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여섯 번에 이은 '현금없는 사회'에 대한 연속 기고가 마무리됐다. 그간 연재된 글들에 대한 반응은 때때로 우리가 시대착오적인 고민을 하는 것인가라는 자기검열과 동시에, 어쩌면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어떤 맹점을 건드린 게 아니냐는 작은 희열을 선사했다.
'현금 없는 버스'를 다룬 글에 대해서는 이 정책이 '사인 간의 자유계약'을 근거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버스 운영 구조가 준공영제니, 뭐니 하더라도 결국은 민영제인 한, 현재의 '현금 없는 버스'는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권한이 아니라 운수사업자와 버스 이용자의 사적 관계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이유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기관의 현금 거부에 대한 인권침해 신고를 각하한 것을 비판한 글은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현금 사용을 제한하는 건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현금 사용을 권리로써 보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별걸 다 인권이라고 부른다'는 논평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현금 없는 사회를 기본권 침해로 인식했던 공동 기고자들을 당황케 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결제 수단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비스로부터 제약을 받는 것이, 특히나 그 서비스가 일반 상품 구매 같은 게 아니라 도서관 연체비나 공공주차장 주차비 납부 같은 것이어도 과도한 권리 침해가 아니라고 보는 인식이었다. 여전히 놀랍지만, 한편으론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들에겐 마치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용해야 하는 데 기존과 같이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릴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주민이나 신용취약자 등 신용 시스템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시각을 다양화했다는 평가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현금 없는 사회라는 문제를 노령자들과 같은 디지털 취약계층의 역량 문제나 이주민들과 같이 제도 금융시스템에 진입하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신용불량이나 회생절차를 어렵게 이행하고 있는 이들 즉, 신용취약자들에까지 확장했다는 인식이다. 사실 이 문제는 공동 기고자들보다 앞서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이들이 있었다. 용산 나눔의 집, 다람쥐회, 반빈곤연대활동 등 노숙인과 같은 신용취약자를 지원해 온 단체들이 그렇다.
급격하게 현금 없는 사회로 변화한다고 보이는 나라들조차 현금을 결제 수단으로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제도적 조치를 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공동 기고자들은 신용카드보다 현금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전자 방식의 결제가 가진 투명성이라는 장점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그 방향이 구태여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었다.
이제 연속 기고를 마무리하면서 그간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그에 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진 다양한 사회적 힘과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책임은 정부에게… 현금 사용 선택권 절실한 한국
현금 사용이 권리로서 보장돼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인 간의 도덕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금 없는 버스'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버스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자가 현금 결제로 인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만약 현금결제 때문에 버스 운행 시간의 증가, 운전 노동자의 감정노동이나 현금 관리 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를 보완해 현금만 이용할 수 있는 이용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이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 '사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에 근거한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일방적으로 승인하면서 강제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는 사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에서 비대칭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고려해 현금 사용을 보장하는 역할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맡는다. 정부가 현금 결제를 유지하는 데 드는 인프라 비용을 보조하거나 부담한다.
특히 통상적인 시장의 재화라면 다른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결제가 제한되는 문제를 피할 수 있지만, 사실상 특정 노선의 사업 독점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현행 노선 사업의 경우에는 민간사업자가 현금 결제를 회피하면 대체재를 구할 수가 없다. 이럴 때 바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법학자 정순섭은 '현금 없는 사회의 법적 과제'(은행법연구 제12권 제1호)에서 현금으로 대표되는 법화의 강제통용력은 절대적이지 않고 사적 계약의 자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로 인한 취약계층의 보호는 지급수단으로서의 현금선택권 보장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현금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은 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임이 명백하다.
실제로 덴마크는 결제서비스법(payment service act)를 통해 결제 수단으로 현금을 수취할 법률상 의무를 명시했지만, 직원 수가 적어서 강력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경우엔 무인으로 운영하면서 현금 결제를 회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후 야간의 유인 점포로 확대됐는데, 디지털화와 상관없이 강력범죄로부터 야간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조치의 성격을 지녔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는 1978년부터 현금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고, 일부 도시 지역에서도 같은 법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금 결제를 줄이거나 금지하더라도 최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회적 편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설사 금지할 사회적 명분이 있다고 해도 '완전 금지' 방식은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등의 지자체는 현금 없는 버스라는 사인 간의 자유 계약을 정책으로 강제하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추가적인 공적 조치를 해야 했다. 이를테면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1회권이나 전용 토큰을 발급할 수 있는 발급기를 설치하거나, 최소한 정류장 근처 교통카드를 충전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 정보를 게시해야 했고 거기엔 지하철 1회권과 같은 것이 제공돼야 했다.(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라는 별도의 정기권을 발행하면서 작년 말 기준으로 700만 장이 넘는 신규 실물 카드를 유통한 것과 비교해보라)
한국은행에서 제공하고 있는 화폐홍보교육 메뉴에는 '현금사용 선택권'이라는 장이 별도로 있다. 이는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급결제 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정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에 대응해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의 개념 및 필요성에 대해 지자체 등 관련 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한 질문은 일차적으로 특정한 사인 간의 거래 관계를 강제할 수 있는 지자체로 향한다.
자유 시장 개입 못해? 카드는 의무화해놓고…
지자체 등 정부의 의무를 강조하니 민간 간의 거래에 정부가 자의적으로 끼어들 수 있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특히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인데, 여기에 현금 수취까지 하게 돼 발생하는 부수적인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한다. 이 이면에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가 매우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 놓여 있다. 카드 결제 같은 전자결제는 시대의 흐름이고 이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인 시민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정부는 전자 결제를 좀 더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술 문턱을 낮추는 보조적 역할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신용카드 사회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500원짜리 상품에도 카드 결제가 되도록 한 것은 1998년 정부가 여신전문금융업법, 즉 카드회사를 위한 법을 만들면서 정한 '의무수납제'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소득세법, 부가가치세법, 법인세법에는 소비자가 결제 시 제시하는 카드를 의무적으로 수납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문제는 현행 신용카드 결제는 민간 카드회사가 결제 시 발생하는 수수료를 통해서 '대행'하는 구조로 돼 있는데, 결국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누군가는 결제 대행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영세자영업자들의 경우에는 소액 카드 결제라 하더라도 결제 수수료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만약 우리가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것이 사인 간의 자유계약에 의한 것이라면, 소액에 대해 카드 결제를 의무화하는 것 또한 사인 간의 자유계약을 우선한다는 법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차례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거부해 왔다. 신용카드 사용을 의무화한 의무수납제 같은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는 2020년 이전까지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를 현행 현금 없는 버스와 비교해 보자. 현재 서울의 교통카드 결제는 한국스마트카드라는 민간회사가 독점한다. 당연히 이 교통카드사는 운송기관인 교통공사나 철도공사는 물론이고 버스사업자에게 카드 결제에 따른 수수료를 수취하는 영리회사다. 만약 특정 이용자가 신용카드와 연동된 교통카드를 사용한다면 해당 신용카드사는 운송기관으로부터 1.5%의 수수료를 받고 여기서 0.5%에 해당하는 비용을 요금 정산 수수료로 교통카드사가 가져가는 구조다. 2023년에 서울시 교통요금이 300원 올랐는데, 그러면 자동으로 신용카드사나 한국스마트카드사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상황이 이런 데도 서울시는 현금 없는 버스를 홍보하면서 업체의 현금정산 비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작 신용카드사나 교통카드사에 정산해야 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모두 민간 사기업이 운영하는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사용을 정책적으로 강제하는 현재의 전자결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커녕 이를 적극적으로 진흥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현금 있는' 디지털 사회 원한다
이번 연속기고를 통해서 던지고 싶은 이야기는 디지털화에 대한 반대도 아니고, 현금 사용이 선이라는 것도 아니다. '현금결제가 가능한 디지털사회는 정말 불가능한가'라는 것이다.
국제적인 신용카드 프랜차이즈인 마스터카드는 2013년에 '현금 없는 사회로의 여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주요한 국가의 신용카드 결제 현황을 분류했다. 해당 보고서는 아시아 일부, 라틴아메리카의 절반 이상의 국가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대다수 국가를 뺀 상태의 분석이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분석이라 통합적인 분석이라 보긴 어렵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결제 중 소비자 결제는 11% 정도이고 여기서 신용결제가 약 91%다. 현금 없는 사회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소매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결제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이 중 한국은 신용결제 비율이 70% 정도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다고 분석된다. 한국보다 신용결제가 많은 국가는 벨기에, 프랑스,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이 있을 뿐이다. 한국은 전체 43개국 중 10번째에 해당한다.
이 보고서는 단순히 신용결제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만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5년 간의 정책 방향에 근거해 어느 국가가 더욱 쉽게 전환해왔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떤 국가들이 현금 없는 사회로 쉽게 전환될 것인지를 진단한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비슷한 역사적 궤적을 가진 국가 중에서도 현금 사용 비중이 낮은 편이고, 전환의 용이성이 비슷한 수준의 국가에 비해서도 현금 사용 비율이 낮은 편이다. 이 말은 한국의 신용결제 전환이 전 세계의 전환 경로와 비교할 때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배경에는 앞서 말한, 강제로 신용카드를 쓰도록 만든 '의무수납제'가 있고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15%의 소득공제 제도가 있다. 현금영수증을 발급받는 이들도 소득공제가 있긴 하지만 애당초 현금 사용이 어려운 조건에서는 형식적인 제도에 불과해 2024년 기준으로 4조 1,000억 원에 달하는 공제액은 대부분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귀착된다. 이처럼 한국은 민간 신용카드사의 사업을 배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고 소비자인 시민들에 대해서도 신용카드 사용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면서 카드 사용을 유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불편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가 나서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라고 종용하는 사회에서 현금을 사용한다는 것은 '2등 시민으로의 추락'까지는 아니어도 무언가 겉도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왜 지자체들까지 나서서 불필요한 사회적 소외를 만들어내냐는 질문이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더욱 많은 편리와 사회적 형평성, 그리고 정부의 투명성을 통한 신뢰 확보라는 선순환의 경로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안에는 누군가 현금 사용이 불가피할 때 현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존의 수단에 더해지는 옵션이라는 다양성이 포함된다. 하나에서 하나를 더해 둘을 만드는 것은 편리이지만, 익숙했던 하나를 강제로 빼앗아 새로운 하나로 바꾸는 행위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이다. 디지털로의 전환이란 것이 누군가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달성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고, 그런 과정에서 왜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로 한정되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는 현금 없는 사회가 현금을 통해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 이를테면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법학자 정순섭의 논지를 빌려 보면, 이를 꼭 결제 방식을 특정하면서 달성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부패는 더 원칙적이고 분명하고 비례적인 법 적용을 통해서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전자화폐가 뇌물 수수의 수단이 되거나 보호해야 할 희귀 동물들이 화폐 대신 거래되는 사례는 현금 통제가 사회 부패를 막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동 기고자들은 이제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좁은 인식과 짧은 논리 때문에 전하고 싶은 의도가 잘 전달됐는지 의문이다. 더 많은 질문이, 더 역량있는 이들과 실제 문제를 겪는 현장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연속 기고를 승낙한 <프레시안>은 지속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들을 내왔다. 공동기고자들이 신뢰하는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게 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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