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시, 전국 최초·유일 십대여성건강센터 폐쇄한다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에 운영 종료 통보…실무자들 "위기청소년 갈 곳 없어져" 반발

서울시가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운영을 종료한다. 센터가 위기여성 청소년들을 적절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으며, 위기여성 청소년을 지원할 새 위탁 법인을 찾기도 어렵다는 이유다. 센터 실무자들은 "서울시의 졸속 결정으로 위기에 처한 십대 여성들이 갈 곳을 한순간에 잃었다"며 운영 종료를 철회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오는 7월4일부로 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 운영을 종료한다. 위탁 운영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막달레나공동체가 지난 3월 재위탁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수탁기관 공모 공고 없이 곧바로 기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나는 봄'은 성매매·성폭력·임신·탈가정 등으로 위기에 처한 십대 여성 청소년들의 건강 지원을 위해 2013년 전국 최초로 설립한 십대여성건강센터다. 전문의 20여 명이 십대 여성들에게 여성의학과,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한의학과 진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필요에 따라 예방접종 및 상급의료기관 연계까지 지원한다.

위기여성 청소년들의 마음건강도 치료 대상이다. 센터는 심리검사 및 심리상담, 원예치유 프로그램과 시네마테라피 등의 심리지원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온·오프라인을 통한 성교육, 생리대(월경대)·생활용품·안경과 같은 기초물품 제공 등 위기여성 청소년들의 일상회복을 지원하며 최초이자 유일한 십대여성 건강전문기관으로 13년간 명맥을 이어왔다.

서울시는 그러나 센터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운영 지속보다 다른 사업과의 통폐합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끝에 폐쇄를 결정했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민간위탁 운영종료 계획'을 보면, 서울시는 "2013년 성매매 위기청소년 대상 의료·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를 설립했으나, 정책환경 등의 변화로 운영방식 등의 개선 필요성이 대두된다"며 △성매매 등 위기십대여성 특성에 대한 이해와 건강, 의료지원 전문성을 갖춘 위탁 법인을 찾기 어려움 △위기청소년 욕구에 부응하는 실질적 지원체계 마련 필요 △위기십대여성사업 주요 기능 재구조화를 통한 신규 지원시설 설치 필요 등을 운영종료 근거로 삼았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봉사하는 전문의가 위기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다.ⓒ나는 봄 실무자 A 씨 제공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봉사하는 전문의가 위기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다.ⓒ나는 봄 실무자 A 씨 제공

센터 실무자들은 "졸속행정으로 위기 청소년들이 갈 곳을 잃게 됐다"며 서울시의 운영 종료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나는 봄' 실무자 A 씨는 16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센터는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900명 넘는 위기 십대 여성을 지원했을 정도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의료비 부담과 가족과의 단절 등으로 일반 병원을 찾아가기 어려운 위기 십대 여성들에게 의료서비스와 비밀보장을 제공하는 센터는 문턱이 낮은 공간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서울시의 폐쇄 조치로 고위험 청소년들이 찾을 수 있는 기관이 사라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원만한 사업 종료를 위한 여유 기간을 두지 않은 점도 문제로 삼았다. 서울시는 운영 종료일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지난 12일에야 센터에 공문을 보냈다. 운영 종료 사실을 몰랐던 센터는 이 때문에 지난 4월까지도 신규 직원을 채용하고 이달에는 억대 후원 의사를 밝힌 외부기업과 소통하고 있었다.

종사자들의 고용 안정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게 된 센터 종사자들에게 고용 승계 없이 "유관기관 및 법인 산하기관 채용정보제공 등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방침만 밝혔다. 이에 신규 직원을 포함한 실무자 사이에서는 "졸지에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성토가 나온다.

이에 센터장과 지난 4월 채용된 신규 직원을 제외한 실무자 전원은 서울시에 운영 종료 결정 취소 및 대책 촉구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14일 성명서를 내고 "가출·성착취·위기임신·정신질환 등 고위험 청소년에게 특화된 의료·상담·복지 서비스를 일방 중단하면 이들이 갑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기관이 사라진다"며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보호와 지원의 안전망을 해체하는 것은 공공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운영 종료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조례와 지침에 따른 절차를 이행하고, 이용자 보호와 종사자 고용승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민간위탁기관을 '죽이는' 졸속행정을 멈추고 위기 청소년의 건강권·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했다. 이 성명서에는 17일 기준 1만5000여 명의 시민이 연서명했다.

서울시는 16일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의 폐쇄 조치 및 실무자들의 반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프레시안>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장애 여성 청소년 대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나는 봄' 실무자 A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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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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