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관계 악화 배경 중 하나로 꼽힌 광물 협정과 관련, 우크라이나가 결국 안전 보장을 받아 내지 못한 상태로 동의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이 협정 체결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미국과 러시아 간 진행되고 있는 종전 협상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5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안한 광물 협정 조건에 동의해 합의안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협정 체결을 통해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이 트럼프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으로부터 장기적 안보 약속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닦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상을 주도한 올하 스테파니시나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신문에 "광물 협정은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우린 미 행정부로부터 이것이 큰 그림의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를 거듭해서 들었다"고 설명했다.
합의안엔 우크라이나 쪽 요구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자 최종 합의안 확인 결과 우크라이나가 석유, 가스, 광물 자원 및 관련 물류 수익 50%를 내도록 하는 기금 설립은 명시됐지만, 기여해야 하는 기금 규모에 대한 미국의 기존 5000억 달러(약 716조5500억 원) 요구는 철회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기존 제안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이 기금의 "재정적 이익 100%"를 미국이 유지하길 원했지만 합의안에선 이 부분 또한 빠졌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신문은 이 기금이 우크라이나에 투자하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경제 발전을 지원할 것이라는 내용이 합의안에 포함돼 있는 것도 우크라이나 쪽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합의안에 우크라이나가 주요 합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미국의 안전 보장 제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기금에서 미국의 지분 규모, "공동 소유권" 조건 등 협의해야 할 과제도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협상이 이제 "틀"을 갖춘 단계라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는 28일 협정 체결을 위해 미국에 방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금요일(28일)에 온다고 들었다. 그가 원한다면 물론 괜찮다"며 "그는 나와 함께 (협정에) 서명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도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광물 협정 초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광물 협정 대가로 뭘 얻을 수 있냐는 질문을 받고 미국의 기존 지원과 더불어 "많은 군사 장비와 전투권"을 언급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선거를 치르지 않는 "독재자"라는 폭언을 퍼부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허위 정보 공간"에 살고 있다며 비판했는데, 이러한 신경전의 배경엔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안한 광물 협정안을 안보 보장 미흡을 이유로 거듭 거부한 것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 미국이 요구하는 광물 수익을 통한 5000억달러 기금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250년간, "열 세대에 걸쳐" 갚아야 한다며 재차 거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8일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체 우호적 분위기로 우크라전 종전 협상을 진행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쪽에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AP> 통신은 우크라이나 당국자가 이번 합의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군사 지원을 논의할 기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하며,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협상 마무리를 원한 이유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미 정부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광물 협정에 힘을 쏟는 듯 보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보다 더 많은 자원이 있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미국과 함께 이를 채굴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알리나 폴랴코바 소장이 광물 협정 타결이 러시아와의 회담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더 높일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폴랴코바 소장은 "우크라이나로부터 큰 양보를 얻어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요구도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10월 '승리 계획'의 일환으로 동맹국들에 우크라이나 광물에 대한 공동 투자를 먼저 제안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에 리튬, 흑연, 티타늄, 우라늄, 희토류 등 미국이 중요하다고 분류한 광물 50개 중 적어도 20개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업계 분석가들이 잠재 가치가 수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다만 광물 매장량의 최대 40%는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의 광산은 대부분 채굴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떤 경우엔 몇 년에 걸친 연구와 수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중 실현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한편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전후 우크라이나에 유럽군 파병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25일 러 크렘린(대통령궁)은 우크라이나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군대 주둔을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이 사안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이 표명한 입장이 있다. 그에 더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지난 18일 미·러 회담 뒤 어떤 명목이든 우크라이나에 나토 동맹국 군대가 배치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유럽군 파병 관련 질문을 한 결과 "그(푸틴 대통령)는 그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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