등 더 까다로운 문제들이 다뤄질 예정이다.
이스라엘 쪽이 인질 주검 수색 관련 하마스 쪽 주장을 의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15일 미 매체 <악시오스>는 이스라엘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주검에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한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하마스가 주검 관련 최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린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누구도 그들을 관대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다만 미국은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인양 가능한 주검이 없다는 하마스 주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CNN 등을 보면 15일 미 고위 고문들은 취재진에 미국이 하마스가 인질 주검 송환 관련 합의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들은 "합의는 살아있는 인질 모두를 돌려보내는 것이었고 그들(하마스)은 이를 존중했다"며 "휴전 72시간 동안 하마스가 주검 28구를 모두 송환하는 건 설사 그 위치를 다 알았다고 해도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튀르키예(터키)를 포함해 역내 국가들이 주검 수색을 돕고 있고 미국이 유해 수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보에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15일 CNN에 수십 개 나라들이 가자지구 휴전 합의를 지지하고 있고 역내 국가들이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며 휴전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2020년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 및 바레인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한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내세우는 외교 성과 중 하나다.
가자 의료진 "송환된 팔레스타인인 주검에 고문·처형 흔적"
한편 가자지구 의료진은 휴전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로부터 돌려받은 팔레스타인인 주검 90구 중 다수에서 고문 및 처형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15일 <가디언>에 따르면 주검을 본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 소아과장인 아메드 알파라는 "거의 모든 주검이 눈가리개를 하고 묶여 있었고 미간에 총상이 있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처형됐다"며 "흉터와 피부의 변색된 부분은 살해되기 전 구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검에 살해된 뒤 학대가 있었다는 징후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 당국이 신원 확인 없이 주검을 넘겼는데 2년간 파괴된 가자지구엔 DNA 분석을 위한 수단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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