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선정을 앞두고 예산이든 시설이든 무엇인가 더 투입할 것을 바라는 목소리와 달리 불개입 혹은 무위(無爲)의 정치를 요청하는 분야가 있다.
새만금∙제주∙가덕도 등 전국 10개 신공항건설 반대, 설악산∙지리산 등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하천 재자연화를 위한 4대강 보 철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14개의 기후대응댐 건설 반대 등이 대표적이다. 용인∙평택 반도체클러스터를 집중 지원하기 위해 전국의 고압송전로 지형까지 바꾸려는 계획 반대와 신규 원전 및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환경운동가와 지역사회 활동가들이나 '할 법한' 에피소드처럼 다뤄지면서 보도되지도 않거나 비중이 축소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특정 지역의 개발사업에 대한 이해관계 차원을 넘는다. 지역균형개발 혹은 지역경제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지구기후생태시스템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정치공동체에 철학적 전회(轉回)가 필요함을 환기시키기 위한 실천이다. '내가 사는 곳, 제 모습대로' 를 주장하는 모든 지역사회운동의 요구는 그러한 정치적 책임과 철학적 전회를 당면과제로 삼지 않는 기득권 지역균형개발 담론에 대한 반격이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권위주의 개발독재정권과 군사독재정권, 민주화 이후의 정부 모두에게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운영세력이 빠트려서는 안 될 핵심 테제였다. 이제껏 관통하는 기득권 지역균형발전 담론에서 중앙정부는 기획자가 되고 지방정부는 피동적 수혜자이자 치적으로서의 메가프로젝트 기한에 맞춰 자원을 총동원하는 협력자의 위상이었다.
또한 그 담론은 대도시 모델의 기능적 이식으로 지역이 동일하게 활성화될 수 있고, 첨단기술을 통해 대규모 개발사업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기획을 구상하는 정치인∙어용 전문가와 산업계∙기술관료의 '폐쇄형' 지식은 지역 현장의 '생생한' 시민지식이나 경험보다 우위에 있으며, 모든 상황을 완전히 제어할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법(2004)을 제정하고 지방시대위원회(2023)까지 출범했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수도권의 인구집중과 수도권 경제력 집중도의 심화라는 명백한 반테제에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담론은 권력과 자원을 직접 행사하기 때문에 세력과 여론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공간적으로 분산되며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나는 개발사업의 영향을 비판하는 대항담론은 그만한 힘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령 2012년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이 완료된 이후, 낙동강은 심각한 녹조로 인해 식수원으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농작물에도 독성물질을 잔류시키고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추적>에서는 그동안 녹조 해결을 방해한 것이 국민의힘과 영남의 지방정부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지역사회는 국정계획의 파트너가 된다고 하더라도 기득권 담론의 입맛에 맞을 때만 호명된다. 2023년 새만금잼버리를 중앙정부가 관여하는 메가이벤트로 격상시켜 놓았다가, 정작 파행 이후에는 새만금개발계획을 점검한다며 책임을 전북에 떠넘기듯이 다음 해 예산 집행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몇 달만에 예산은 복원되었고, 심지어 이재명 정부는 당시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을 국토부장관에 지명하였다.
이 경과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이성의 본질은 잘못된 국가행정에 대한 비판이 통치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수단으로 지역을 앞세우되, 지역이 책임있는 행정을 수행할 역량과 자율성을 확대하는 대신 중앙정부의 지배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지역에 대하여 국가이성을 관철시키는 또 하나의 유용한 수단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이다. 예타는 '경제성'과 '정책성' 외에 비수도권지역에 대해서는 '지역균형발전'을 평가항목으로 두고 가중치를 차별화하는 동시에, 정치적 임의성이 작용할 여지가 큰 예타면제 정책사업을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예타면제 도입 이후 대규모 SOC사업들이 크게 증가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예타면제사업은 그 자체로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비수도권사업에 대한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고려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업이 확정되면 사업추진여건과 사회적 가치(일자리 효과, 생활여건 향상, 환경성 평가, 안전성 평가)의 변동이나 그에 대한 비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국토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사업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을 엉터리로 작성하더라도 환경부가 졸속으로 협의해주면 명백한 절차적 하자임에도 사업은 추진되는 것이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역 공공병원 설립은 번번히 예타에서 탈락하지만,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 생태계 파괴 등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타조차 생략하며 밀어붙이는 가덕도신공항계획을 보면 결국 그 본질은 세금 낭비나 미래세대의 부담을 따질 것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토건 부양과 자본 순환을 통한 기득권 국가균형개발 담론의 유지이다.
역시 하루만에 졸속으로 예타면제를 받고 추진중인 새만금신공항사업에 대하여 시민사회는 제주항공 무안참사 이후 치명적 조류충돌 위험에 대한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조류충돌 위험도를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공항주변의 법정보호종 야생동식물을 이주∙이식하고 초지와 번식지를 제거하여 새들이 서식지를 옮겨가게 만든다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또한 갯벌 위에 신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새만금호 내측에서 매립토를 준설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지역활동가들은 준설지역 수심이 깊어지고 물이 정체하여 새만금호를 썩게 만든다며, 그런 준설은 새만금호 수질보호라는 정부정책과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공항을 지을 수 없는 부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들은 사업계획서 어디에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언어는 국토를 더 불평등하게 파괴하는 전략으로 오염되었다. 중앙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의 고유한 가치와 이익을 되돌릴 수 없이 훼손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지역균형발전으로 포장해 왔다. 심지어 지정학적 군사위기를 고조시켜 시민들을 위해할 우려가 큰 신공항사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폭력이다.
우리는 사통팔달 도로와 공항을 짓는 것으로 지역발전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거나, 사람 수와 경제력만 권력의 원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관련논평 바로가기). 다양한 삶의 공간들이 수탈과 억압의 수단이 되지 않고, 지역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삶의 위기를 건너갈 변화에 용기를 낸 사람들의 목소리가 권력이 되는 것이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 기득권 담론을 대체할 당사자 시민들과 진보적 연구자가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고, 대안을 상상하고 비판하는 역량을 증대하며,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기위해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통제력을 늘리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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