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정부, 李대통령 '페이스메이커' 노력 뒷받침 하고 있는지 아쉬워"…외교 행보 비판?

최근 이 대통령 외교, 러시아 배제하고 한미일 밀착 두드러져…올림픽 공원 시위엔 "분노하는 청년, 희망을 봤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현 정부가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을 제대로 뒷받침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가 러시아와는 각을 세우고 미국·일본과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23일 취임 1주년 계기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 장관은 "우리의 한반도와 평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라며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피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이야기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 설득"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에 대해 통일부는 좀 아쉬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쉬운 측면의 구체적 사항이 최근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을 지칭한 것이냐는 질문에 정 장관은 "해석에 맡기겠다"며 구체적 답을 하지 않았다.

▲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계기 기자들과 만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통일부

앞서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의 브뤼셀 방문 당시 발표된 한-EU 공동성명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 지속을 가능케 하는 제3자의 지원, 특히 북한의 지원"과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또 지난 7월 7일 이 대통령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정부는 나토와 함께 무기를 연구·생산·운용하는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맺기도 했는데, 나토와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 측은 한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었다.

지난 16일 주한러시아대사관은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의 공식 채널을 통해 안드레이 루덴코 차관이 이석배 주러시아 대사와 면담을 가졌다면서 "러시아 측은 한국이 나토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사관은 당시 루덴코 차관이 "공개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를 천명한 나토의 질적·양적 재무장 과정에 대한민국이 사실상의 공범이 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라고 전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중 하나인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과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북한과 관계 개선 및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는 한러 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러시아 관계는 방기한 채 '가치 외교'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어 집권한 이재명 정부는 '실용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최근 행보를 보면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나토와 방위 파트너십을 맺은 것을 두고 방산 분야에서는 실리가 있을지 몰라도 외교적 측면에서는 실리보다는 가치에 더 무게를 둔 채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식 대립 구도를 강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 러시아는 북한과 밀착 행보를 이어가면서 북한의 핵 보유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입장을 재차 내보이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지금은 북한을 억제하고 군사적 행동까지 유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주변에서 매우 공격적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라며 "우리는 더 이상 한반도 비핵화 촉구에 동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23일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 등 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행위"라며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또 NPT 체제 창설 주도국으로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대변인은 한러 관계에 대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북러 군사협력으로 한러 관계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러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오고 있다. 정부는 러시아의 건설적인 역할을 견인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가 러시아와 소통은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번 ARF에서도 한러 외무장관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입장을 고려해 러시아와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ARF계기에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회담을 갖고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23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회담이 미국 측 요청으로 진행됐다면서, 러시아와 미국 외교 공관의 업무 환경 정상화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라브로프 장관이 현재 전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지속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8월 15일(현지시간) 이미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관계 정상화를 위한 행보를 시작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러시아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핵발전소 시장에 한미일 3국 간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를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각서(MOC)를 체결하는 등 러시아를 자극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정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관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오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대해 "지난해는 우리 대표단이 가지 못했는데 예전에는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한러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며 "우리도 어떤 급이 될지 모르지만 이런 차원에서 동방경제포럼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 장관은 한-EU 정상회의를 비롯해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선(先) 비핵화를 내세우는 것이 현실성이 있나? 이건 미국과 중국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닌가"라며 "그동안 과거 정부가 선 비핵화를 외쳐온 것은 다분히 국내 정치용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이후 "선 비핵화에서 선 평화로, 북한 비핵화 대신 핵없는 한반도로 목표를 재정립했다"라며 이재명 정부의 북핵 해법에 대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 당시 이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강조했다.

한편 정 장관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준비 부족으로 촉발된 올림픽공원 시위에 대해 "분노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희망을 봤다"며 "이를 평화체제를 위한 운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정부에 힘이 실리고, 이를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견인하고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평가했다.

정 장관은 "이 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에서 청년의 역할과 희생이 핵심적인 주체 역할을 해왔다. 2020년대 우리의 앞날을 막고 있는 장벽은 분단과 정전체제인데,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운동의 주체가 없다"라며 "이럴 때 청년세대가 주역으로 나서고 정부가 이 에너지를 받아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핵심 강국인데 우리의 운명을 옭아매는 정전체제나 휴전체제에 대해 사실상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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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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