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발효 시한인 4일(이하 현지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캐나다가 공화당 텃밭 주를 대상으로 보복 관세 부과 품목을 발표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도 곧 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최대 무역 상대국들을 대상으로 한 관세 부과가 결국 미국 물가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자국민들에 "고통" 감수를 주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목적'에 관심이 쏠린다.
2일 캐나다 재무부는 4일부터 25% 보복 관세를 부과할 미국산 제품 목록을 공개했다. 보복 관세를 공언한 1550억 캐나다달러(약 155조 원) 규모 미국 수입품 중 300억 캐나다달러(30조 원) 규모 제품에 대해 우선 공개한 목록엔 육류·유제품·과일·곡류·주류 등 식품부터 비누·가방·공책 등 생활용품, 잠옷·정장·신발 등 의류, 욕조·변기 등 욕실 설비, 식기세척기·세탁기·청소기 등 가전, 목재 및 오토바이와 무인항공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품이 포함됐다. 재무부는 해당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미국이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를 철폐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보복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
캐나다 재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나머지 1250억 캐나다달러(125조 원) 규모 보복 관세 부과 품목 명단도 "며칠 내" 공개할 예정이며 "승용차, 트럭, 버스,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 특정 과일 및 채소, 항공우주 제품, 쇠고기, 돼지고기, 유제품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부는 "미 행정부가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는 부당하고 미국인과 캐나다인 모두에 해롭다"며 "우리의 유일한 초점은 이를 가능한 빨리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산 모든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 미국과는 달리 미국산 특정 제품에 관세를 붙인 캐나다는 공화당 텃밭주들에 집중하는 효율 중시 전략을 택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보복 관세를 천명한 1일 연설에서 공화당 텃밭인 "켄터키주의 버번", 트럼프 대통령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주의 오렌지 주스" 대신 캐나다산 제품을 택하라고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캐나다 당국자들이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들에 보복 효과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관세 부과 품목을 선정했으며 이는 이들 주 대표들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관세를 철회하라는 요청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캐나다 주정부들도 보복에 동참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1일 보도자료를 내 공화당 텃밭인 "레드 스테이트"에서 주류 구매를 즉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공공 주류 판매점에서 주요 "레드 스테이트"산 브랜드 주류 진열도 중단했다. 데이비드 이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25% 관세는 양국 간 역사적 유대에 대한 완전한 배신이며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에 대한 경제 전쟁 선포"라고 맹비난하고 주정부에서 캐나다산 상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겠다고 했다.
이 조치에 따라 2일 오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벤쿠버에 위치한 한 주류 매장 진열대에선 공화당 텃밭 중 하나인 테네시주에 본사를 둔 잭다니엘 위스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캐나다산을 대신 구매하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고 캐나다 CBC 방송이 전했다.
CBC를 보면 온타리오주, 매니토바주, 노바스코샤주,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퀘벡주 등 캐나다의 다른 주들도 매장에서 미국 주류 철수 방침을 밝혔다.
각 주들이 미국산 주류 판매 금지에 집중하는 것도 최소 조치로 최대 효과를 거두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정치권 로비가 활발한 미국 주류 산업의 주요 수출처로, 미 농무부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미국 와인 및 관련 제품의 최대 수출국(4억4296만 달러·6495억 원)이었고 증류주의 2번째로 큰 수출국(2억6205만 달러·3842억 원)이었다.
미 증류주협회(DISCUS) 등 주류 업계는 1일 성명을 내 트럼프 정부 관세가 캐나다, 멕시코 뿐 아니라 "국내 산업에도 해를 끼친다"고 우려했다. 협회는 2일 캐나다 주정부가 미국산 주류 판매를 정지하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미국과 캐나다가 협력해 합의에 도달하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멕시코를 비롯한 다른 국가도 미국의 관세 조치 대응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천명한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3일 더 자세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3일 캐나다 및 멕시코 정상과 통화하겠다고 밝혔지만 4일 실행될 예정인 관세 정책이 철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 3일 오전 두 정상과 통화할 예정이지만 "극적인 일은 기대하지 않는다"며 "우린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EU 또한 "곧"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EU에 대한 새 관세 부과가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며 "시간표를 말하진 않겠지만 곧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EU가 "선을 넘었다"고 주장하며 EU에 미국산 차와 농산물 수입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에 대해선 관세 부과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영국은 선을 넘었지만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완화적 입장을 취했다.
미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들에 관세를 부과해 수입품을 중심으로 미국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민들에게 "고통" 감수를 주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관세 부과로 인한 "고통이 있을 수도 있을까? 아마도 그렇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어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고, 이는 지불해야 할 가치가 있는 대가"라고 덧붙였다.
집권 전엔 관세가 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번 관세 부과에 펜타닐과 불법 이주라는 모호한 구실을 내걸며 협상 초점도 불분명해졌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목적을 알 수 없어 각국 협상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기를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이후 행보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양국(멕시코와 캐나다) 협상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방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트뤼도 총리는 1일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가 관세 부과 구실로 든 펜타닐 유입 및 불법 이민 관련 캐나다가 통로로 이용되는 비율은 각 1% 미만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번 관세가 철회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처럼 언제든 행정명령으로 다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분석가들이 관세가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이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800년대 후반 "황금기"를 꿈꾸며 관세를 단지 수입 창출과 보호무역 수단이 아니라 캐나다를 합병에 굴복하게 하고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포기하게 만들 외교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로 적대국에 부과하고 해당 국가가 달러 체제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는 금융 제재보다 우호국에도 가능한 관세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에너지 분석가인 필립 벌레거가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모든 국가의 힘을 약화시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의도를 갖고 있다. 협력은 목표가 아니다. 그의 초점은 지배력"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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