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의 날' 기념식에 김훈 "주검 위에 건설 없다…죽음의 역사 청산해야"

장관·기업인 등 온 행사장 찾은 산재 유족들 "사람을 잃은 자리에서 축하하지 말라"

건설 기업인과 정부 공직자들이 모여 제35회 건설의 날 기념식을 연 27일, 행사장 앞을 찾은 건설 노동자 산재유족들이 "사람을 잃은 자리에서 축하하지 말라"며 건설현장 안전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김훈 작가도 "주검 위에 건설 없다"며 힘을 보탰다.

건설산재 유족들은 이날 기독교·원불교·천주교 등 5대 종단 성직자들과 함께 건설의 날 기념행사장인 서울 강남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 안전의 절박함을 호소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전 10여 명의 유족은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건설 기업인과 정부 공직자들을 향해 "산재사망 1위 추락사 막아야 한다", "노동자도 소중한 가족이 있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한 시간 가량 선전전을 진행했다. 옆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라" 등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한 건설노조 조합원들도 회견이 끝나자 함께했다.

기념식 참가자들은 자동차에 탄 채, 혹은 걸음을 재촉하며 그 곁을 지났다. 그들이 입장하는 건설회관 건물에는 '중대재해 근절'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유족들은 이날 기념식에 온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건설 안전 사회적 협의체 구성 △건설의 날 기념식순에 '산재 희생자 추모 묵념' 배치 △'건설의 날'을 '건설 안전의 날'로 변경 △건설 안전 대책 마련 및 지속 시행 등을 담은 요구안을 직접 전달하고 싶어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 제25회 건설의 날 기념식이 열린 27일, 건설 산재 유족과 건설 노동자들이 행사장인 서울 강남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 안전대책 마련 요구를 위한 선전물을 들고 서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회견에서 건설 노동자 고 문유식 씨 딸 문혜연 씨는 비계에서 추락해 숨진 아버지가 "안전모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일했고, 현장에 추락을 막기 위한 안전난간도 없었다"며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 늘 '괜찮다'고,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그렇게 쓸쓸하게 떠났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죽음 앞에서, 회사가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사과도, 유가족에게 어떤 설명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고의 원인을 한파의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서, 저는 이 사회가 노동자의 죽음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는지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문 씨는 "건설은 분명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하지만 더는 사람의 목숨을 초석 삼아 유지되는 성장이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사람을 잃은 자리에서 축하하지 말라. 여기 세워진 수많은 건물 아래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 대책을 마련하라. 이는 건설산업의 책임이자 사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호소했다.

역시 비계에서 추락해 숨진 건설 노동자 고 이재현 씨의 딸인 이성민 씨도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사고 이후 어머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살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딸들 집을 전전하며 매일 눈물로 하루를 버티고 계신다"며 "발주사부터 하청까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책임을 끝까지 다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건설 노동자 고 강대규 씨 딸 강효진 씨는 건설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기업인과 공직자들을 향해 "후진국형 사고로 내 아버지를, 자식을, 가족을 잃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 울이고 국적을 불문하고 건설업에 몸 담아 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귀히 여기길 바란다"며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개선이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건설의 날인 27일 서울 강남 건설회관 앞에서 열린 산재 안전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건설 산재 유족들. ⓒ프레시안(최용락)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인 김훈 작가도 이날 회견에 호소문을 보내 힘을 보탰다. 백도명·송경용 등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들이 함께 이름을 올린 호소문에서 김 작가는 "오늘 '건설의 날'을 맞는 경축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죽고 다친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그 유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들은 날마다 노동현장에서 죽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노동현자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고 그 중 40% 이상이 건설업종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는 "이 수많은 죽음들은 모두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나 이윤은 대기업으로 들어갔고 책임은 하청 라인의 밑바닥으로 내려갔고 죽음과 고통은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며 "이러한 산업구조가 굳어지고 죽음이 일상화됨으로써 한국사회는 이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상실했고 감수성은 무뎌졌다"고 짙타했다.

이어 "2025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정치적 동력이 작동되고 사회적 문위기가 확산되거가고 있다"며 "끄러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생명은 날마다 희생되고 있고, 건설업종에서의 사고도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김 작가는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건축 구조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경영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산업재해는 한국사회에 유습된 인공재난이다. 이 죽음의 역사를 청산함으로써 기업과 노동자와 시민사회는 함께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건설의 날' 기념식에 오신 여러 건설 기업인들과 정부 공직자들이 저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주시기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회견이 끝나자 옆에서 결의대회를 준비 중이던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유족 분들 힘내세요"를 외쳤다. 그 소리를 배경으로 유족과 참가자들은 김 장관에게 건설 안전대책 마련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건설회관 앞으로 행진했다. 눈물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가며 전달한 유족들의 요구안을 받아 간 이는 정부 인사가 아닌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관계자였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 치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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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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