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흙수저'의 '강남 사다리'까지 걱정해 주는 언론

[박세열 칼럼] 보수 언론의 낡은 '프레이밍'은 여전하다

6억 대출 한도에 고소득 흙수저 강남 입성 막혔다

"사실상 서울 12억원 이상 아파트 이제 못사"…주거사다리 끊었다

"갚을 능력 있는데…" 3040 맞벌이들 대출 규제 '날벼락'

이재명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보수지, 경제지들이 쏟아낸 기사 제목들이다. 언론은 세태를 반영하는 창이기도 하지만,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고소득'과 '흙수저'가 결합하고, '12억 원 아파트'와 '주거 사다리'가 이웃하는 문장이 '킥'이다. 강남부터 지방까지 일렬로 줄 세우는 '부동산 계급 사회'라는 말이 어느 틈에 '상식' 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도, '고소득 흙수저' 따위의 저런 조어들은 낯설다. 아니 낯뜨겁다 해야 할까.

가계 부채를 '망국병'으로 규정하던 보수 언론이 가계 부채 문제의 주 원인인 주택담보대출을 묶겠다고 하니 언론 지상에 '새로운 종족'이 등장했다. 정부 정책의 타깃이 될 만한 샘플을 추출해서 그들의 '피해자성'을 부각하려다 보니 대한민국의 '부동산 종족'은 세분화된다. '고소득 금수저'에 밀려나는 '고소득 흙수저'가 나오더니, '현금 부자'들에 밀려나는 월 1000만 원 이상 소득의 '영끌족'을 조명한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6월 30일 관련기사에서 다룬 사례는 잠실 이사를 원하고 있는 동작구 거주 39세 이모 씨 부부다. 월소득은 1000만 원, 10억 원 대출을 원하고 있으나 6억 원 규제로 현금 4억 원이 없어 이사를 포기했다 한다.

월소득 1000만 원 가구는 상위 10%다. 그 중에 언론이 '피해자'로 거론하는 현재 '무주택자'나 '강남 입성'을 꿈꾸는 사람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전가의 보도처럼 '실거주자'들의 피해를 따지는데, 실거주 목적으로 강남에서 수십억 원 하는 집을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 임대 주택에서 시작해 자가 주택으로 전환한다는 '주거 사다리(housing ladder)'라는 말이 언론의 때를 타자 '강남 입성'과 '계급 상승'의 의미로 변질된 것은 누가 원한 프레이밍일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마치 일상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사례들인양 호들갑 떠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런 프레이밍은 묘하게 정치와 결합한다.

이번 대출 규제의 핵심은 '빚 내서 집 사라'는 말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값 폭등을 앞다퉈 비난했던 보수 언론과 경제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주춤하자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 프로파간다에 적극 나섰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파트값이 상승하자 또다시 정부를 비난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 프레임은 정권 교체론을 촉진시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또 다시 10억 씩 빚 내서 집 사는 '선량한 흙수저 고소득자'들을 내세워 '규제 망국론'을 설파한다.

보수 정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건설업계와 재벌을 비호해 왔던 보수지와 경제지들은 이런 식의 '공포 마케팅'을 단골로 휘둘러 왔다. 그리고 이를 정치 문제와 연결시켜 왔다. 2000년 9월 9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은 이렇다.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김대중 정권 출범 2년 7개월 지난 시점이다.

"추석 분위기가 썰렁하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천고마비, 청명해야 할 가을하늘이 잿빛처럼 느껴진다. 소원을 빌 둥근 보름달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특히 지난달 말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우방이 부도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구지역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 '한국 제2의 도시'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 경제의 지표인 어음부도율은 0.2%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 그러나 '더 이상 부도날 기업이 없기 때문에 부도율이 낮다'는 아이러니는 부산을 포함한 우리 경제 전반의 '우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때 대구, 부산을 빼고는 경기가 아주 좋아서 추석을 쇠는 게 즐거웠을까? 이 악의적인 기사가 나온 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경제를 살려내라며 김대중 정부에 저주를 퍼부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나라 곳간을 거덜내고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하고 기업이 연쇄 부도를 일으키게 했던 그 정당이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정말로 영남 경제를 거덜냈을까?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인 2019년 5월 10일 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이렇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호소 "IMF 때보다 어려워요. 왜 국민들 힘들게 하는 정책만 합니까." IMF때보다 더 어려운지 아닌지 알 순 없지만, 이 신문 기사만 보면 부울경은 망했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부울경만 콕 찍어 망하게 할 수 있을까. 지역주의와 경제 망국론을 결합시킨 목적은 딱 하나다. 보수 영남이여 궐기하라. 나라를 망하게 하고 서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권을 심판하자.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보수 언론과 경제지의 '프레임 짜기' 패턴은 지역주의와 '경제 망국론'의 끔찍한 혼종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종부세'가 타깃이었다. 당시 종합부동산세 대상은 1.6%였지만, 보수 언론과 경제지 속의 대한민국은 '세금 폭탄'이 쏟아져 경제가 초토화된 곳이다. 강남 사는 이들은 '서민'으로 둔갑했고, 대치동에 살던 한 경제관료 출신 인사는 빚을 내 세금 낸 것에 앙심을 품고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이 돼 종부세를 무력화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상승을 때리는 방식을 보자. 2018년 12월 27일 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제목이다. "명동상인 30명 중 29명 "(2019년 최저임금) 8350원 감당 못합니다." 이 기사가 나오기 2달 전인 2018년 10월 20일 자 <매일경제> 기사 제목은 '임대료 ㎡당 월 100만원…뜨거워진 명동'이었다. 노동자 임금이 오른다는 기사의 주제는 '망하는 명동'이고, 임대료가 오른다는 기사의 주제는 '뜨거워진 명동'이다.

부동산과 정치, 경제와 정치를 얽는 낡은 프레이밍 방식은 변한 게 없다. 패턴은 언제나 비슷하다. 극소수의 사례를 핀셋으로 선별하고 끼워맞춰 일반적인 상황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세금 폭탄'과 '벼략 거지'는 이제 '흙수저 고소득자'로 진화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2000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온 나라가 부동산 욕망에 현재를 저당잡혀 살고 있다. 이런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경제지와 보수 언론을 뒤덮은 부동산 광고들을 보면 얼마 전 크리스티안 데이비스 <파이낸셜타임스> 서울지국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기자 개인을 탓하고 싶지 않다. 한국 기자들은 너무 적은 급여를 받고 있고, 상사들은 광고주나 대기업과 거래를 한다. 간부들이 기자들 머리 위에서 거래를 한다." 건설 부동산 업계는 광고계의 큰 손이다.

▲서울 집값 급등세에 이달에도 가계대출 증가액이 7조원에 육박하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지속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묶는 규제를 내 놓았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투자 상담 안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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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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