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집권한 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가 6일(이하 현지시간)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트뤼도 총리의 결정은 코로나19 대유행 뒤 물가 상승 등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 선언 뒤 장관 사임 등 정계 혼란이 이어진 끝에 나왔다.
트럼프 당선자는 관련해 캐나다가 미국에 합병되면 관세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조롱을 이어갔다.
캐나다 CBC 방송을 보면 트뤼도 총리는 이날 수도 오타와 리도 코티지(총리 거주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이 차기 지도자를 선출한 뒤에 당 대표, 총리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임 이유로 "내부 갈등"으로 인해 "다음 선거에서 내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음을 들었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달 최측근으로 여겨졌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향후 미국이 부과할 관세 대응 관련 총리와의 의견차 등을 이유로 사임하면서 소속 자유당 내에서도 사임 압력을 받아 왔다. 프리랜드 전 장관은 지난달 16일 트뤼도 총리에 제출한 사임서에서 트럼프 당선자의 "25% 관세 부과 위협"을 포함해 "'미국 우선주의'라는 경제적 국수주의"가 캐나다에 "심각한 도전"을 안기고 있는 상황에서 트뤼도 총리가 "값비싼 정치적 눈속임"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리랜드 전 장관은 사임 전 몇 주 동안 트뤼도 총리와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자는 취임 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리랜드 전 장관은 사임의 직접적 계기로 트뤼도 총리가 자신이 "재무장관으로 일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고 내각의 다른 자리를 제안한 것"을 들었다. 제안된 자리는 캐나다와 미국 관계 담당으로 알려졌는데 외신은 이를 강등으로 봤다.
트뤼도 총리 지지율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이미 폭락한 상태였다. 캐나다 여론조사기관 앵거스리드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 지지율은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5월 55%를 기록 뒤 하락세로 지난달 24일 기준 22%에 불과하다. 캐나다에선 코로나 유행 기간인 2022년 초 백신 접종 반대 시위에 극우가 결합해 반정부 시위로 번지기도 했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비상사태법까지 발동해 시위 해산에 나섰다.
코로나19 여파로 상승하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치며 2022년 6월 8.1%까지 치솟아 불만을 키웠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들어선 2%대로 안정됐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11월 기준 실업률은 6.8%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2020~2021년)을 제외하고 2017년 1월 이래 가장 높았다.
국민이 이미 경제 관련 불안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 위협이 더 현실적 위기로 와닿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캐나다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으로 2023년 캐나다 수출의 77%가 미국으로 향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자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캐나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다.
트뤼도 총리의 장기 재임으로 인한 피로감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취임 당시 내각에 여성과 남성을 같은 수로 기용하고 원주민 출신 또한 등용하며 평등과 다양성을 내세운 트뤼도 총리는 진보 지도자 중 하나로 꼽혔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고 기후 변화 대응과 난민 및 원주민 권리 보호를 강조했다. 트뤼도 총리는 1968~79, 1980~84년 두 차례 캐나다 총리를 지낸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캐나다 여론조사업체 나노스리서치 설립자 닉 나노스는 대부분의 캐나다인은 트뤼도 정부가 평등 및 다양성 문제에 관해 취한 방향엔 동의했지만 경제 문제에 있어선 실패했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나노스는 "주택 비용 상승을 비롯해 비용 상승에 많은 캐나다인이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트뤼도 소속) 자유당이 이 문제에 서툴다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CBC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자유당 지지율은 6일 기준 20.1%로 우파 보수당 지지율(44.2%)의 절반도 안 된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앵거리 리드 여론조사에선 자유당 지지율이 16%로 추락해 보수당(45%)은 물론 좌파 신민주당(NDP)에도 밀려 지지율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뤼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는 10월로 예정됐던 총선이 당겨질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자유당이 새 지도자를 뽑는 데만 수 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트럼프 정부와의 초기 소통은 여전히 트뤼도 정부가 맡게 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트뤼도 총리 사임에 관해 캐나다를 "합병"해야 한다는 영토 확장 관련 조롱을 반복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6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캐나다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애호한다"며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는 없어지고 세금은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캐나다와의 무역에서 더 이상 적자와 보조금을 감당할 수 없다며 "트뤼도(캐나다 총리)는 이를 알고 사임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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