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 이래 처음으로 선거 방침을 결정하지 않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도부를 향해 전·현직 간부들이 잇달아 비판 성명을 내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자계급의 진보정치를 선택해야 한다"며 "더 늦기 전에 진보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결정을 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 16명은 지난 28일 공동 성명을 내고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의 사과와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6.3 대선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조직 내 내홍이 이어진 데 대해 "이 위기의 중심에 양경수 위원장의 침묵과 아집이 있다"고 비판하며 양 위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중앙집행위는 민주노총 주요 의결기구의 결정을 집행하는 최고 집행기구다.
대선 방침을 논의한 중집회의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0일까지 총 3차례 열렸으나, 결정은 무산됐다. 지지 후보 선정 문제를 두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를 명시해야 한다는 측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까지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부딪혔기 때문이다. 이 중 양 위원장 등 집행부는 이 후보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양 위원장은 2023년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을 포함한 진보 정치 세력과의 결집한 힘으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한다'는 정치 방침을 의결한 바 있다. 이번에 성명을 낸 중집위원 16명은 보수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집행부의 안이 정치 방침과 지난 30년간 민주노총이 견지한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해 왔다. 논의가 공전만 되자 마지막 중집회의에서 표결 요구가 나왔으나 양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고, 회의 끝에 '표결 여부를 정하는 표결'만 회부했다. 표결 동의가 재적의 과반이 안 되면서 회의는 종결됐다.
이에 중집위원 16명은 "양 위원장 자신의 손으로 망치를 두드린 2023년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 결정 정치방침은, 이를 누구보다 앞장서 지켜야 할 위원장의 손에 내동댕이쳐졌다"며 "오직 자신이 제출한 대선 방침 안에 담겨있는 진보정당과 연합한 후보 지지, 즉 민주당 지지를 열어두기 위해 ‘방침을 정하지 않겠다’는 목적만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 후보 지지 거부와 정치 방침 위반, 반복된 중집 파행 운영, 급작스러운 사무총장 사퇴와 이해 못 할 위원장의 반응, 이 모두는 조직의 중대한 위험신호"라며 "이에 양 위원장의 사과와 책임을 묻는다. 지금 땅에 떨어진 민주노총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집회의가 파행되는 과정에서 지난 9일 고미경 전 사무총장을 포함한 민주노총 상근자 6명이 사퇴했다. 총연맹 산하(지역본부) 및 가맹(산별·연맹) 조직 활동가 349명은 지난 26일 "참담하다"며 "창립 30주년을 맞는 올해, 결국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총의 창립정신과 강령은 사라졌다"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민주노총 사무총국의 집단 입장표명은 2005년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뇌물 수수 사건에 따른 지도부 총사퇴 요구 이후 20년 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87명은 양 위원장을 향해 "민주노총 강령과 규약을 준수하고,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존중하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신속하게 진보 정당의 후보 지지를 결정하라"고 성명을 냈다. 여기엔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포함됐다.
이들은 "무거운 책임감과 절박함으로 조합원 동지들께 권영국 후보 지지를 호소한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은 대선 정국에서 노동과 진보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왔다"고 밝혔다.
이어 "내란 때문에 열린 대선이니 이번에는 잠시 노동정치의 깃발을 내리자는 주장이 나온다"며 "하지만 민주노총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내란수괴 윤석열 앞에 무릎 꿇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양경수 "중요한 시기에 제 역할 못해 죄송…결론 못 내려"
민주노총 내부 비판이 가열되자, 양 위원장은 29일 오후 '조합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을 올려 "윤석열을 파면하고 마주한 대선에서 민주노총과 광장의 요구를 실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그러나 사무총장 사퇴와 대선방침 미결정으로 현장에 많은 혼란과 걱정, 우려와 비판이 많다. 위원장으로서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는 민주노총의 지향은 변함없다"며 "다만 윤석열 내란으로 시행되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정당의 도약과 세력화를 위해 독자 완주를 해야 한다는 의견과 연대연합을 통해 실현하자는 의견이 대립됐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중집에서 표결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양 위원장은 "파면 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은 민주노총이 중요한 시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객관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안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이 뼈아픈 상황"이라며 "조합원 동지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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