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 여야 정당 대표가 20일 한 자리에 모여 추가경정예산, 반도체특별법 등 첨예한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으나 첫 회의부터 파열음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추경예산 편성은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는 큰 틀에서의 합의만 이뤄졌고,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참석했다.
포문은 정부 측에서 먼저 열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정협의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 문제와 관련해 "이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반도체특별법'이 아니라 반도체'보통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 대행은 "근로시간 특례 조항은 꼭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등 안전장치를 전제로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고 '주52시간 예외'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최 권한대행은 이어 두 번째 의제로는 글로벌 첨단산업과 일자리 전쟁의 총력대응을 언급하며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기금 조성을 요구했다고, 세 번째로 민생경제 안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국민들의 노후, 삶과 직결된 연금개혁은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 국민들께 설명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대표는 "안 하는 것보다 언제나 하는게 낫다"고 최 대행의 반도체특별법 관련 압박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는 "최 대행께서 반도체특법 관련해 '근로시간 특례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안 하는 게 낫다,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좀 동의하기 어렵다"며 "작은 진전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진전을 해내야지, 합의하기 어려운 조건을 붙여서 '이게 안 되면 끝까지 안 하겠다'는 것에 국민들께서 흔쾌히 동의하실 상황은 아니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대체로 합의되고 있는 연금문제나 반도체지원법은 신속하게 처리했으면 좋겠다"며 "일단 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께서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추경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란 생각이 들어서 작은 차이를 넘어서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52시간' 문제에 전향적 반응을 보였던 이 대표가 당내 반대에 부딪혀 '반도체특별법은 52시간 예외 제외 부분만 우선 통과' 입장으로 선회한 데 대해 "우리 이재명 대표께서 '일극 체제'로 제일 실세인 줄 알았는데, 정책과 관련해서는 진성준 정책위의장님이 가장 실세이신 것 같더라"고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이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권 비대위원장은 "예산 편성 권한은 헌법상 엄연히 정부에 있는데도 국회가 일방적으로 감액만 처리한 것은 분명 잘못됐다"며 "이는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난해 말 4조 1000억 원이 감액된 올해 예산안이 야당 주도로 처리된 점을 지적했다.
우원식 의장은 "추경 문제라도 먼저 합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여당이 '미래·민생 추경'을 얘기했고 야당도 규모와 항목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며 "추경합의는 국민이 가장 기다리는 소식일 거라 생각한다. 그 자체가 국정안정의 신호이고 경제심리 회복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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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결과 이들 4자는 추경 문제에 대해서는 큰 방향성에 있어서 합의를 이뤘고, 나머지 문제는 실무진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모두발언에서 언쟁이 벌어졌던 반도체특별법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권영세 위원장은 국정협의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합의가) 많이 진전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추경에 대해) '필요성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아쉽게도 좀 미뤄졌다"고 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해서는 '52시간'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며 "(여당은) 이 문제가 핵심적 문제라고 거듭 (주장을) 했는데, 민주당은 '그 부분이 필요하지 않다', '이 부분을 뺀 특별법을 먼저 통과시키자'는 입장이어서 저희와 핵심적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 대변인은 다만 '빈손 회담'이라는 지적은 부인하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오늘 회의는 합의하려는 회의가 아니고 상견례 비슷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추경의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했다"며 "민생지원, AI 등 미래산업 지원, 통상 지원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추경 편성) 시기와 규모 등 세부 내용을 실무 협의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추경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정부도 추경의 시기·규모·내용에 대해 정리하고, 여당도 여당 안 만들고 (이후) 테이블에서 실무협의를 진행한다는 게 가장 대표적인 합의사항"이라고 전했다. 그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꽤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됐고, 추후 실무협의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면서도 "끝내 합의는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논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태서 국회 공보수석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연금개혁은 실무협의회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며 "추경 필요성은 공감했다. 추경은 민생 지원과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지원, 통상 지원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시기와 규모, 세부 내용은 실무협의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박 수석은 "반도체특별법 관련 깊이 있는 논의를 했고, 추후 실무협의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며 "이울러 민생법안 신속 처리를 위해 추경과 함께 실무협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 공보수석은 또 "국방장관 임명은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며 "국회 윤리특위 , APEC 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국회 기후특위 구성은 긍정 검토하고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고 회담 결과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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