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은 어디일까?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바로 옆 동남아에서 진행 중인 무역전쟁

오랜만에 자동차산업 얘기를 다뤄보기로 한다. 전기차로의 산업전환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과연 사실일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거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등장한 것은 아닐까. 우선 이런 문제들부터 시작해 보기로 한다.

전기차에만 존재하는 '국제 표준'

각 나라별로 '자동차산업(공업)협회' 같은 것이 조직되어서 자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량이 어느 정도인지, 승용차·상용차 혹은 세단·SUV 등 종류별로 얼마나 팔렸는지, 국내 생산차와 수입차별로 판매량 변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집계를 하기 마련이다. 각국 정부에도 담당 부처와 부서가 있어서 자동차산업 동향을 면밀히 분석한다.

문제는 이런 협회들이 생산량·판매량 등의 통계치를 작성할 때 '국제 기준'이나 '국제 표준'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나라는 경상용차(light commercial vehicle)를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픽업트럭 생산·판매 통계를 별도로 작성한다. 상용차와 승용차를 나누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기준과 표준이 모두 다르니 각국 자동차 판매량을 획일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계자동차협회 같은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이게 가능하다. 각국 정부가 가입해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라는 꽤 공신력 있는 기구가 국제기준 내지 표준을 만들어 일률적으로 전기차 관련 통계수치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춤하는 유럽·중국의 전기차 전환

▲ 2015~2023년 세계, 중국, 유럽, 미국 전기차 판매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 그래프.

IEA는 전기차 관련 각국 및 글로벌 데이터, 그리고 이에 대한 분석 및 전망을 담아 매년 4월 말에 'Global EV Outlook(세계 전기차 전망)'이라는 자료를 발간하고 있다. 위 그래프는 올해(2024년) 자료에 실린 글로벌 및 중국·유럽·미국의 전기차 판매량 추이에 해당한다. (막대 그래프는 판매량 수치, 흰색 점은 시장점유율(%)을 의미함)

가장 왼쪽의 세계(World) 전기차 판매량은 쭉쭉 뻗어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전기차시장인 중국에서 2023년에 뭔가 이상징후가 포착된다. 판매량 상승 속도와 기울기가 너무 가팔라서 "이게 꺾인 거야?"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흰색 점으로 표현된 시장점유율을 보면 2023년에 주춤거림이 눈에 띈다.

▲ 2015~2023년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전기차 판매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 그래프.

더 명확한 변화를 보여주는 곳은 유럽이다. 중국 다음으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유럽 대륙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판매되는 독일, 테슬라의 유일한 유럽 생산공장이 위치한 이 나라에서 꺾임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프랑스·영국·네덜란드의 경우 판매량 상승속도가 줄어드는 수준이었지만, 독일의 경우 2023년에 아예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팬데믹 기간 전기차 판매량과 점유율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던 유럽은,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추세가 반전되었다. 독일의 경우 PHEV의 감소세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는 2023년 1월부터 PHEV 구매보조금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기차 판매 증가를 선도해왔던 것은 정부 보조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참고로 그래프에서 짙은 색은 배터리전기차(BEV), 옅은 색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의미한다. IEA가 전기차에 포함시키는 범주는 딱 3가지, 배터리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그리고 수소연료전지차(FCEV)이다. 그러나 수소차의 경우 그래프에서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글로벌 판매량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차세대 전기차 시장, 동남아시아

미국의 경우 생각보다 전기차 판매량이 많지 않다.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가 글로벌 총 판매량의 80%가 넘을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 이 대목에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 제1위와 2위 시장이 주춤거리고 있는데, 왜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상승률은 그대로 유지되는 걸까? 대체 어느 시장이 중국·유럽의 멈칫거림을 보충해주고 있는 걸까.

아래 남미 주요 시장을 보면 이곳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가파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브라질을 제외하면 아직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미 전체로 보면 시장점유율은 2%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 2015~2023년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기타 남미 국가 전기차 판매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 그래프.

남은 대륙은 이제 아프리카와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뿐이다. 아래 그래프의 왼쪽을 보면 아프리카는 후보군에서 확실히 배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오른쪽의 유라시아·중동 지역의 경우 점유율은 1% 미만이지만 판매량이 상승하는 기울기가 심상치 않다.

▲ 2024년 남아프리카, 기타 아프리카, 유라시아·중동 전기차 판매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 그래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동남아시아 주요국 전기차 판매량 상승속도가 정말 당장이라도 지붕을 뚫을 것 같은 기세다. 특히 태국의 경우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이 각각 10만 대와 10%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했는데, 이는 한국의 판매량·점유율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 2024년 태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전기차 판매량 추이. 국제에너지기구 그래프.

인도의 상승세도 매우 가파른데 이곳은 14억 인구를 자랑하고 시민들의 평균 연령대도 매우 젊은 수준이라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앞으로가 훨씬 높은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성장세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중국·유럽 시장의 주춤거림을 메워주고 있는 곳은 바로 차세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르는 동남아시아였다.

국제 무역분쟁이 낳은 풍선효과

그동안 세계경제와 무역질서는 주로 미국과 중국, 유럽이라는 3개의 핵심 경제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겨졌다. 전통적인 제조업인 자동차산업도, 혁신기술인 AI(인공지능)나 빅테크산업도 모두 북반구에 위치한 이들 3개 경제권의 비중이 90%를 넘는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급망(Supply Chain)' 확보가 주요 경제권의 핵심적 화두가 되었고, 자신의 경제권을 중심으로 완성된 공급망을 구축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점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무서운 게임이 시작된다.

공급망 독점 욕구는 다른 경제권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무역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이는 현재 미국과 유럽이 각각 중국을 무너뜨리고 각자의 공급망을 완성하기 위해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가동해 중국을 향한 무역분쟁을 제기하고 있다.

전기차를 핵심으로 한 자동차산업 부문만 예로 들어보자면,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7월 5일부터 중국산 수입 EV에 최대 17.4%~37.6%의 추가 잠정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의 경우 이보다 앞선 올해 5월에 중국산 EV에 대해 관세를 10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8월 1일부터 발효 예정이었던 관세 인상은 조사를 위해 잠정 연기된 상태이지만, 기존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했던 25%의 관세에 비해 무려 4배나 높은 규모이다.

중국의 퇴로이자 우회로, 동남아 시장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자동차산업의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을 가장 빨리 착수한 나라이다. 한때 품질에 의문이 제기되긴 했으나 지난 10여 년 사이 글로벌 업체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확보해가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에 확보한 엄청난 생산능력을 해소할 소비시장이다. 이미 중국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에 주로 미국과 유럽시장으로 진출하는 길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유럽으로의 수출장벽 역시 높아지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미국·유럽 자동차산업 자본이 러시아에서 철수하자, 중국업체들이 러시아로 진출해 반짝 이익을 챙기고는 있으나 러시아는 아직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여기서 중국 자동차산업 자본이 대안으로 선택한 지역이 바로 동남아 시장이다. 이 지역은 2가지 이유에서 중국 업체들이 플레이어로 뛰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첫째, 미국과 유럽 자본이 많이 진출해 있지 않아 그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않고, 미국과 유럽 영토가 아니기에 무역분쟁의 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 둘째, 동남아시아 시장 최고 강자는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인데, 이들은 전기차로의 전환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즉, 전기차로 승부수를 던지면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동남아 진출로 중국 업체들이 챙길 수 있는 부수적인 이익도 2가지가 있다. 먼저 인도네시아에 매장된 엄청난 니켈을 비롯, 이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동남아 자원 활용을 위해 투자를 늘리는 실정 아니던가. 다음으로 동남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매우 가까워서 물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자원의 풍부한 매장량 때문에도 동남아 각국 정부들은 자동차산업 생산 유치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저발전된 시장, 하지만 풍부한 자원과 엄청난 인구로 폭발적인 시장 팽창이 가능한 동남아에서 중국은 유럽·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입는 손해를 벌충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미국 패권주의가 손 놓고 있진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업체들이 동남아에 공을 들인 결과, 적어도 전기차(EV) 시장에서만큼은 중국이 이 지역을 완전히 석권한 상태이다. 동남아에서 중국 브랜드의 EV 점유율은 무려 70%가 넘은 상황이며, 그 중에서도 비야디(BYD)는 무려 47%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동남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2대 중 1대는 BYD 브랜드 차량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국 업체들이 주로 중국에서 생산해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판매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점차 자국 생산업체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높이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그래서 BYD는 자사 최초의 동남아 생산공장을 태국에 짓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할까? 미국·유럽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은 다른 생태계, 특히 전기차 부문을 비롯해 세계경제 패권을 향해 떠오르고 있는 중국 생태계를 절멸시키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손발은 꽁꽁 묶어놓아야만 미국·유럽 생태계가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당연히 미국이 가장 먼저 나섰다. 다만 동남아 국가들을 미국이 직접 식민통치를 행하는 것은 아니기에,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다양한 포석과 그물망을 미리 깔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몇 년 동안 미국이 공을 들여 만들기 시작한 체제가 바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의 세계경제 패권을 둘러싼 전쟁,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 각자의 본토 대륙에서 무역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각축전은 동남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치열한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IPEF와 함께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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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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