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의 비극, 결국 에너지였다

[인문견문록]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지식인으로 살아가기란 고단하다. 지식인은 필연적으로 '우환의식'을 갖기 마련이다. 지식인이라면 무릇 세상에 대한 긴장감을 하이데거적 의미의 근본기분으로 가진 채 살아가야한다. 우환의식은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깊은 우려이며 세계를 향한 존재적 태도다. 현 시점에서 전세계를 가장 암담하게 만드는 사태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자의 비극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을 아는 것은 양심적 시민에게 하나의 의무가 된다. 마침 가자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책이 출간되었다. 스웨덴 룬드대학교 인간생태학과 교수이자 진보활동가인 안드레아스 말름의 책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추선영 옮김, 두 번째테제 펴냄)이다.

저자 말름은 먼저 팔레스타인 문제는 화석연료와 이것을 사용하는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활동이 원인이라 주장한다. 그의 의문은 단순하다. "왜 서방국가들이 집단적으로 가자의 비극에 동조 내지 방관하는가." 그의 말이다.

"이 특별한 집단학살은 다소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최근에 일어났던 나머지 집단학살과 구별된다. 무엇보다 이 집단학살은 애초부터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이스라엘 국가가 함께 조직하고 조율한 '초국적 노력'이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나머지 유럽연합 회원국의 대부분이 한달음에 달려와 이 유혈사태에 가담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이들의 지원에는 무기와 정보만이 아니라 외교적 방어막도 포함된다. 이들의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가 가능했다. 도대체 서방진영은 왜 팔레스타인 문제에 단합할까? 저자의 답은 명확하다. 화석연료 때문이다.

저자는 화석연료와 팔레스타인이 처음 연결된 18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0년대가 되면서 성장하던 영국의 면화산업은 과잉생산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다가오는 공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출구가 필요했다. 1838년 오스만제국이 발타-리만조약으로 알려진 자유무역협정에 동의했다. 영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이 협정 덕분에 영국은 오스만 술탄의 통치지역을 향한 수출이 가능해졌다. 문제가 있었다. 오스만의 지역 총독이었지만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점으로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메흐메트 알리란 인물이었다. 그는 술탄의 자유무역과는 정반대의 수입대체산업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1830년대 말이 되면 그는 신흥경제강국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면화산업마저 발전시켜 인도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영국은 이 상황에 불만을 품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설계자이자 외무장관이던 파머스턴 경이 이 상황을 해결하려 나선다. 알리가 발전시킨 산업을 주저앉혀야했다. 파머스턴 경은 발타-리만조약의 거부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아 침공을 감행한다. 네이피어제독은 처음으로 증기전함을 참전시켰다. 증기전함 네척은 그 지역의 핵심 도시 베이루트, 아크레를 초토화시켰다. 도시마다 1천명을 넘어서는 사망자를 낳았다. 특히 팔레스타인 아크레에 대한 공격은 민관을 구별하지 않은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자신들의 보고서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소멸했다"라고 쓸 지경이었다. 단 며칠간의 공격으로 두 도시를 폐허로 만든 영국은 알리에게 발타-리만 조약의 즉시 발효를 요구했다. 결국 알리는 그들의 요구에 굴복했다. 중동지역 최초의 산업화세력은 영국의 공격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그들이 힘들게 구축한 산업도 곧 소멸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첫 공격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증기전함에 의한 것이었다.

마침 1830년대 영국에서는 기독교 시온주의가 발흥하고 있었다. 이 흐름을 대표하던 섀프츠베리 백작은 팔레스탄인 지역에 영국이 진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그는 예수의 도래와 심판, 그리고 유대인의 기독교로의 개종을 주장했다. 최초의 시온주의는 유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에 의한 것이었다. 파머스턴은 이런 흐름에 호응해 유대인 이주를 통한 팔레스타인의 식민지화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부유한 유대인이 이 지역에 정착한후 자본가로 전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해 지역의 통제권 확보를 노렸다. 여러 어용 지식인들이 나서서 '아무도 살지않는 버려진 땅'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런 서사는 팔레스타인민족을 관념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이라크의 원유를 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라크를 위임통치한다. 이라크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요르단의 정제공장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대인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위임통치령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에게 할당되었다. 유대인은 넘쳐나는 석유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이슈브(건국 이전 유대인공동체-필자주)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펌프를 이용하여 자신의 과수원에 물을 대고, 수확한 과일을 대형 트럭에 실어 항구로 운반하며, 증기선에 하역해 유럽 시장으로 보냈다. 즉 이슈브는 화석제국과 공생함으로써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그 지역을 상징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작물이었던-필자주) 감귤류 농업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물밀 듯 밀려든다. 이들은 철저히 영국을 이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을 장악해 갔다. 자본주의 중심부는 유대인을 지역내 협력자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이스라엘을 이 지역의 동맹으로 삼으면 매장지에 대한 통제를 간접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석유회사들이 의견을 모은 것처럼 보인다." 건국 직전 이스라엘 무장조직에 의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추방, 숙청계획은 망상가들에 의한 일시적 이탈이 아니었다. 1840년 이후 영국 제국주의 플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국가는 화석연료에 대한 통제권을 필요로 하는 제국 중심부에 의해 수립되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전세계가 재생에너지가 대세잖아?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존재이유가 중심부에 의한 화석연료 통제권이라면 이제는 자연적으로 소멸할 운명 아니야? 이런 의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기(2020년대-필자주)는 세계가 섭씨 1.5도 또는 섭씨 2도 이상의 온난화를 피하기위해 화석연료 생산을 억제하고 그 정반대 방향으로 전환해야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화석연료 생산은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최근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기업과 국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에너지문제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의 하나가 특히 베이루트에서 아크레를 거쳐 가자지구에 이르는 해안에 면해 있는 레반트 유역이다. 왜 이스라엘이 가자, 레바논, 시리아 등 인근 국가를 침공한 이유가 짐작된다. 2022년이 되면서 이스라엘은 이 곳에서 생산된 가스를 유럽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긴 설명 대신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가자침공을 개시한 다음날 이스라엘 정부는 새로운 가스전 탐사를 위한 12개의 신규 라이선스를 발행했다. 이곳은 전세계 140개국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자신들의 영토주권을 주장하는 유역이었다. 가자가 사라지면 이스라엘은 해상유전을 거리낌없이 독점할 수 있다.

저자 말름은 책의 말미에 몇가지 논쟁거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하나는 '이스라엘 로비설'이다. 저자는 현실주의 정치학의 석학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가 주장한 '이스라엘 로비설'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 많은 활동가와 지식인들은 미국 정부가 로비에 넘어가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헤즈볼라의 전설적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답을 대신한다.

"아랍 세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오해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 시온주의 로비에 관한 거짓말, 즉 유대인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등 미국의 실제 의사결정자는 유대인이라는 등 하는 거짓말을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니다. 미국 자체가 의사결정자이다. 미국에는 주요 기업들이 있다. 미국에는 '석유회사', '방위산업', 이른바 '기독교 시온주의'라는 삼위일체가 있다. 의사결정은 이 동맹의 손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손에 쥐고 흔들었던 도구였고 이제는 미국이 손에 쥐고 흔드는 도구가 되었다."

다른 논점 하나는 팔레스타인 투사들의 폭력적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무장투쟁에 나서기 전에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비폭력적 저항을 이미 시도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평화제안, 비폭력적 저항인 수무드운동, 불매운동 그리고 2018년에 시작된 '귀환을 위한 대행진'까지. 비폭력적 '귀환을 위한 대행진' 기간에만 223명이 살해되고 1만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 중에는 아동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심지어 저자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하마스를 위시한 여러 정파들이 매우 민주적임을 강조한다. 하마스는 서구적 의미의 전투적 사회주의자그룹인 PFLP, DFLP뿐만이 아니라 가자 기독교공동체와도 민주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복수에 혈안이 된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는 우리 머릿 속 망상일 따름이다. 초기 민간인 사망자의 적지않은 수가 인질을 허용하지 않는 이스라엘군의 '한니발 지침'에 따른 무차별 사격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지난해 말 우연히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았다.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살았다. 가자의 비극을 제대로 설명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쓰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때마침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칼럼을 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란 정언명령이 통하지 않는 에너지소비대국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가자 사람들에게 속히 평화가 오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Free Free Palestine!

▲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두번째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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