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제발 내려라" 전면 단수 앞둔 강릉… 요강까지 등장

바싹 마른 대파·배추, 농민들 "가슴 타들어가, 특별재난지역 선포해달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강릉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지 9일로 11일째다. 아파트, 대형 숙박시설 등은 지난 6일부터 급수를 제한했다. 특정 시간대에만 급수를 하면서 빨래, 설거지, 목욕, 용변 처리까지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강릉은 빠른 시일 내에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전체 가구가 단수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강릉시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는 12.3% 저수율을 기록했다. 저수지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지난 4월부터 물이 빠르게 줄어든 오봉저수지는 호우가 집중됐던 7월 중반을 제외하곤 저수율이 증가한 적이 없다. 4월 저수율 93%에 달하던 저수지는 5개월간 12.3%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지난 6일 저수조가 100톤(t) 이상의 건물에 제한 급수가 실시됐다. 아파트 단지와 각종 리조트와 호텔 등 대형 숙박시설 123개소가 수도 계량기를 75%까지 잠궜다. 하루 물 공급량이 정해져 있어, 특정 시간대엔 아예 단수하는 시간제 급수도 진행 중이다.

주민 불편은 극에 달했다. 설거지를 하지 않으려고 비닐을 사 식판에 씌우거나 일회용 수저를 사용하는 가구도 늘었다. '용변 처리 문제로 요강을 사야 하느냐', '물 절약 방법이 있으면 공유해달라'는 글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 출산과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들도 등장했다. 강릉시는 지난 1일 수영장을 포함한 공공 체육시설을 모두 폐쇄했다.

홍진원 강릉시민행동 운영위원장은 9일 <프레시안>에 "관광객이 현저히 줄었다. 3분의 1 정도가 줄었다는데, 체감상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호소하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적지 않다"며 "계속 충분한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물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점이 정상 영업을 못 하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9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가 바짝 말라붙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최악의 가뭄 사태를 맞고 있는 강릉지역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이날 오전 6시 기준 12.3%로 전날(12.4%)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연합뉴스

농사 포기 속출… "가뭄 재난에도 농업 뒷전" 원망

농지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홍 운영위원장은 "농민들은 (강수량이 감소한) 5월부터 가뭄 피해를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제일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미 재난 선포 전부터 물을 대지 못해 직접 관정을 파거나 급수차를 대는 등 사비를 들여 해결했고, 이마저 못한 농민은 농사에서 손을 놔야 했다"고 전했다.

현재 강릉에선 바싹 말라버린 대파밭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홍 운영위원장은 "2~3주 전 겨울 배추 모종을 심은 농가는 이 모종이 말라 버려 배추 농사를 접었다"며 "아직 심지 않은 농가는 아예 농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추수 시기인데, 벼는 추수 직전까지 비가 충분히 와야 이삭 수가 많고 영글어진다"며 "논에 물을 못 댄 농가의 벼는 시장에 팔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과 강릉시 농민회는 9일 오전 강릉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강릉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강원도와 강릉시는 농업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며 "농민들에게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언론은 식수난에만, 오봉저수지 저수율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며 "농민들의 피땀으로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있는데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농민들의 가슴은 타 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사람만큼 지금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 바로 강릉시민들 먹거리를 제공하는 논밭이지만, 식수난의 뒤로 밀려 있다"며 "식량과 먹거리 문제는 뒷전인 듯 보인다. 재난사태 선포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여전히 제외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부터 9월 9일까지 강릉시 오봉저수지 저수율 그래프. 파란색은 평년값, 갈색이 올해 값이다. ⓒ농업가뭄관리시스템
▲2023~2025년 및 평년 여름철 강릉 강수량 비교. ⓒ농업가뭄관리시스템

바싹 마른 영동, 그러나 강릉 가뭄은 '인재'

올해 강원 영동 지역은 강수량이 유난히 적었다. 이번 여름철 강수량은 232.5㎜로 평년(30년 평균값) 679.3㎜의 34.2% 수준이다. 강수일수도 24.7일로 평년보다 18.3일 적었다. 여름철 강수량과 강수 일수 모두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반면 강원 지역의 여름 평균 기온은 7월에 26.1℃(도), 8월에 26.2℃로 각각 역대 최고 2위를 기록했다.

폭염과 남풍 계열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서 가뭄은 더 강해졌다. 기상청은 "짧은 장마철 기간과 무더위 지속으로 강수일수가 적었다"며 "강원 영동은 태백산맥으로 인한 지형효과로 강수량이 더욱 적었다"고 밝혔다. 남서풍이 불어 바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영서지방에 비를 다 뿌리고 건조해진 바람이 영동지방에 불어왔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번 강릉의 가뭄 재난은 인재라는 것이 지역 사회 평가다. 동해, 속초 등 영동 지역 도시들이 취수원을 다변화할 때, 강릉은 가뭄 등의 재난을 대비하는 물관리 정책을 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초시는 쌍천(하천)을 주 수원으로 활용하며 지하댐 2곳과 14개의 암반관정(암반층을 뚫어 지하수를 퍼 올리는 시설)을 추가로 마련했다. 반면 강릉시는 생활용수의 87%를 오봉저수지에서 공급받고 있다.

도암댐 강조 언론에 "제발 신중히 보도" 호소

현재 강릉 현장에서 운영되는 급수차는 500여 대다. 강원도청은 8일 도내 17개 시군에서 급수차 100대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급수차와 군 트럭 등은 강릉 인근의 연곡천에서 물을 퍼와 오봉저수지에 공급하고 있다. 하루 1만 톤가량으로 전해졌다.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인근 도암댐 물 방류가 단기적 대책으로 제시된다. 홍 운영위원장은 "언론은 받아쓰지 말고, 제발 신중하게 보도해 달라"며 "도암댐 물은 객관적으로 쓸 수 없다. 3~4급수 수준의 물인 데다, 지금 방류를 결정해도 물 공급까진 2~3년이 걸린다"고 반박했다.

홍 운영위원장은 "더구나 도암댐 물은 절대 방류해선 안 된다는 강릉 시민들이 많다. 부정적 여론이 상당하다"며 "과거 오염된 도암댐 물로 피해를 봐 당시를 기억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9일 기준, 기상청은 오는 13일 강원도 전 지역에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예보했다. 다만 강수량은 확실치 않다. 1~2주 이내에 충분한 강수가 내리지 않으면,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0% 이하로 내려갈 위험도 있다. 강릉시는 전체 가구가 제한 급수 등 단수 조치에 들어갈 위기 상황에 놓였다.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도암댐의 도수 관로가 당장 가용한 대책으로 거론된다. 홍 운영위원장은 "수질이 양호해 활용할 수 있다면, 도수 관로에선 하루 1만 톤가량의 물을 제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며 "현재 급수차 등이 다른 곳에서 공수해 오는 물이 1만여 톤, 남대천 쪽의 지하수 5000톤, 최근 강릉시가 지하수 관정을 시작한 곳 등을 합하면 대략 3만 톤 정도는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강릉시는 하루에 4만 톤 정도의 물이 필요하니, 당장의 대책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충분한 비가 내리는 게 가장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농 강원도연맹과 강릉시 농민회가 9일 오전 강릉시청 앞에서 '강릉시 가뭄사태에 직면한 농업피해 농민생존권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구했다. ⓒ전농강원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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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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