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만에 독일 공장 폐쇄 언급한 폭스바겐, 이유는 '전기차 시장 침체'?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캐즘(chasm)'에 빠져 몸살 앓는 글로벌 '전기차 전환'

여기는 폭스바겐의 독일 공장. 실내에 마련된 긴 테이블에 올리버 블루메 CEO를 비롯해 경영진들이 앉더니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폭스바겐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설명에 북을 치고 호루라기를 불며 야유를 퍼부어댔다.

▲9월 4일 열린 폭스바겐 경영설명회 관련 유튜브 영상 캡쳐.

지난 9월 4일, 폭스바겐 본사가 위치한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노동자들이 실내에만 모인 것이 아니었다. 비좁은 실내로는 들어올 수가 없는 인원이 수천을 넘어 수만에 달했으며, 위 사진 왼쪽 사진처럼 거대한 집회를 열고 있었다. (언론 추산 약 2만 5000명)

"'당신은 열심히 일해왔고 폭스바겐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지만, 우리는 돈을 절약해야 합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 이것이 폭스바겐에서 감사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Du warst fleißig und ein wertvoller Teil der VW-Familie, aber wir müssen sparen. Du kannst jetzt gehen!' - So geht Wertschatzung bei VW)."

사진에 등장하는 대형 현수막에는 폭스바겐이 노동자를 걷어차는 그림과 함께 이런 글귀가 씌어 있었다. 도대체 폭스바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폭스바겐 87년 역사 최초로 '독일 공장 폐쇄 가능성'

"전기차로의 전환(EV Shift)을 위해서는 직원들과 경영진이 일치단결해 지출을 절감해야 한다"

"유럽 자동차 시장은 팬데믹 이후 축소되어 VW은 약 50만 대의 수요 부족에 직면해 있다"

"핵심 브랜드인 폭스바겐 브랜드 생존을 위한 시간은 1~2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날 폭스바겐 CFO(최고 재무책임자)인 아르노 안틸츠(Arno Antlitz)는 노동자들의 엄청난 야유에 굴하지 않고 폭탄 선언을 이어갔다. 이날 뭐니뭐니해도 가장 충격적인 얘기는, 1937년 폭스바겐 창사 이래 최초로 독일 공장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선전포고였다. 노동자들은 경영진이 선을 넘어 금기사항(taboo)까지 언급했다며 격앙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올리버 블루메 CEO는 "중국에서 더 이상 수표가 들어오지 않는다(There are no more cheques coming from China)"며 노동자들을 직접 압박하고 나섰다. 그뿐이 아니다. 경영진과 노동자들이 만난 지 5일만인 9월 9일, 폭스바겐 사측은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와 체결했던 다양한 협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노사관계가 좋지 않기로 소문난 한국에서도 구경하기 쉽지 않은 '단체협약 해지' 공격이 벌어진 것이다. △임시직 노동자 협약 △훈련 종료한 견습생 의무 수용 협약을 비롯해 폭스바겐이 파기한 협약은 6개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한 협약은 '고용안정 협약'이다.

이 협약은 1994년 이래 독일에서 고용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온 것으로, 본래 협약의 유효기간은 2029년이었으나 이번 협약 파기 선언으로 2025년 6월로 협약이 만료되게 됐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내년 7월 이후부터는 경영상 이유로 한 해고, 즉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폭풍 속에 진입한 글로벌 자동차산업

사실 이건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폭스바겐만의 사정이 아니다. 세계자동차산업 전체가 격한 파도로 가득한 폭풍우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작게는 그동안 전도유망한 전기차 스타트업으로 평가되어온 신흥기업들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상반기에 제2의 테슬라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리비안(Rivian)의 주가가 급락했고 생산은 절벽에 부딪혔으며 전체 인력의 10%를 감원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보다 훨씬 이른 올해 1월, 지리자동차의 고급전기차 전문 브랜드이자 자회사인 폴스타(Polestar) 역시 글로벌 인력의 15%인 450명 감원 계획을 선언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엄청난 전동화 열풍을 주도했던 업계 최강자들이 발표한 전기차 관련 목표치도 모두 변경되고 있다. 우선 자타공인 1인자인 테슬라는 일찌감치 2030년까지 2000만 대 전기차 판매량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GM 또한 2024년 전기차 생산량 전망을 30만 대에서 25만 대로 하향 조정했으며, 내년까지 북미 전기차 100만 대를 생산한다는 계획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포드 역시 2030년에 유럽에서 전기차로 100% 전환한다는 계획을 폐기처분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 2030년에 전동화 비율 50% 달성을 목표치로 제시한 바 있으나, 하이브리드까지를 전동화에 포함해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얘기하기 시작했다. 볼보 역시 2030년까지 전체 차량 모델을 전기차로 바꾼다는 목표를 공식 철회한 바 있다. 포르쉐도 2030년까지 판매량 80%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연기할 뜻을 내비추고 있다.

신차 출시와 구매 계획도 줄줄이 취소

공장 폐쇄 가능성을 시사하기 훨씬 전부터 폭스바겐은 예정된 신형 전기차 출시를 연기하거나 취소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브랜드의 전기차 패밀리인 ID 시리즈의 가장 작은 차이자 엔트리 모델로 꼽히던 ID.2 생산량 확대를 2026년으로 연기한 데 이어 북미지역 ID.7 출시도 늦춰졌고 ID.Golf 출시는 아예 2029년으로 연기해 버렸다.

지난해 말에는 폭스바겐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로 꼽히는 '트리니티(Trinity) 프로젝트'를 재검토 하기로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본사가 위치한 볼프스부르크 공장을 전기차 전용공장으로 만드는 계획과 연동되어 있던 이 프로젝트의 중단은 곧 폭스바겐 전기차 전환의 상징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다.

미국의 렌터카업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허츠(Hertz)는 보유하고 있던 전기차 2만 대를 매각하고 대신 가솔린차로 회귀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폴스타로부터 전기차를 구매하는 계획도 중단하기로 했다. 한때 전기차로의 전환 소식이 자동차산업 톱 뉴스를 장식했다면, 이젠 전환을 중단하거나 연기·취소하는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캐즘'이라는 격랑

한때 자동차산업은 '전기차로의 전환' 즉 전동화(내연기관이 하던 일을 전기 모터에 분담해가는 모든 과정)라는 격랑 속으로 들어왔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번에 만난 폭풍은 그와 정반대되는 현상인 '전기차 캐즘(EV Chasm)'이다. 캐즘(chasm)이란 본래 '거대하게 벌어진 틈'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인데, 이게 마케팅 분야에서 좀 다른 용어로 활용된다.

이를테면 새로운 기술에 입각한 제품이 나왔을 때 먼저 혁신적 소비자(early adopter)가 형성되어 일정한 성장을 거두긴 하지만, 시장의 주류(early majority)로 떠오르기 전에 성장이 주춤거리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신기술에 입각한 제품이라면 무엇이든 겪게 되는 이 캐즘을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가 자본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현재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 △아직은 많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충전 시스템 △배터리 화재 등 안전 이슈 △1회 충전시 주행거리 △배터리·모터 원자재부터 정밀 반도체까지 아우르는 전기차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망 문제 등을 해결해야만 캐즘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상승률은 20~30%를 넘었으나 올해의 경우 1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기차를 팔아주던 유럽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동남아시아와 브라질의 경우 전기차 판매 상승률이 꽤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 유럽에서의 판매량 하락을 조금 만회해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전기차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은 어디일까? - 바로 옆 동남아에서 진행 중인 무역전쟁)

전기차 전환 중단이 일자리 공격의 원인?

한때 전기차로의 전환이 일자리와 고용을 축소시킨다는 공포 마케팅이 업계를 휘감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전환 속도가 빨랐던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에서는 일자리가 축소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전환 속도가 늦었던 스텔란티스, 르노, 포드 등에서 고용이 줄어드는 등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기차로의 전환이 아니라 전환 중단이 일자리 축소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최근 벌어지는 양상을 보더라도 전기차 캐즘이 구조조정에 불을 지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질문이 잘못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도, 전환 중단도 모두 일자리나 고용 축소와 큰 관계가 없다.

그럼 대체 이 폭풍우와 격랑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팬데믹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산업과 무역의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폭스바겐에서의 양상이 매우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지금 시작된 폭풍우와 격랑의 크기로 보자면 서막에 불과하다. 본무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GM의 메리 바라 회장이 뉴욕에서 만나 전격적으로 제휴 선언을 하며 MOU 체결을 했던 것도, 프랑스의 르노와 중국의 지리(Geely)자동차가 전략적 제휴를 하며 합작 법인 설립에 나선 것도, 동남아와 브라질에서 중국업체와 비중국업체의 전기차 점유율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다룬 '전기차 캐즘' 현상과 함께 미국·중국·유럽 사이에서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쟁인 무역분쟁을 이해해야 한다. 3개 권역의 중간에 꽉 끼어 있는 한국 자본주의가 어떤 변화 요인 앞에 서 있는지도 함께 다뤄보도록 한다. To Be Continued. Stay T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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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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