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나토 가입 땐 대통령 물러날 것…10세대 걸친 빚 만드는 미 제안 못 받아"

미, 24일 유엔 총회에 '러시아 침공' 뺀 우크라전 결의안 제안…이번 주 프·영 정상 연이어 트럼프 만나 우크라전 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조건으로 대통령직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안한 안보 보장 없는 자원 거래에 대해선 "10세대에 걸쳐 부담"해야 할 계약이라며 재차 거부했다.

미국은 유엔 총회에서도 러시아 침공을 명기하지 않은 우크라전 결의안을 제안해 우크라이나 및 유럽과 대립했다. 미·러 주도 종전 협상에서 배제된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은 이번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유럽이 안보 부담을 늘릴 의사를 밝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단결된 지원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을 보면 23일(이하 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평화가 보장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대통령직 퇴임이)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온다면, 정말 내 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난 준비가 돼 있다. 난 그걸 나토 가입과 맞바꿀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그런 조건이 존재한다면 즉시" 물러나겠다며 "나는 오늘의 안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 20년 뒤에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난 수십 년간 집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발언은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선거를 치르지 않는 "독재자"라는 폭언을 한 이후 나왔다. 2019년 취임한 젤렌스키 대통령 임기는 지난해 5월까지였지만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는 계엄 상태로, 법에 따라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다만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하고 우크라전 종전 협상을 진행 중인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임 발언은 진지한 제안보단 빈정거림에 가까울 것이라고 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미국이 제안한 자원 거래에 응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가 10세대에 걸쳐 갚아야 할 것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지난 21일 작성된 미국의 자원 거래 제안 개정본 초안에 따르면 개정안에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이 제안은 14일자로 작성된 첫 제안과 유사하게 우크라이나에 광물, 가스,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절반 및 항구와 기타 기반시설에서 얻은 수입 또한 미국에 양도할 것을 요구한다. 새 제안은 양도가 요구되는 액수를 5000억달러(약 714조2500억원)로 명시했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액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미국의 실제 지원 규모는 "1000억달러(142조8500억원)"로 트럼프 대통령 주장보다 훨씬 적고 이 또한 조 바이든 정부에서 "부채"가 아닌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주장대로 자원 수입을 토대로 5000억달러를 갚으려면 250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이 원하는 금액이 지원금보다 커 "1달러를 지원하면 2달러를 갚으라"는 식이라며 "간단히 말해 (금리) 100% 대출로, 원금에 더해 100%를 더 갚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기존 제안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만 이날 회견에서 "강요 당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면 아마도 (미국 제안에) 서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미국의 "경제적 파트너십" 제안이 "미국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이익을 일치"시켜 "지속적 평화를 위한 토대"를 만든다고 주장하며 자원 거래를 옹호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이러한 발상 또한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기업의 존재가 러시아 침략을 억제할 것이라는 "특정 논리"에 대한 반박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에도 미국 기업이 우크라이나에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 협력이 "러시아가 (미국 기업이) 진출한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100% 보장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고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도울 것"을 확신하지만 그가 안보 보장 없는 단순 휴전도 "큰 성공"으로 여길 것이 우려된다며 "우리 국민의 안보 보장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년이 되는 24일 유엔 총회에서 투표할 관련 결의안을 두고도 대립 중이다. <AP> 통신을 보면 유럽이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쪽 결의안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이 언급돼 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든 군대를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완전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더해 "무력이나 위협에 의한 영토 취득은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적대 행위 조기 중단"과 "올해 안에 전쟁을 끝낼 시급한 필요" 또한 강조됐다.

반면 미국 쪽 결의안엔 러시아 침공에 대한 언급 없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을 통한 비극적 인명 손실"을 강조하며 "갈등의 신속한 종식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지속적 평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AP>는 23일 미 당국자와 유럽 외교관을 인용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결의안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가했지만 우크라이나가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총회 결의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과는 달리 구속력이 없지만,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거부권을 보유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담론을 형성하는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미·우크라 정상 간 대립이 봉합되지 않은 가운데 프랑스와 영국 정상이 각 24일, 27일에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영국 총리실은 23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통화해 "갈등 종식을 위한 모든 협상의 중심에 우크라이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양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있어 "단결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두 나라가 "미국에서 이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타머 총리가 기자들에게 이번 미국 방문에서 "논의의 중심은 우리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중요성, 우크라이나 상황과 공통 관심사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이 유럽 동맹들의 이익과 일치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약하게 보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경계하는 중국과 이란을 상대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특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넘기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야욕에 전략적 신호를 보내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보장을 지원할 구상을 구체화하는 중이며 두 지도자가 미국도 휴전 뒤 보장을 제공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종전 관련 미·러 협상이 시작됐지만 러시아의 공격은 완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우크라이나 공군을 인용해 22일 밤 우크라이나 13곳 지역에 267대의 대규모 무인기(드론)를 통한 러시아 공격이 가해져 기반시설 파괴와 더불어 응급구조대에 따르면 최소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23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2025년' 포럼 말미에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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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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