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에서 거래적 제국주의로…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은 19세기?

전문가 "대륙주의가 세계주의 대체" 전망…'위협 통한 거래 시도' 역효과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됐다. 이번 임기 시작 전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는 관세도, 무역전쟁도 아닌 '영토'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파나마 운하·캐나다의 미국 편입 등 아메리카 대륙 전반에 걸친 영토 야욕을 드러내며 트럼프 1기 특징이었던 '미국 우선주의'가 2기엔 19세기 말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토 위협이 현실적으론 거래를 위한 수단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실리적 측면에서도 남미의 중국 의존도가 이미 커진 상황에서 트럼프의 '채찍'이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린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덴마크령으로 관련 도발은 동맹국 간 신뢰를 깰 수 있어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중국 견제라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저해한다는 이유다.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고 파나마 운하 반환 또한 언급한 트럼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이곳들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복 중이다.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다 트럼프가 공언한 캐나다 관세 대응에 대한 이견으로 최측근 동료와 결별하며 결정타를 맞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6일 사임 의사를 밝혔을 때도 트럼프는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는 없어지고 세금은 훨씬 낮아질 것"이라며 조롱을 이어갔다.

트럼프 내세운 관세 통한 보호무역·아메리카 대륙 야심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풍경

외신들은 트럼프 수사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를 떠올린다. 트럼프가 주창해 온 높은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주의 또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행했다.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라는 트럼프 구호가 가리키는 '위대한 미국'이 이 시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일 "전 세계가 트럼프의 복귀를 준비하면서 그의 뇌리를 사로잡은 생각과 19세기 후반 미 제국주의 시대 유사점 사이의 연관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트럼프는 이미 1890년대 미국이 관세 체계로 인해 가장 부유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한 바 있는데 이제 그는 19세기 및 20세기 초 영토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에 대한 야욕을 구실로 중국 등을 위협하고 있는데 지난 8일 미 CNN 방송은 이는 1820년대 먼로 독트린 이래 미국 역사에서 반복된 주제라고 덧붙였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에 의해 발표된 뒤 미국 오랜 기간 미국의 외교 정책 원칙으로 기능한 먼로 독트린은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불간섭을 주장했고 이후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 내 확장과 라틴아메리카 개입 정당화에 이용됐다. CNN은 과거 유럽 식민주의 외국 세력 침입에 대응한 이러한 논리의 대상이 트럼프 정부에선 "중국, 러시아, 이란"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2018년 유엔 총회에서 "이곳 서반구에서 우리는 팽창주의 외세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이 반구와 우리 문제에 대한 외국 간섭을 거부하는 것이 먼로 대통령 이래 우리나라의 공식 정책"이라며 먼로 독트린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대학원(SAIS) 교수는 지난해 5월 <포린어페어> 기고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재활성화된 먼로 독트린을 특징으로 할 것"이라며 "구세계 전초 기지에서 미국의 철수는 신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보호하고 경쟁국이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더욱 강화된, 아마도 강력한 노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대륙주의가 세계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토 위협'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그린란드 등 획득을 위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은 트럼프가 영토 야욕을 말 그대로 실현하려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요 7개국(G7) 소속 국가인 캐나다의 미국 편입은 물론이고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령으로 유럽연합(EU) 경계 안에 있는 그린란드에 대한 무력 사용 및 편입 시도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AP> 통신은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마이크 오핸런이 나토 동맹국들은 공격을 받으면 서로를 방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실제로 그린란드를 강제로 점령하려 한다면 "나머지 나토 회원국들은 덴마크를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강력한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것은 직접적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우려했다.

그린란드는 북극권에서 전략적 중요성과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트럼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것은 EU 또한 마찬가지다. 2023년 11월 EU는 그린란드를 "EU에 대한 미래의 원자재 공급국"으로 칭하며 그린란드와 지속가능한 원자재 가치 사슬 개발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영토 야욕에 대해 EU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과 목소리를 낸 배경 중 하나로 보인다. 지난 8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트럼프 발언에 대해 "국경 불가침 원칙은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도 "EU는 다른 국가가 EU의 주권적 국경을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매수든 침략이든 그린란드, 파나마, 캐나다 영토 자체에 대한 획득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거래적 성향을 가졌던 트럼프 1기 정부를 떠올리면 영토 위협 역시 협상을 위한 실리적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가 캐나다, 파나마, 그린란드 영토를 미국으로 편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미국 선박 운행료 할인, 그린란드 희토류에 대한 미국의 접근성 확대, 미국 제조업에 유리한 쪽으로 캐나다와의 새 무역 협정 체결이 트럼프의 목적일 수 있다고 봤다.

실리 측면에서도 역효과…남미 중국에 기울고 북극권선 나토·EU 신뢰 저해 가능성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통해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과 북극권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만만찮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 먼로 독트린식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전반적 영향력이라면, 미국과 인접해 경제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와 캐나다의 경우 위협의 효과가 크게 발휘될 수 있지만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미 중국이라는 다른 선택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 외교협회(CFR)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인 윌 프리먼은 지난 3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멕시코 수출의 80%가 미국을 향하는 등 멕시코와 중미, 카리브해 지역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지만 남미의 경우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설명했다.

남미에선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중국은 이 지역에 해외직접투자(FDI), 대출도 늘려 왔다. 프리먼 연구원은 콜롬비아의 경우 베이징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브릭스(BRICS) 은행에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프리먼 연구원은 미국의 영향력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의 위협은 특히 남미에서 "역효과"를 내 남미가 중국으로 더 기울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경우 태평양 안보 역학, 주요 광물 및 희토류 원소 공급망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리먼 연구원은 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에선 "채찍 뿐 아니라 당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미국 내 시장 접근성 확대, 풍부한 개발 자금 지원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내정에 개입한 역사가 있는 데 반해 중국은 내정 불간섭주의를 내세워 이 지역에서 미국보다 호감을 얻기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호세 카발레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세계경쟁력센터(WCC) 선임 경제학자는 지난 9일 호주 학술전문매체 <컨버세이션> 기고를 통해 "각국의 주권과 스스로 발전 경로를 선택할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중국의 "불간섭주의 접근"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스스로를 전통적 서방 강대국의 대안으로 제시하며 스스로를 동료 개발도상경제로 묘사해 라틴 아메리카국가들과 연대감"을 보이는 것도 미국과 대조된다고 설명했다.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하면서 그린란드 영토를 넘봐 중요 동맹인 EU 국가들과의 신의를 훼손하는 것도 합리적 전략은 아니라는 평가다.

스테판 볼프 영국 버밍엄대 국제안보 교수는 지난 9일 <컨버세이션> 기고에서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이 커지며 지정학적 안보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서방 동맹을 약화시킴으로써 미국 안보 또한 약화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다른 나토 및 유럽 동맹들과의 협력 없이 미국 단독으로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그리고 불필요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 때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 미 스탠포드대 프리먼 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장은 <AP> 통신에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반한다며 "우리는 이러한 위협에 동맹들과 함께 가장 잘 대처할 것이다. 동맹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힘(superpower)이다. 트럼프가 위협을 만들어내지 말고 진짜 위협에 집중했으면 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내부적으로 트럼프의 위협은 주기적으로 그린란드를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미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에 구애할 뿐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 운동 기조 중 하나였던 "남성성"을 강조하는 데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AP>를 보면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함께 지난 7일 그린란드를 방문한 친트럼프 활동가 찰리 커크가 팟캐스트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통제를 주장하며 "이는 남성적인 미국 에너지의 부활"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19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워싱턴DC 캐피털원아레나 경기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