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한다는 것, 예술이 복무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영화, 시대를 넘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영화는, 특히 다큐멘터리는 종종 전혀 몰랐던 사람과 사건을 알게 해준다. 아주는 아니더라도 잘은 몰랐던 일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알려 준다. 꽤나 알고는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면의 상대적 진실을 숙고하게 해 준다. 특히 영화는,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게 해준다. 데이비드 암스트롱이나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치, 그리어 랭크튼, 대런 앨리스, 비토리오 스카르파티, 필립 로르카 디코르시아, 그리고 쿠키 뮬러 같은 사진작가, 화가, 작가 등을 들어 본 적 없을 것이다. 모두 낸 골딘을 다룬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오는 15일 국내에 개봉하는 이 작품, 2022년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정서적 충격이 꽤나 폭풍 같은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 가는 시대가 70년대나 80년대처럼 여전히 혼란스럽고 메스꺼운 일 투성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에이즈 시대에서 코로나 시대까지 왔지만 세상은, 그리고 인간의 삶은 별반 진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저 스마트폰이 나왔을 뿐이다.

낸 골딘은 사진작가이다. 그녀가 특별한 작가인 이유는 낸 골딘의 사진전이 대체로 슬라이드 쇼로 이루어졌으며 그건 스틸 사진과 활동 사진의 중간 지대에 놓여 있어서 독창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디 어더 사이드', '성적 의존의 발라드' 같은 슬라이드 쇼 전시는 1980년대에 시작됐음에도 시간과 공간을 오가면서 작품이 더 첨가되고 재편집되면서 새로운 전시로 거듭난다. 낸 골딘은 미국의 하위문화가 지닌 실체, 그 진실의 예술을 슬라이드 사진에 가득 채워왔다. 그녀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 정신적 순결함은 그녀 자신이 수많은 경험과 사건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인정 받았다. 지금은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세계적 유명 미술관이 없을 정도다.

낸 골딘은 현재 세계적 작가이고 예술적 투혼의 작가지만, 한때 그녀는 필름을 사기 위해 스트리퍼로 일했고 사창가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갤러리 큐레이터에게 자신의 작품이 들어 있는 큰 박스를 갖다 주기 위해서는 택시가 필요했고 그녀는 "택시비 대신 블로잡을 해줬다"고, 이번 다큐에서 고백한다.

▲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네온 제공.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그렇다고 해서 낸 골딘의 전기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엉뚱하게도(?) 옥시콘틴 중독과 옥시콘틴 성분이 들어 있는 약, 오피오이드 반대운동의 얘기이다. 낸 골딘은 이 알약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제약회사 퍼듀 마마를 상대로 연일 가두 시위와 연좌 데모를 벌인다. 낸 골딘은 자신 역시 오피오이드에 빠져 살았고, 여기서 벗어 나기 위해 무지하게 고생했으며, 이 옥시콘틴 중독이 결국 많은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고 팔을 걷어붙여 반대저항 운동에 나선 것이다. 옥시콘틴 중독으로 죽은 사람은 현재 미국에서만 50만 명에 이른다.

낸 골딘은 저항그룹 P.A.I.N.(Prescription Addiction Immediately Now)을 결성하고 미 전역의 미술관 박물관을 다니며 시위를 벌인다. 이 박물관 등에는 옥시콘틴 제조사의 소유자 새클러 가문의 전시관이 있다. 이들 제약 가문은 미술관에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P.A.I.N.과 탐사 저널은 새클러의 이 같은 기부 행위는 전형적인 돈 세탁이 자신들이 만드는 죽음의 약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데서 더 나아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4년간 진행된 이들의 투쟁을 담았다. 이 다큐가 특이한 것은 승리의 얘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낸 골딘 등의 싸움은 현재 대체적인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체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새클러 가문을 형사법정에는 세우지 못했지만 끝내 제약회사 퍼듀 마마를 파산에 이르게 하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조셉 스노든의 얘기를 다룬 <시티즌 포>(2015)란 작품으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로라 포이트러스는 기량이 뛰어난 감독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으로 조직의 기밀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였다. 로라 포이트러스는 그를 최초로 단독 인터뷰하는 데 성공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 낸 골딘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이 전직 창녀였음을 고백하게 한 것도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로라 포이트러스가 인터뷰이에게 큰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다큐를 만들 때는 그 구성이 참으로 고민된다. 다큐멘터리도 극영화 마냥 내러티브의 구조를 짜야 한다. 심지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거나 적어도 구성이 돼있어야 한다. 로라 포이트러스의 첫 번째 관심은 P.A.I.N.의 활동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엔 이 운동을 이끄는 사람, 그 사람이 유명한 아티스트라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낸 골딘이 왜 이 운동에 나섰는지를, 결국 그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야만 다큐의 주제를 올바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낸 골딘의 개인사, 그의 예술사를 보여주다가 P.A.I.N. 그룹의 시위를 보여주기를 반복한다. 낸 골딘이 살았던 70, 80년대의 격렬했던 언더 그라운드 사회사의 푸티지(footage)에서 현재의 영상으로 시공간을 오가기를 반복한다. 이걸 잘못하면 시점과 시선만 흐트러질 뿐 얘기를 집중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게 된다. 프로페셔널 다큐멘터리스트인 로라 포이트러스는 그 배열을 뛰어나게 구성함으로써 A플러스 B는 C가 되는 변증법의 구성미를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낸 골딘이라는 개인사와 그녀의 저항운동이라는 B를 플러스 하되, 단순한 AB가 아니라 예술과 사회참여 운동 사이의 투쟁이 지닌 본질, 그 철학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뛰어난 실력이다.

ⓒ네온

시청자로 하여금 70, 80년대 미국사회 저변에 흐르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살벌(?)했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그 역사성을 재평가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낸 골딘이 윤락 생활을 접고 일했던 바 '틴 팬 앨리'에는 매춘부와 좌파 운동가와 무정부주의자, 흑인운동가, 남미좌익지원자, 사기꾼과 온갖 예술가들에 심지어 국세청 직원과 로이터 통신 기자들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기술된다. 이 바의 여주인인 매기 스미스가 그들을 포용했기 때문이다.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동성애가 금지되던 시대를 뚫고 예술을 통해 온 몸으로 시대를 바꿔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낸 골딘 자신도 레즈비언이다. 원제는 그냥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All the Beauty and the Blooshied)'이며 이는 낸 골딘의 자살한 언니의 진료기록에서 따 왔다. 정신과 의사는 언니에 대해 '그녀는 미래와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고 있다'고 기록했다.

영화 후반부에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의 한 구절이 나온다. 이 영화의 주제를 알려주는 메타포이다.

"인생이란 우스운 것 /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 무자비한 논리를 / 불가사의하게 배열한 것 / 그나마 자신을 알게 되어도 / 너무 늦어서 꺼지지 않는 회한만 남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예술은 무엇에 복무해야 하는가, 예술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책무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는 내용이다. 지금 시대에, 특히 여기 한국의 많은 아티스트에게 내리는 지침 같은 작품이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공식 포스터. 네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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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오동진은 신문,통신,방송사 문화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영화전문지 FILM2.0과 씨네버스의 창간멤버와 편집장을 지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운영위원장이었다. 현재 영화 글만 쓰고 산다.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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