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19년째 북한을 식량지원이 필요한 국가라고 규정했다. 1990년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북한은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언젠가 몰락할 것이라는 이른바 '북한 붕괴론'이 나오는 이유도 이같은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 경제는 곧 무너질까?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 7명은 최근 발간한 신간 <북한 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에서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며 '식량난'과 핵·미사일에 가려진 북한 경제의 변화하는 모습을 전했다.
이들은 책에서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속에 등장한 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생존공간으로 북한 사회에 자리 잡았다. 기업은 북한식 시장경제에서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비공식 인력시장은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다. 멈춰버린 듯한 북한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일까?"라며 북한 경제의 실상을 소개했다.
이 책은 다양한 측면의 북한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들은 특히 김정은 시대가 이전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복잡하고 다층적인 변화 속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영희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김정은 시대의 경제 정책을 국가발전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 안보에 국가 재정을 우선적으로 투입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개발과 함께 경제 성장도 추구하는 이른바 '병진노선'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북한은 전에 없었던 김정은식 '개발 있는 독재'가 시작됐고 전 국가적인 산업개발과 주택개발 등 발전전략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어 황주희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한 경제에서 새로운 경제주체로 떠오른 기업에 대해 서술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기업이 새로운 경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북한의 기업은 이제 상품뿐만 아니라 마케팅에도 신경 써야 하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선슬기 (사)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 북한시장화연구센터 연구실장은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과 밀착돼 있는 소비재시장에 대해 분석했다.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 이후 배급체계가 붕괴되면서 북한 내에서는 400여 개의 시장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중국 상품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국산품, 즉 북한산 제품이 소위 '외제'와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또 대도시에는 백화점도 들어서고 있다.
장혜원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의 노동시장을 들여다 봤다. 북한 노동시장은 여전히 당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불법의 영역이지만,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대다수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시장이 생계 수단이 되고 있다. 당국 역시 비공식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최재헌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북한동북아연구위원은 북한경제의 '돈 줄기'라고 할 수 있는 금융에 대해 알아봤다. 북한은 중앙은행(조선중앙은행)이 예금, 대출 등의 기능까지도 담당하는 '단일은행제도'를 유지해 왔는데, 시장화에 따라 주민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업은행들이 생겨났다. 또 개인 간 현금 거래도 증가하면서 전자결제카드 사용이 권장되고 있기도 하다. 달러나 위안화 등 외화에 대한 선호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10년 동안 매년 20개 군(郡)에 첨단 지방산업기지를 건설한다며 '지방발전 20×10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윤세라 덕성여자대학교 지식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김정은 시대의 지방경제를 분석했다. 김정은 시대에 북한은 '지방예산법', '시, 군 발전법' 등의 제정을 통해 지방경제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20×10' 정책뿐만 아니라 '새시대 농촌혁명강령' 등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며 지방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대북 제재와 북한 경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해 대북 경제제재를 실시했고 2020년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 북한 경제는 더욱 고립됐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미러 갈등과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면서 북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은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김영희 연구원은 책에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북한을 변하지 않는 대상으로 화석화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북한의 경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존을 추구하고 있다"며 "북한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북한을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뿌연 안개를 걷어 내고 북한 경제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과 '두 국가 선언'을 하면서 북한은 남북 관계를 단절하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과 연결된 모든 통신선을 차단하면서 남북관계를 사실상 1972년 이전으로 되돌렸다. 남북 양 정권이 최소한의 상황 관리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한반도를 만들었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남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북한 경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얼마나 개발했는지에 대해 아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국가의 기반이 되는 경제 문제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가장 적절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남한의 미래와도 밀접히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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