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7월, 행정직 공무원 A 씨는 상급자의 권유로 강필영 당시 종로구 부구청장(현 서울시 아리수본부 부본부장)의 비서 업무를 맡게 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가 부하 비서를 성희롱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던 때라 비서 업무가 부담스러웠지만, 20대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 상급자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할 수 없어 맡은 자리였다.
그로부터 4년7개월이 지난 현재, A 씨는 강 부본부장과에게 입은 권력형 성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적 다툼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 2022년 인권위는 강 부본부장이 A 씨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으나, 강 부본부장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박 전 시장 측이 그의 성범죄를 인정한 인권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A 씨는 "지금도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으며 긴 법적 다툼으로 인해 일상이 파괴된 상황"이라며 "강 부본부장은 이 사태를 명백히 책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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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 증언과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 7부터 2021년 9월까지 종로구 부구청장을 역임하던 강 부본부장에게 수차례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 강 부본부장은 자신을 보필하는 A 씨에게 "본인은 XX 많이 못해봤다"고 말한 뒤 "할 수 있을 때 즐기고 많이 해보라"고 했으며, 다른 날에는 "오빠라고 해봐"라고 지시했다가 거절당하자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한 A 씨에게 "운동이 많이 되는 춤을 보여주겠다"며 노출이 심한 인터넷 방송인이 선정적인 춤을 추는 영상을 수차례 보여줘 수치심을 들게 했으며, 같이 저녁을 먹자거나 술을 먹자는 등 근무시간 외 만남을 반복적으로 제안했다. A 씨의 네일아트를 보겠다며 손을 만지거나 팔다리를 밀착하는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도 잦았다.
A 씨는 빈번한 성희롱과 신체 접촉에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단둘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부하직원으로서 자신이 '모시는' 고위공직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물론 자신이 입은 피해가 성범죄에 해당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력감 속에 1년간 성범죄에 노출된 A 씨는 점점 상태가 나빠져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며 자신이 성범죄 피해를 입고 있음을 깨닫게 됐고, 구청장과 면담해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리고 사태 해결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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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낸 A 씨에게 돌아온 건 '꽃뱀' 프레임이었다. 강 부본부장 측은 협의가 결렬된 2021년 12월 A 씨 측이 인권위 진정 및 형사고소를 진행하자 "없는 사실을 날조해 주장한다" "출장비 환수 문제로 내게 서운함이 있다" 등의 주장을 펼치며 공갈미수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에 더해 구청 직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귀는 사이라는 황당한 소문을 퍼뜨리거나 A 씨가 있는 사무실에서 "쟤 꽃뱀이래" 라고 말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비난했다.
구청 내 절대적 약자인 A 씨는 동료 직원들의 증언 확보도 어려웠다. 반면 강 부본부장은 주요 참고인들을 집무실로 불러 사실확인서를 요청했고, 참고인들은 인권위 및 경찰 조사 일정 등을 피진정인과 공유했다. 구청이 종로구의회와 서울특별시가 요청한 강 부본부장의 직무배제를 받아들이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강 부본부장의 강경 대응에도 인권위는 그의 성희롱 및 구청의 2차 가해를 인정했다. A 씨가 꾸준히 피해 사실을 기록해온 일기장과 직원들의 증언이 근거가 됐다. 인권위는 강 부본부장에게 손해배상금 1000만 원 지급 및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구청에는 직급별 성희롱 및 2차 피해 예방 교육 등을 권고했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은 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강 부본부장은 여전히 A 씨가 허위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성희롱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인권위 결정에 문제가 없다며 지난달 23일 1심 판결을 기각했다. 3심은 사실관계가 아닌 법률 해석을 다투기에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낮으나, 강 부본부장 측은 상고심을 신청한 상태다.
A 씨는 계속되는 강 부본부장의 이의제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분쟁에 집중하느라 혼담을 나누던 연인과도 헤어지게 됐으며, 계속되는 PTSD 증상에 치료를 받고 있다. 변호사 선임 등 소송비용도 현실적으로 큰 문제다.
그럼에도 그는 가해자의 엄벌을 위해, 반복되는 권력형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6일 서울시에 강 부본부장을 지위해제 및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집수했고, 감사위원회는 이에 따라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A 씨는 "강 부본부장은 자신의 잘못으로 5년째 고통에 빠진 나와 사태 수습으로 고생하는 종로구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서울시는 2심에서 성희롱이 인정된 만큼 강 부본부장을 당장 직무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내가 입은 피해를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테니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고 했다. A 씨는 24일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 부본부장의 직위해제와 징계를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강 부본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행정소송도 1심은 이겼기 때문에 법적으로 계속 다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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