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핵 활동가들의 '핵발전 제로' 대만 방문기

[토론회] 탈핵운동-국민투표-집권당 '탈핵 기조'가 만난 대만… "한국에 청년 탈핵활동가 없다" 고민도

지난 17일, 대만은 '핵발전 제로'를 달성했다. 마지막으로 가동되던 핵발전소 1기가 폐쇄되면서 핵발전 가동률은 지금까지 0%를 기록하고 있다. 경상도 면적만 한 땅덩이에 원전 8기를 지은 대만이었다. 아시아는 마지막으로 남은 '세계 핵산업의 출구이자 통로'라 불릴 정도로 핵발전 산업이 활황인 대륙이다. 이 와중에 대만은 어떻게 핵발전 가동 제로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2025 대만 반핵아시아포럼(NNAF, No Nukes Asia Fourm) 참가단'은 29일 오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대만 탈핵에서 한국 탈핵으로' 발표회를 열고 NNAF에 참가한 경험을 공유했다. 참가단은 대만에서 열린 제22회 NNAF에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참여했다. NNAF는 한국, 일본, 대만, 인도, 필리핀, 태국, 호주 등의 탈핵 활동가들이 참가하는 아시아 탈핵 운동 네트워크다.

대만 탈핵의 현황을 발표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대만의 탈핵 운동은 당대 정치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집권 정당이 보수성향의 국민당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진보당으로 바뀐 2016년, 차이잉원 총통은 2025년까지 비핵가원(非核家園, 핵발전소 없는 국가)을 선언했다. 이에 2018년부터 지금까지 가동됐던 핵발전소 6기가 점차 폐쇄돼 왔다.

제4핵발전소인 나머지 2기는 완공만 앞두고 2014년 건설을 중단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성장한 탈핵 운동의 영향이다. 대만의 탈핵 운동은 1980년대 후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대만 내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함께 성장했다. 이 정책위원은 "대만, 인도, 필리핀 등의 탈핵 운동은 곧 반독재투쟁"이라며 "이들 나라에선 권위주의 정권이 핵발전을 추진해 왔다"고 짚었다.

이 집행위원은 "대만의 국민투표제도를 빼고 탈핵 운동을 말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1994년, 4호기 부지였던 공랴오구의 주민투표 결과 유권자 96%가 건설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사는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2003년 4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한 국민투표가 불발되자, 민진당은 법을 개정해 국민투표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꾸준히 성장한 탈핵 운동과 함께 2014년 당시 야당인 민진당 대표가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단식을 진행했고, 그해 시민 수만 명이 집회에 참가하는 등 반대운동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2014년 4호기 건설을 중단했다. 완화된 요건 덕분에 국민투표가 수차례 성사되면서, 2021년 국민투표에선 4호기 봉쇄 해제 요구에 유권자 52.8%가 반대표를 던져 폐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2018년엔 '모든 핵발전소를 2025년까지 전부 중단해야 한다'는 조항을 전기사업법에서 삭제하는데 59.59%가 국민투표에서 동의해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이 집행위원은 "2019년 법 개정 전까진 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선거결과가 국민투표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 집행위원은 "지금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2028년까지 집권하는 민진당은 탈핵 기조를 유지하나, 핵발전 찬성론자들의 선동과 로비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AI 산업에 핵발전이 필요하다'라거나 '핵발전소 수명을 40년에서 60년으로 늘리자'는 주장은 보수 여당을 중심으로 계속 제기되고 있다. 당장 '당국이 안전을 확인한 이후의 3호기 재가동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으로 오는 9월 국민투표도 예정돼 있다.

▲박수홍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가 29일 오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대만 탈핵에서 한국 탈핵으로"란 이름의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아시아 탈핵 활동가의 당부 "한국 핵 수출 막아달라"

아시아권의 핵산업은 계속 확장 중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장은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뒤 54기의 운영을 전면 중단했으나, 10년 뒤 14기를 재가동했다"며 "204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20%로 늘리는 게 목표가 이 경우 36기의 원자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SMR(소형 모듈 원자로) 등의 신기술을 근거로 핵발전 확장을 계획 중인 나라도 여럿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다. 김 연구소장은 "모두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는 나라로, 지진·화산 활동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소장은 "시험용 원자로 1기가 있는 태국은 코발트 누출, 핵폐기물 무단 폐기, 홍수, 해일 등 기후변화로 인한 침수 위기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1기가 가동 중인 튀르키예도 얼마 전 큰 지진이 일어났고 핵폐기물 저장 문제도 산적해 있지만, 권위주의 정권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하며 반대 투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소장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의 핵 수출을 막아달라"는 인도,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탈핵 활동가들의 당부도 전했다. 이들 나라는 한전, 한수원 등이 핵발전소 건립 기술 등의 수출을 추진한 적이 있는 곳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장이 정리한 아시아 국가 핵발전 현황. ⓒ김현우

청년활동가 사라진 탈핵 현장

발표회에선 입지가 좁아진 한국 탈핵 운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필리핀 탈핵 운동가들이 '비록 80년대 탈핵 투쟁을 겪진 못했지만, 우린 그 유산을 배우고 현재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한다'고 남긴 말에 박수홍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는 "과연 우린 그런 언어가 있을까,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결 지점은 있을까"라 물으며 "대중과의 거리가 많이 멀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활동가는 "탈핵이 기후운동 안에서도 좀 더 주변화되거나, 어렵고 전문적인 운동을 여겨지는 문제도 있다"며 "탈핵과 탈석탄을 함께 말할 방법은 없을까? 새로운 언어와 주체는 무엇이고 누구일까?"라 물었다. 그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이 삼척으로 가 기후 에너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맹방해변의 신규 삼척블루파워 석탄발전소 반대 운동이 최근 핵발전소 반대 운동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이런 기회가 더 확장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에스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활동가는 "현재 한국엔 청년이 만드는 탈핵 운동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탈핵 운동 현장의 전업 여성 청년 활동가는 둘이었다가, 올해부턴 혼자가 됐다.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하다"며 "우리 운동 안에 불평등한 구조들, 가령 젊은 활동가를 동료보단 기특한 청년으로 본다거나 여성 활동가들이 자신의 '여성됨'을 고민하게 만드는 등 운동 내에 어떤 문제가 내재돼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5 대만 반핵아시아포럼(No Nukes Asia Fourm) 참가단 및 발표회 참가자들.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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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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