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해 된다? 전면적 기후 대응에 난망한 李정부의 기후에너지부

화석연료·핵에너지 산업부 잔존, 기후-에너지 정책 통합 실패... "안 하는 게 낫다" 평가까지

정부의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안을 두고, 기후·환경 단체 사이에선 기후 대응을 위한 통합적 부서 신설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환경부로 옮기긴 했으나,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정책 부문은 그대로 산업부에 남김으로써 전면적인 기후 대응이 여전히 난망하다는 우려다.

정부는 지난 7일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 부문을 대거 환경부로 옮기고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한다고 밝혔다. 지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기후에너지부'를 별도 신설하는 안이 함께 검토됐으나,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실을 환경부로 이관해 확대 개편하는 안이 채택된 것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산업 분야와 핵에너지 수출 정책은 이관되지 않았다. 화석연료를 뺀 나머지 전력, 재생에너지 등의 부문만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로 통합됐다. 핵에너지는 수출 부문만 산업부에 남고, 나머지 산업 진흥, 안전 관리, 방폐물 관리 등의 정책이 기후에너지환경부 소관으로 재편됐다.

녹색연합은 8일 논평을 통해 "기후생태위기 대응을 위한 주무 부처라기 보다, 탄소중립을 명분삼아 에너지산업 육성부서를 만들어 환경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그림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애초 기후에너지부 신설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엔 부처 간 정책 충돌로 기후위기 대응이 일관적이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이 구조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환경부와 산업부는 석탄 감축 목표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치를 두고 정책적으로 대립해 왔다. 전반적으로 산업부는 산업 경쟁력이나 에너지 안보 등을 강조하며 온실가스 감축에 '속도 조절(완화)'을 우선시했다면, 환경부는 이보다는 더 강한 규제와 신속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산업통상부에 석유, 석탄, 가스, 광물과 같은 자원과 원전 수출을 그대로 둬 오히려 에너지 정책을 이원화할 뿐 아니라, 하루빨리 퇴출당해야 할 탄소 다(多) 배출 에너지산업을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통제 밖에 두고 있다"며 "이는 신설될 부처가 기후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부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오히려 해가 된다"며 "정부조직개편안은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8일 <프레시안>에 "화석연료, 핵에너지 등의 산업계 기득권의 방어가 성공했고, 정부는 이를 어물쩍 넘어간 것"이라고 짚었다.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책의 통합 필요성이 얘기되는 동안 산업계의 반대가 계속 있었는데, 이들 요구대로 정책이 통합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산업계 요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걸 명시적으로 보여준 결과"라는 설명이다.

한 연구위원은 대통령이 공기업 통폐합을 주문한 상황에서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가 더 가속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지휘하게 될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로 에너지 시장의 발전을 한전이 가로막고 있다거나, 한전을 분할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사람"이라며 "전력 부문이 넘어가면서 한전과 발전 공기업도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갈 테니, 장관의 지향 안에서 다뤄질 영향이 높다"고 내다봤다.

▲전국에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4일 대구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올해 기후 예상도를 나타내고 있는 SOS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차라리 개편 안 하는 게 낫다"

기후에너지부 별도 신설을 주장해온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8일 <프레시안>에 "이런 식이라면 환경부, 산업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며 "불필요한 혼란만 더 가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정책위원은 "제일 큰 문제는 환경과 관련된 규제와 진흥 정책이 한 부처로 모인 것"이라며 "진흥과 규제 업무는 자동차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처럼 각자의 역할이 분명해야 하는데, 한 부처에 있으면 속도도 못 내고 감속도 못 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처 간 정책 갈등이 기존 구도였다면, 신설 부처에선 환경과 기후위기를 담당하는 1차관과 에너지를 담당하는 2차관이 한 부처 내에서 갈등하게 되는 셈"이라며 "자연생태 보호, 폐기물 관리 등 전통적인 환경부 업무가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정책위원은 나아가 "현재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에너지 비중이 훨씬 큰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에너지 정책 전체를 총괄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며 "핵에너지 정책이 둘로 쪼개지며 한국수력원자력의 소관부처는 산업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두 군데가 됐다. 말이 안 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 정책위원은 개편안을 게리맨더링에 비유하며 "부처 간 이해관계 때문으로 보인다"며 "산업부는 핵에너지 수출을 넘기기 싫고, 전체 30%를 넘게 차지하는 핵발전을 기후에너지부서로 이관하지 않을 순 없으니 이런 이상한 형태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온실가스 감축, 한국 아직도 미적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환경부는 8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2018년 대비 감축률)' 안을 4개로 정리해 제시했다. △산업계가 요구한 40% 중후반대, △직선형 감축 경로인 53%, △유엔 IPCC가 제시한 61%, △기후환경단체 등이 제시하는 67% 등이다. 기후단체들은 국제사법재판소나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의 온실가스 감축 기준을 지키려면, 최소 61%를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플랜1.5'는 8일 낸 성명에서 40% 중후반대와 53%가 환경부 안에 포함된 것에 대해 "미래에 지나친 부담을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임의적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녹색전환연구소도 두 가지 안에 대해 "기후 대응의 시급성과 세대 간 정의를 외면한 선택이며, 1.5℃란 (지구 기온 상승) 기후 마지노선을 훼손할 수 있다"며 "정부는 국제적 원칙에 따라 최소 61% 이상 감축이란 야심 찬 목표를 확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부문별 정책·재정 계획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 결과 및 정부조직 개편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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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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