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소품샵을 운영하는 A(27) 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여자애가 그렇게 살이 쪄서 되겠느냐", "너 먹는 모습 보니 내가 다 부대껴서 못 먹겠다" 등 여자라면 살이 쪄서는 안 된다는 외모 압박을 받으며 자라 왔다. 성인이 된 그에게 다이어트 약 복용과 지방흡입 수술을 강요했던 부모님은 최근 아무 상의 없이 위고비를 처방 받아와 A 씨에게 사용할 것을 강제하기까지 했다.
평생 평균 체중을 유지해 온 대학생 B(25) 씨는 최근 공황장애 등 정신적 위기를 겪으면서 10킬로그램(kg)가량 체중이 늘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당장 위고비를 맞아서 살을 빼라. 그렇지 않으면 자취방을 빼고 서울에서 살 수 없게 하겠다"며 B 씨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당뇨를 겪으면서 건강에 민감해진 아버지가 고도비만 상태에서 위고비를 사용해 급격히 체중을 감량한 지인의 사례를 접하자 자신의 딸에게 위고비를 사용해 평균 체중이 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위고비(성문병 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 등 주사 형태의 비만치료제가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여성을 향한 외모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체중이 아닌 여성들이 '자기관리'를 명목으로 위고비를 처방받는 사례는 일상이 됐고, 부모에게 위고비 사용을 강요당한다는 딸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마른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여성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몸을 잘라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고 있다. <프레시안>은 섭식장애와 위고비 사이에서 시름하는 7인의 여성들을 만나 '외모 지옥'에 헤어나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물었다.

"위고비 받으러 왔어요" 한 마디에 정상 체중에게도 처방…끝없는 간증에 부모님이 사용 강요하기도
165센티미터(cm)의 키에 40kg 대의 저체중을 유지해 온 강원도 거주자 C(26) 씨는 지난 4월 체중 증가로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자 연예인들의 체중 감량 간증이 쏟아진 위고비를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는 곳 근방에서 가장 저렴하게 위고비를 처방해 준다는 내과에 방문해 "위고비 받으러 왔어요" 말하자 곧장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C 씨를 보며 "엄청 비만은 아니신 것 같은데?" 잠시 의문을 표하던 의사는 별다른 진료 없이 처방전을 내줬다.
이는 BMI(체질량지수) 30 이상 또는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이 있는 성인에게만 비만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다는 현행법을 위반하는 처방이다. 그러나 인터넷 광고와 비대면 진료 플랫폼 등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홍보가 쏟아지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위고비 갤러리'나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별다른 검사 없이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처방해주는 병원을 '성지'라 부르며 공유하는 추세다.
최소 용량만으로도 월 30만 원 넘는 상당한 금액을 지출해야 하지만, 체중 감량을 염원하는 여성들은 이를 기꺼이 감수한다. 지금껏 나온 비만치료제들 중 가장 효과가 좋으면서도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C 씨는 "연예인들이 위고비 사용으로 체중을 감량했다고 말하고 있어서 많은 여성들이 '나도 한번 사용해 볼까?' 혹하는 상황"이라며 "식욕억제제는 마약 성분이 있다거나 복용 시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등 위험하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위고비는 쉽게 뺄 수 있으면서도 위험하지 않다는 보도가 주를 이뤄서 다른 비만치료제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다수 위고비 이용자들은 사용 후 체중 감량 또는 식욕 절제 효과를 보고 있다고 증언한다. C 씨는 위고비 복용 후 별다른 부작용 없이 10kg 감량에 성공해 저체중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자신의 성별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위고비 사용자 D(22) 씨는 <프레시안>에 "음식을 먹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기 어려워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공과금을 미뤄서라도 주문했었다"며 "위고비를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식욕이라는 폭주기관차를 막을 수 있게 돼 삶 전반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자신뿐 아니라 '자기관리'라는 명목 하에 표준 체중임에도 저체중을 향해 위고비를 사용하는 2030 여성들이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끝없는 간증에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가 유행을 타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비만치료제 사용을 강요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젊은 여성은 살이 쪄서는 안 된다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졌거나 자녀의 건강에 집착하는 부모들이 언론 보도와 연예인들의 증언, 주위 지인들의 경험담을 통해 비만치료제의 효능을 접한 뒤 자신의 딸에게 사용을 강요하는 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용자가 비만치료제로 극적인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유년 시절 정상 체중일 때부터 가족으로부터 다이어트를 강요받아 온 직장인 E(30) 씨는 전보다 체중이 늘었단 이유로 더욱 거센 압박을 받아 위고비와 유사한 비만치료제인 삭센다를 처방받았으나, 수십kg를 감량했다는 가족 지인들의 증언과 달리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후 사용한 다이어트 약물도 별 소득이 없었지만, 그의 가족은 여전히 E 씨에게 위고비의 효능을 언급하며 체중 감량에 대한 압박을 주고 있다.
모친에게 동의 없이 처방받은 위고비 사용을 강제당한 A 씨 또한 현재까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A 씨의 모친은 "미국에서 새로 들어온다는 주사제를 맞자"며 딸에게 계속해서 체중 감소를 요구하고 있다. A 씨는 <프레시안>에 "부모님이랑 식사할 때마다 체했을 정도로 불안장애가 심했다. 살 이야기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라 그만 언급했으면 좋겠다"며 부모님의 체중 압박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위고비 신드롬 이면의 '마른 몸 지옥'…거울에 비친 자신 보며 "몸 잘라내고 싶어"
'게임 체인저', '위고비 신드롬' 등 찬사가 쏟아지는 위고비의 이면엔 전보다 더욱 거세진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이 있고, 이런 선망은 특히 여성들을 향한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처방된 위고비 8만3305건 중 남성이 3만1875건, 여성이 5만1430건으로 여성이 61% 더 많이 처방받았다. 반면 지난달 30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의 비만율은 48.8%, 여성은 26.2%다. 비만율은 남성이 두 배 가까이 높은데 비만치료제 사용은 여성이 훨씬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번갈아 겪어 온 IT 업계 종사자 F(29) 씨는 167cm 키에 54kg로 저체중에 가까운 몸무게임에도 살이 너무 쪘다고 생각해 지난 6월 평소 다니던 병원의 주치의에게 위고비 처방을 요구했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체중뿐"이라며 다이어트에 집착했고, 그런 F 씨에게 50kg대의 몸무게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실패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반대해 위고비는 사용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F 씨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한 걸 알면서도 갈비뼈가 드러나는 몸이 아니면 불안해하는 등 체중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위고비 대신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을 복용하고 있는 대학생 G(22) 씨의 경우 거울을 보고 "몸을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돼 지방흡입 수술까지 했다. 평생 저체중으로 살던 그가 지난해 처음 정상 범주의 몸무게가 되자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살 좀 붙은 것 같다?'는 질문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사람들이 타인의 외모에 관심이 많구나"라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던 G 씨였지만, 반복되는 질문에 어느 순간 섭식장애에 빠졌다. 칼로리 제한으로 시작한 그의 거식증 증세는 음식을 씹고 뱉거나, 고체 음식을 먹지 않고 액체만 먹거나, 변비약으로 섭취한 음식물을 전부 배출하는 식의 행위로 이어졌다.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은 여성의 일상생활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섭식장애를 겪기 시작한 뒤부터 G 씨는 대학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나 학회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기자를 꿈꾸며 학보사 활동과 기자 지망생 교육 수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으나, 이제 자기발전에 대한 욕망이 일체 누그러지고 모든 관심이 몸으로 쏠렸다"며 "마른 나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크고, 식욕을 통제하지 못할 때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고 했다.

'구조적 폭력' 알아도 혼자서는 빠져나오기 어려워…"채찍질 말고 서로 보듬어가며 살자"
<프레시안>이 만난 여성들은 자신이 마른 몸에 대해 강박을 가지게 된 배경에 여성만을 향한 사회적 압력이 자리잡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F 씨는 "섭식장애 초기에 살이 쭉 빠지면 주위에서 '살 진짜 많이 뺐다', '너무 예쁘다', '어떻게 뺐어?' 등 칭찬을 해주니 더 심해진다"며 "반면 남성들은 마르고 싶다는 감각부터가 잘 없다. 마른 여성에 대한 찬양은 있어도 마른 남성에 대한 찬양은 없지 않느냐"고 했다.
G 씨도 "섭식장애든 비만치료제든 남성보다는 여성이 좀 더 취약하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 비해 타인의 평가가 더 박하고, 자신을 정체화할 때도 몸을 기준으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스스로도 여자는 말라야 예쁘다는 의식을 하게 돼 섭식장애에 걸리는 비율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위고비 신드롬이 한국 여성들이 마른 몸에 집착하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임신이나 폭식증 등의 현상으로 잠시 체중이 증가한 여성들이 살을 빼기 위해 위고비를 찾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고,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아닌 체중의 여성들이 위고비를 맞았을 때 이를 문제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즉 마른 몸을 갖지 못한 여성들을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E 씨는 "삭센다를 사용했지만 별 효과를 못보고 중단 후에 요요현상이 왔을 당시 '남들이 다 효과를 봤다는 약물에 거금을 투자하고도 별 소득을 못봤다'는 스트레스가 몹시 컸다. 스스로가 굉장한 의지박약으로 느껴지기도 했다"며 "정신과를 다니며 복용하던 약 중 살을 찌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약이 있어 살이 찌는 것 자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자의든 아니든 '내 체중은 내 업보'라는 자책감이 더 커졌다"고 회고했다.
끝없이 마른 몸을 강요하는 지옥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40kg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도 건강한 몸을 지키고자 최근 50kg대를 유지하기 시작한 F 씨 곁에는 묵묵히 곁을 지키며 병원 방문과 약물·영양제 복용을 챙겨준 배우자가 있었다. 그는 "증세가 심할 땐 지금과 같은 체중일 때에도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체중이 2배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남편이 몇 개월 동안 인내심을 갖고 정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줘서 지금은 평균 체형으로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여성을 '마른 몸 지옥'으로 이끄는 구조를 직시하고 서로를 보듬어 나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B 씨는 "어떤 여성이든 여성으로 패싱되는 과정 혹은 성장하는 과정은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을 동반한다. 그런데 획일화된 몸의 이상적 기준은 점점 피규어처럼 기이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절할 수 없는 식이나 식욕에 대해 스스로 너무 채찍질하지 말고 서로 보듬어가며 살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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