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보호를 촉구하는 안건을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한 지난 10일, 정녕 인권위가 군홧발로 국민을 위협한 대통령 편에 서는지 확인하고자 인권위를 찾았다. 기자까지 폭행하는 극우세력이 난동을 예고한 터라 긴장하면서도, 아침 일찍 경찰이 투입됐다고 하니 신변에 위협을 겪지는 않을 거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전원위가 열리는 14층에서 승강기 문이 열리자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을 마주했다. 젊은 남성 십수 명이 입구를 틀어막고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허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었고, 문을 닫거나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느와르물의 한 장면마냥 꼼짝없이 승강기에 갇힌 셈이었다.
입구를 틀어막은 남성들은 유튜브 생방송을 켠 채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에 "취재하러 왔다" 답하자 소속 언론사를 물었다. 그들은 내가 내민 명함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에야 넌지시 입구를 열었다. 황당해하며 로비 구석으로 이동하니 나와 같은 처지의 기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회사에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제야 극우세력 수십 명이 로비를 점거하고 모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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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자경단은 점거 내내 '전원위 정상 개회'가 목적임을 강조했다. 지난달 13일 윤석열 비호 안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인권위원들의 회의실 진입을 막아 전원위 개회를 막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들이 로비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안전을 우려해 인권위에 방문하지 않는다고 공지했으나, 자경단은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길래 못 들어오게 막았다"는 등 무분별한 출입통제를 자랑스러워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을 탄핵하면 두들겨 부숴야 한다던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은 이들의 명분에 힘을 실었다. 그는 이미 극우세력의 점거가 시작된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도 극좌파 폭도들이 인권위 회의에 몰려와 폭동을 일으킬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상식을 얼마나 파괴할 것인가. 오늘 출근길, 나는 생각이 많다" 등 시민단체들이 전원위를 취소시킬까 우려된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나 극우 자경단의 실제 목적은 난동을 통해 얻는 유명세와 그로 인한 수익창출이었다. 이들은 각자 생방송을 통해 현장 상황을 중계하며 구독과 후원을 요청했으며, 인권위 침입을 모의한 '디시인사이드 미국정치 갤러리'의 개념글(인기글)에 올려주겠다며 서로를 북돋았다. 실제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한 유튜버에게 "네가 오늘 밥 사라. 슈퍼챗(후원금) 잘 터지네"라며 부러워하는 등 이들을 향해 후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은 좌파와 달리 준법시민"이라며 경찰이 오면 전부 1층으로 내려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실제 경찰 기동대가 진입하자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가 오기 전까지는 내려갈 수 없다"며 경찰과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스케치하는 방송국 기자를 향해 "초상권을 침해하지 마라. 카메라 치워라"며 고성을 지르면서도 "현장 기자들 얼굴 전부 촬영하라. 이상한 기사 쓰는지 감시하겠다"고 하는 등 현장 기자들을 겁박했다.
약속대로 내려가달라는 직원들의 사정에도 "기자들도 전부 내려가지 않으면 우리도 내려가지 않겠다"며 이들은 떼를 썼다. 이에 기자들까지 14층을 떠나게 됐다. 일부 출입기자들이 기자실이 위치한 아래층에서 내리자 일부 유튜버들은 함께 내려 또다시 난동을 피웠다. 준법 시민의 정의가 산산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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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장 2미터(m)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유튜버는 사다리를 들고 있는 사진기자에게 시비를 걸다가 문제 제기를 받자 고성을 지르며 위협하더니, 자신을 말리러 온 직원을 조롱하고 "X재명(이재명) 구속"을 외치는 등 기행을 벌였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격투기 선수 출신의 그는 지난달 서부지방법원 폭동 당시 경찰차를 막아서거나 법원 담장을 내리쳤으며, 경찰을 짓누르는 등의 폭력을 행사해 경찰에 입건됐다. 인권위에서도 "오는 순간 뺨 한 대 때려버린다"며 위협적인 말을 했던 만큼 현장 분위기가 조금만 더 격화됐어도 얼마든지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소란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 기자실에서 머물던 출입기자들은 전원위 취재를 위해 계단으로 이동했다. 극우세력 수십 명이 계단 통로에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에 다시금 놀랐고, 로비에서 난동을 부리던 유튜버가 1층에 내려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계단에 앉아 현장을 생중계하는 모습에 그들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이든 할 수 있는 집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전원위도 폭력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청석에 앉은 극우세력들은 인권위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을 비호하는 안건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인권위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등 위협을 가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과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안건의 많은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고민하는 강정혜 비상임위원을 두고 "그러면 찬성하는 내용을 말해보라"는 등 찬성을 종용하기도 했다.
결국 인권위는 안 위원장의 주도 아래 윤석열 대통령과 비상계엄 동조자들을 비호하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수정 의결했다. 2001년 설립 이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온 인권위는 폭력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극우세력의 점거와 본분을 저버린 인권위원들의 종용 아래 이렇게 '인권위 최후의 날'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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