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찰리 커크'를 추모한다. 그가 만들어낼 미래도 함께.

[박세열 칼럼] 왜 한국인이 '찰리 커크'를 추모하냐고?…글로벌 '반동'의 시대 풍경화

미국의 극우 청년 찰리 커크의 죽음은 이미 상징이 되었다. 혁명이 좌파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끝났다.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소위 '좌파들의 혁명' 방법론을 역수입한 극우 반지성주의 세력의 공세가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확인되는 일이다. 중세 유럽의 가상 세계를 그린 <왕좌의 게임>에는 왕좌의 향배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여성(서세이 라니스터)이 권력을 잡자, '하이 스패로우'라는 늙은 남성 교주(구세주)가 '사이비 교리'를 통해 군중을 등에 업고 여왕을 제압해 '신민'을 지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종교는 단순히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삶을 대하는 태도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실천주의와 맞물리고 '구세주'와 같은 상징적 인물이 등장할 때, 모종의 종교적 규범은 정립되기 마련이다. 규범의 다른 이름은 배제이고 처벌이고 차별이다.

지금 전세계적인 '극우 연대'의 움직임은, 디지털 시대 글로벌 종교 탄생의 과정과 같아 섬뜩하다. 심지어 우린 이걸 실시간 생중계로 보고 있다. 마치 영화 <돈 룩 업>처럼, 지구 파멸의 운석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우스꽝스런 풍경화처럼.

홍콩대학교 수석연구원인 알레한드로 레이예스는 <포린폴리시> 기고글을 통해 찰리 커크의 죽음이 왜 한국은 물론 일본, 유럽, 러시아, 심지어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의 '극우 세력'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찰리 커크는 현 시대 우익의 세계 혁명가(마치 '체 게바라'의 그것처럼)와 같은 '상징'을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인물이다. 찰리 커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지만, 그가 설파한 것은 글로벌적으로 창궐하는 '공통된 적대감'과 '공통된 혐오감'이었다.

레이예스는 "수십 년 동안 보수적인 교회, 가톨릭 '친가족' 비정부 기구, 그리고 정교회 전통주의자들은 초국적 유대감을 구축해 왔다"며 "세계가족대회와 같은 행사들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을 러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출신 복음주의자들과 연결해 줬다. 젊고, TV에 잘 맞으며, 디지털 환경에 능통한 커크는 이러한 사회 구조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

즉 전 세계의 '추모객'을 묶어내는 것은 '신학'이나 '백인우월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 양성평등, 세속적 세계주의에 대한 반지성적 반발이다. 찰리 커크는 그 상징일 뿐이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그가 신앙이나 피부색과 관계없이 전 세계 '반지성주의' 세력의 결집 촉매제가 되는 이유다. 이를테면 지금 한국에서 나오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비난해온 찰리 커크의 죽음을 아시아(한국) 인종이 추모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는 조롱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극우 청년 단체 '자유대학'의 찰리 커크 추모 게시글 ⓒ'자유대학' 인스타그램 갈무리

세계는 지금 1968년의 '68혁명' 이후 약 50년간 안착돼 온 인류의 정신(사상) 체계를 새로운 체제로 갈아치우려는 운동을 목격하고 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힘은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68혁명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처럼, 전 세계의 극우 세력은 찰리 커크라는 미국의 반지성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인물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선정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극우 세력이 꾀하고자 하는 혁명은 68년 이후 번영해 온 휴머니즘과 자유주의를 깨부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 가치인 위계적 공동체, 가족주의(가부장주의), 균질주의(반이민 정서)를 회복하려 한다. 이건 일종의 글로벌 체제 복고(Restoration) 운동이고 극우주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의 움직임이다. 히피와 여성과 트렌스젠더, 무슬림, 가족 해체와 온갖 PC주의로 점철된 '타락한 세상'을, 이제 전통적 윤리와 가부장적 위계 질서로 복귀시키려는 운동이다. 이는 인종과 종교, 민족과 상관없고, 지정학적 전통의 정치학을 당황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찰리 커크'들은 세상의 윤리적 기틀이 무너졌다고, 우리의 것을 누군가가 빼앗아가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이들의 무기는 쿠데타나 테러가 아니다. SNS와 알고리즘이다. 사실 AI의 시대는 우리의 기대, 혹은 '인텔리'의 기대와 달리, 폭력과 혐오가 넘치는 새로운 '고전주의'의 시대의 모습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밸리의 AI 구원론자들의 기대와 다르게 말이다. 그들은 사실 '돈'을 버는 게 목적일 뿐이겠지만.

우린 지금 1779년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해 1968년 68혁명으로 완성된 인류의 긴 지적 혁명의 끝자락에 있는 것일 수 있다. 월러스틴 식으로 말하자면, '패권'이 사라진 세계 체제,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이 사라진 세계 체제는 이제 물리적 전쟁과 경제 전쟁이 아닌 '문화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서 전장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의 유타, 일본의 도쿄 한복판이나 파리, 런던의 나이트 클럽, 서울의 명동, 대림동 같은 곳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젊은 '와스프(WASP)'의 상징 찰리 커크는 하나의 표상이다. 한국의 반공 혐중 청년들이나 젊은 힌두 민족주의자들, 동유럽의 네오 나치 청년들, 러시아의 정교회 부흥주의자, 미얀마의 불교 애국주의자 사이에도 '찰리 커크'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주전장'에서 투쟁하던 중 서로 닮은 점을 발견하고 실시간으로 '연대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종교와 인종은 개벌 전장에선 중요하겠지만, 글로벌 전장에선 중요치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 미국의 과격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청년 탈레반들과 '여성의 몸가짐'을 주제로 끈끈하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농담 같은 상상이라고? 상황을 지켜보자.

분명 명동이나 대림동의 혐중 시위대, 윤어게인 시위대나, 트럼프 구원론, 미 항공모함 강림론은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현상의 이면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자유주의 세력이 세계의 퇴행을 연착륙(퇴행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시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전쟁'을 어떻게 덜 폐허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닌가.

나는 찰리 커크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암울한 미래도 함께 추모한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자유주의 세력의 글로벌 연대가 절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찰리 커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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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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