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다 됐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는다. 어제 법정에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렇게 고혈압으로 (혈관이) 터져서 죽겠구나 했다. 죽은 사람들에게 죄를 떠넘기고 자기들은 다 죄가 없단다. 대한민국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대체 지자체, 노동부는 이런 사고 안 일어나게 왜 대책을 못 세웠나?"(고(故) 엄정정 씨의 유족 이순희 씨)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근로감독관 규정을 보면 2명 이상 사망한 사건이면 검사에게 구속영장 신청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근데 하셨냐? 저희가 몇 개월 동안 싸우니 그제야 하지 않았나? 불법파견 문제도 치 떨리고 참담하다. 죽음의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건가? 명확히 대책 내놓고 그에 따라 관리감독하라. 아니면 이 반복되는 죽음을 어떻게 막을 건가?"(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 토론회가 끝나기 전 10여분 동안, 참석한 유족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화학사고예방과 과장과 행정안전부 국토산업재난대응과 사무관의 '불충분한' 답변을 듣고 나서였다.
토론회에서 유관 부처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지적이 2시간 동안 줄곧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 과장의 답변은 '15초'에 불과했다. "지난해에 정부가 관련 대책을 마련했으나 미흡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돌아가서 이런 부분들 잘 챙겨보겠다"는 발언이 다였다.
이에 "뭐야?", "왜 왔어요?", "더 할 말 없습니까?", "무책임하다" 등의 질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사회를 본 양한웅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도 "마지못해 하는 게 다 보이지 않느냐"며 "과장님은 1년 지나 다른 데 발령 나면 그만이죠"라 지적했다. 그는 "유족들은 울고불고 천리행군에, 눈발에, 장맛비에 1년, 2년 투쟁을 해야 겨우 바뀌는데, 공무원들은 그저 진급할 사람 진급하고 그게 끝이다"라며 "오늘 토론회 내용 반드시 숙지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시라. 그래야 새로운 나라다"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도 "이렇게 내팽개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라며 지난 1년간의 정부 대응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국장은 참사 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내용의 80%가 참사와 무관하게 그 전부터 계획했던 "맹탕 대책"이었으며, 이마저도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국장은 "'건설업 산업안전관리비 인상', '스마트 안전장비 확산' 이런 게 대체 왜 아리셀 참사 대책에 들어가 있느냐"며 "이주민을 안전보건 교육리더로 양성한다고 했는데, 1년간 47명 양성했다. 전체 이주민 사업장 대비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또 "안전대책 지원 사업장은 26곳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도 없다. 연구용역은 1건에 불과한데, 아직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이주민 산재 사망 실태는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올해 1분기 산재 사망자 137명 중 이주노동자는 20명으로 14.6%다. 매년 평균 10% 정도를 기록해 온 것에 비해 대폭 늘었다. 제조업으로 한정해서 보면, 전체 사망자 29명 중 이주민이 7명으로 24.1%다. 직원 수 5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의 사망자는 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명이 늘었다.

불법파견은 무대책… "파견법 근본 검토 필요"
최 국장은 참사의 핵심 요인인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형식적 감독만 진행할 뿐, 대책이 없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아리셀 참사 후 고용노동부는 일차 전지 제조업체 43곳, 산업단지 내 영세 제조업체 229곳의 불법파견 문제를 조사해 37%가 불법파견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최 국장은 "법 위반을 적발하고도 그 대책은 '컨설팅'뿐이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 내의 불법파견도 확인했으나 "회사 건물에 입주한 1차 하청업체의 불법파견 위반으로 적발했지, '진짜 원청'인 에스코넥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 국장은 "공소장에도, 재판 과정에서도 에스코넥이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 책임자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게 드러났으나, 노동부도, 검찰도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짜 사장'에 대한 문제는 지난 1월부터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신하나 변호사는 "아리셀은 에스코넥에 재정적으로 완전히 종속된 회사고, 에스코넥의 재무팀 직원이 아리셀 통장을 관리했고, 핵심 경영사항을 에스코넥 및 아리셀 대표이사인 박순관이 보고받고 지시도 했다"며 "그러나 대리인 김앤장 측은 그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경영본부장이 경영 책임자고, 박순관 사장은 '바지 사장'이라거나 조언을 해주는 '인생선배'라는 식으로 변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은 "다단계 생산 구조에 있어서 국제사회에서는 공급망 사슬에 있는 원청의 책임을 묻고 있으나, 한국에선 이게 되고 있지 않다"며 "이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리셀과 같은 참사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용역, 파견, 도급, 소개, 하청 등 간접고용이 계속 늘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 출발점이 27년 전 제정된 파견법"이라며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확대하고 있는 법이다. 이 법을 그대로 둔 채 관리감독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라고 물었다.
구멍 뚫린 피해자 알 권리… 하향식 지원 바뀌어야
피해자 지원도 형식은 갖췄으나 실질적 내용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피해자의 진실을 알 권리는 진상규명뿐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권리, 정보의 취합과 공유를 요구하고 참여할 권리까지 포괄한다"며 "그러나 정보 제공은 제한적이었고 소통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자체와 정부 부처 등이 유족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구성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를 배척하는 태도로 일관했다고도 밝혔다. 안 활동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대응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시민들의 참여와 논의로 함께 해결해 나갈 때 더 원활한 대응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동찬 경계인의목소리 연구소장도 "'왜 박순관은 아직도 체포가 안 되는 거냐', '왜 책임지고 면직되는 관료가 없는 거냐' 등의 질문을 유족이 계속 물었다"며 "정부가 참사 동안 얼마만큼 유족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시켰는지, 중국 동포인 특수성을 잘 헤아렸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소장은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이주민의 노동환경은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며 "노동 3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산별노조로 이주노조 조직 기능을 강화해 국적 구분 없이 내·외국인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게 하는 게 궁극적 방향이 아닐까"라고 제안했다.
박순관 대표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형사 재판은 지난 1월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오는 7월 박순관 대표에 대한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다. 유족은 지난 6월 아리셀 경영진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고 김병철 씨의 유족 최현주 씨는 "우리 투쟁 아직 안 끝났다. 끝까지 형사재판에서 책임자가 엄중히 처벌받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잊히지 않게 알려달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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