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법정' 판사가 주문 읽자마자 20명이 엉엉 울었다

[현장]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 시민들 승소… 눈물·환호 바다 된 법원 앞

숨죽이고 선고를 듣던 방청객 20명의 울음이 동시에 터졌다. 엉엉 울어버린 방청객도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터져 나오는 중에 재판장은 선고문을 다 읽고 퇴정했다. 남은 이들은 박수를 치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이 사건 기본계획은 이익형량에 하자가 있고, 계획재량을 일탈해 위법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

11일 오후 1시 40분, 서울행정법원 7부 재판장 이주영 판사가 결론을 읽은 직후 벌어진 법정 풍경이다. 울음을 터트린 방청객들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새만금 신공항 사업을 반대하거나, 이 사건 원고로 참여한 시민들이다.

서울행정법원 7부는 시민 1300여 명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제기한 새만금 신공항 사업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국토부의 기본 계획 수립 절차상 심대한 하자가 있기에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사업은 비용편익비가 0.479에 불과하다고 평가돼 사실상 경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받은 채 추진됐다"며 "이 사건 사업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침해될 공익 또는 사익보다 상당한 우위에 있어야만 사업 추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기본계획은 사업 부지 입지를 선정하면서 각 후보지의 조류 충돌 위험성과 공항 안전성을 비교 검토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관계 규정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에 따르면, 피고(국토부)는 후보지들의 조류 충돌 위험을 면밀히 평가한 뒤 이를 고려해 입지를 선정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복수의 평가 모델) 모두에서 국내 어느 공항보다 조류 충돌 위험이 크다고 나타났음에도, 평가 모델을 일관성 없이 적용하고 평가 대상 지역을 축소하는 등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며 "이마저도 입지 대안 비교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이 사건 사업 부지(새만금 수라갯벌)를 공항부지로 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의 희생자를 낸 무안공항 참사를 언급하며 "피고(국토부)가 이 사건 사업부지와 조류 서식 환경 및 규모가 유사하다고 주장한 무안국제공항에서 조류 충돌에 기인한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본 계획 수립 다음에 이뤄지는 환경영향평가에서는 공항 입지를 변경하는 게 불가능하며, 조류 충돌 위험 저감방안은 사업부지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 새들이 유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서 조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조류를 보호하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조류 충돌 위험 저감 방안을 수립하는 것에는 더더욱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사업부지는 현재 염습지 상태로서 풍부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고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등 다양한 개체군이 발견된다"며 "7㎞ 이내엔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서천갯벌이 존재하는 데다, 이 사건 부지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EAAF) 거점 서식지 역할도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조류 서식지 파괴, 생물 다양성 훼손, 생태계 훼손 가능성은 이 법정에 출석한 전문가 증인들에 의해 충분히 사실로 인정되고, 피고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기본 계획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검토 조사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이 사건 사업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지역 균형발전)이 침해될 공익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기본 계획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결여해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선고했다.

▲판결 선고 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문정현 신부와 시민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프레시안(손가영)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등은 11일 오후 2시 경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로 승소를 축하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환호성 터진 행정법원 앞… "국토부, 항소 꿈도 꾸지 말라"

선고 직후, 지하 법정에서 법원 건물 앞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는 길 내내 시민들의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겼다", "살렸다" 등의 격려의 말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서울행정법원 정문 입구에선 방청객 원고들을 기다리던 연대 시민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시민들은 "안 믿어진다. 누가 때려달라"라고 서로 말했고, "우리가 지켰다"고 말하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어떤 이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닦았다.

소송 후 열린 승소 판결 기념 기자회견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참가자들이 펼친 현수막엔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인용판결 당연하다. 학살의 시대를 끝내고 생명의 시대로 나가자"는 문구가 적혔다. 2001년부터 새만금 간척 사업에 반대하며 새만금 구역 생태 보호 투쟁을 이어 온 문정현·문규현 신부도 현수막 뒤에 섰다.

원고를 대리한 최재홍 변호사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며 "오늘 판결은 정부의 무분별한 공항 건설 행위에 제동을 건 획기적인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새만금이 끝이 아니다. 제주 제2공항 안 끝났다. 백령도 공항 안 끝났다. 가덕도, 흑산도 안끝났다. 뭔 놈의 공항이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고 소리쳤다.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활동가는 최 변호사를 소개하며 "자신을 '패소 전문 변호사다. 이 재판 못 이길 거다'라 말하며 소송을 처음 제안해 주신 분"이라며 "그게 믿음직스러웠다.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 소송을 시작하자는 게 더 믿음직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항소 꿈도 꾸지 마십시오!"

활동명을 '딸기'라 밝힌 시민은 쉰 목소리로 정부에 항소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는 새만금 신공항 계획 취소를 주장하기 위해 꾸려진 '새, 사람 행진단' 소속으로, 지난 8월 12일 전주를 출발해 한 달여 간 260킬로미터를 행진해 서울에 도착했다. 지난 8일부터 3일간 진행된 서울행정법원 앞 1만 3000배 릴레이 기도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하나의 판결이 아니라, 그동안 독재적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으로 진행된 모든 국책 사업에 대해 재검토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제 정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화답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자"가 외쳤다.

문규현 신부는 기자회견 참가자들 앞에 서서 큰 절을 했다. 선고 방청도 했던 그는 법정에서부터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문규현 신부가 2003년 정부의 간척 사업 강행으로부터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6km를 3보 1배로 걸었던 행동은 한국 환경운동사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형이자 함께 20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도 "영점 영영영영 퍼센트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이겨본 적 없기 때문"이라며 "오늘도 내내 패소 판결 받았을 때 내가 어찌 분풀이를 할 건지만 생각했는데 허사가 돼버렸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문 신부는 "패소를 생각하며 새만금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모든 마을을 누비고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앞으로도 해야 할 것 같다"며 "오늘을 계기로 개발이 무엇인지, 환경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사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만들자"고 소리쳤다.

이들과 똑같이 부산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현욱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집행위원도 마이크를 잡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계획 취소 소송도 진행 중"이라며 "반드시 취소 선고가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가덕도도 지켜 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참가자 12명의 발언이 끝난 후 집회를 마무리했다. 사회를 본 김지은 활동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귀한 혈세 낭비하지 마십시오. 행정력 그만 낭비하십시오. 제발 해야 할 일을 해주십시오. 항소 어림없습니다. 포기하십시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등은 11일 오후 2시 경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손가영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