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였던 노무현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되냐'고 했다"

[인터뷰]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①

2004년은 한국 진보정치 역사 가운데 가장 빛나던 해였다. 16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차지하며 원내 3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무상' 시리즈를 세상에 선보이며 한국 사회 개혁을 견인했다. 많은 이들은 그 시절 민노당을 두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등대였다고 회고한다.

20년이 흐른 2024년 현재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제로(0)에 수렴하고 있다. 정의당의 지지율은 오래도록 2~3%대에 머물러있고, 진보당‧녹색당‧노동당의 지지율은 크게 의미 있는 숫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시대를 선도하는 의제로 주목받기보단 내부 갈등, 탈당과 같은 부정적 소재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진보정치가 무력해진 틈을 타 한 젊은 보수 정치인은 외람되이 '노회찬'과 '노회찬 정신'을 소환한다.

과거 진보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세대 진보 정치인'은 지금의 대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인 민노당의 창당 주역이자, 최초의 당 대표, 최초의 대선 후보를 지낸 한국 진보정치의 산증인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를 만났다.

권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정계 은퇴 후에도 시민사회 활동을 통해 진보정치에 대한 꿈을 이어 나가고 있다. 여든 넘은 고령에 각종 질병으로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그는 수많은 강연을 다니며 진보정당 통합을 주장한다. 권 전 대표는 지금의 진보정당이 존재감을 잃은 이유를 지난 2008년 민노당 분당의 후유증에서 찾았다. 그는 분당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진보정당 통합을 부르짖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민노당 창당 자체가 한국의 정치개혁이었다"고 하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더욱 진보정당이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진보진영 내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진보정당이 아닌 신당 창당 흐름에 대해선 비관적 견해를 내놓았다. 민노당과 같이 분명한 당의 이념과 강령 정책 없는 신당의 창당은 단순 이합집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중도우파 정체성을 분명하게 정립하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권 전 대표와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당이 나뉘어져서 어느 당에도 갈 수가 없다"

프레시안 : 2013년 정계 은퇴 선언 후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권영길 : 많이들 걱정해 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5년 자가면역체계 이상에 따른 희소병에 걸렸고, 합병증으로 설암이 생겨 수술을 두 차례 하고 지금까지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병중에도 여러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4개 진보정당(정의·진보·노동·녹색)이 통합돼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40차례 정도 했다. 올해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다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활동을 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오랫동안 당적 없이 시민사회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무당적인가.

권영길 : 안타깝게도 아직도 무당적이다. '당이 나뉘어져서 어느 당에도 갈 수가 없다', 그런 얘기를 실제로 저뿐 아니라 과거 민주노동당 열성 당원이었던 분들이 많이 한다. 민노당 창당부터 분당까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한 5만 명의 자원이 지금 사실상 유실돼 있는 상태다. 그래서 4개 진보정당 후배들에게 '권영길이 빨리 진보정당 당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얘기하고 있다.

프레시안 : 1997년 국민승리21,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 주역이다. 진보정당 건설에 투신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권영길 : 개인사를 소개하자면, 민족사의 비극을 겪은 사람의 공통된 이야기일 텐데(권 전 대표의 아버지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 작고했다. 편집자주) 어렸을 때 동네 분들이 '네 아버지는 대단히 훌륭한 분이다. 아버지를 따르려고 항상 애쓰라'고 하셨다. 저희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하신 말이 있다. '골고루 잘살자는 게 무슨 죄라고'. 그 말이 가슴에 박혀 내 평생의 화두가 됐다. 평등 사회 건설과 평화, 그 두 개가 내 삶의 기조가 된 것이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농민 운동가가 되려고 했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택할 때도 사회과학과 농과 중에 농대를 택했다. 앞으로의 농민 운동은 그냥 사회과학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실제로 배추를 어떻게 심어야 잘 되는지와 같은 농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농대를 간 것이었다. 그러다 군 제대 후에는 생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평소 꿈꾸던 사회운동의 요소와 직업적 요소가 합치되는 게 어떤 일일까 고민해서 서울신문에 취직해 기자가 됐다. 거기서 언론노조 활동을 하고, 그러다가 민주노총 건설에 몸을 바쳤고,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하고, 그러다 오늘날까지 오게 됐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의 정치 역정 속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인가.

권영길 : 가장 큰 성과는 두말할 필요 없이 민노당의 창당이다. 민노당의 창당은 단순히 '또 하나의 정당의 창당'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첫걸음을 민노당 창당을 통해 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과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민노당 이전에 이 땅엔 정당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지금 '양당이 문제다' 이런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애초에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정당이 없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정당이려면 '우리가 왜 정당을 만드는가' 하는 지향점, 이념이 있어야 한다. 흔히 '이념 정당' 하면 진보정당만 생각하는데, 보수정당에도 이념 강령이 있어야 한다. 그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이 모여서, '우리 이런 사회 만들자' 해서 당원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서 정책을 짜고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근데 민노당 전이나 지금이나 이른바 보수정당이라 하는 당들은 강령이 뭔지 모른다. 한두 사람이 밀실에서 하룻밤 사이에 강령을 만들고, 뭐 대표적인 정책을 내고 하는 식으로 운영을 한다. 한국의 금권 정치, 보수 정치, 패거리 정치, 지역주의 정치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것을 깬 게 민노당이었다.

민노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교육비, 병원비, 노후 걱정, 집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겠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정당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럼 사회 문제들은 어디서 오느냐, 자본주의가 만든 병적 요소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민노당은 그 자본주의 병폐를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강령을 내걸고 2년에 가까운 창당 준비 작업을 했다. 1997년 대선이 끝나고 나서 97년, 98년, 99년까지 만 2년을 준비하고 2000년 1월에 창당했다. 무려 2년을 준비했고 여기 동의하는 발기인이 1만 명 가까이 됐을 때 선언을 했다. 마침내 2000년에 창당했다. 그래서 민노당 창당은 창당 자체가 정치개혁이었고 민노당 활동 자체가 한국의 정치개혁이었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정당이 개혁돼야 이루어진다. 정당이 제대로 서지 못하면 정치개혁도 없는 것이다. 민노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치고 했던 것이다.

"앞서간 민노당의 '무상' 정책, 지금도 절절히 요구된다"

프레시안 : 창당 자체도 의미 있지만 이후 정당 활동도 국민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당시 총선 성공 비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권영길 : 이 나라의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행복한 나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근본적으로 당의 강령·정책 그리고 그에 따른 활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려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민노당은 민생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내걸었다. 복지국가·복지사회의 건설, 요약하면 서민들 밥 먹여주는 정치를 했다. 민노당이 그런 정당이란 것을 알리기 위해서 제가 2002년 대선 때도 TV 토론에서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고 여쭤본 것이었다.

민노당은 오늘날까지 한국 정치와 사회개혁을 이끌었다. 일례가 주5일제다. 민노당은 정확히 말하면 민주노총이 만든 당인데, 아무도 주5일제를 생각지도 못할 때 민주노총은 창립하면서 근무시간 단축, 주5일제를 내걸고 전국적으로 싸웠다. 그리고 민노당은 2년간의 긴 창당 과정을 통해서 국민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설명을 많이 했는데 그 첫인상이 나쁘질 않았다. 그 동력이 된 사건이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신한국당 의원들이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노동법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킨 사건. 편집자주)이었고, 이에 저항하는 투쟁을 한 것이 민주노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국민 80%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정리해고를 막아내는 투쟁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민주노총이 만드는 정당은 신뢰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기본적 인식이 사회에 깔려 있었다.

그 외에도 민주노총이 10년 동안 투쟁했던 의제를 민노당이 다수 이어받았다. 주5일제와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약이다. 사실 무상교육은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나아가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고 공교육을 강화하고 이런 전반적인 교육 문제를 풀고, 무상급식은 건강도 지키고 농민들도 살리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그런데 정치권으로부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런 비판을 받았다. 내가 2002년 대선 TV토론 때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무책임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되는 거냐'고 하기도 했다(웃음). 실제로 민주당에는 허무맹랑하게 들렸던 것이다.

(미리 준비해 온 신문 기사를 꺼내 보여주며) 이게 2012년 2월 13일 자 <조선일보> 기사다. 제목이 '민주‧새누리 복지 공약, 알고 보니 민노당 것 다 베꼈네'다. 부제가 '현실성 없다고 비판할 땐 언제고 표 위해서라면 묻지마 정책'이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프레시안(한예섭)

민주당이 추진한 무상급식, 무상의료도 민노당이 2000년부터 추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민노당이 했던 경제민주화 내걸어서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그 전에는 민노당을 '되게 과격하다. 좌파다. 빨갱이다'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고 '아 민노당의 길이 바른 것이구나, 이렇게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인식을 가슴 절절하게 느꼈기 때문에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영입하고 해서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할 수 있다. 민노당의 강령, 민노당의 정책, 민노당의 활동과 지향점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에도 절절히 요구되고 있고 필요하다. 이걸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민노당 같은 진보정당이 한국 사회를 바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민노당 의원들의 의정 활동은 어땠나.

권영길 : 개개인의 입법 활동보다는 당의 전체적인 활동을 통한 외침을 중요시했다. 일반 시민들한테도 각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하나의 각성제가 되기를 바랐다. 당 대표 시절 어떤 기자가 '이래서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이구나'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연설에 전율을 느꼈다더라. 연설 내용이 한미동맹과 대북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한미동맹의 핵심은 북한에 대한 억제인데 미국이 다른 목적을 갖고 한국에 주둔한다면 그것은 기본 정신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부과하겠다고 하고 그 끝에 나온 게 평택 미군기지였다. 세계 각국에 전쟁이 나면 거기에 참여하기 위한 병참기지인 것이었다. 그래서 왜 이런 한미동맹을 우리가 가져야 하느냐고 한 것이었다. 한국 국회에서 의원이라는 사람이 또 어떤 정당이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놀란 것이었다.

"민노당 분당은 패권 싸움 탓…씻을 수 없는 과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정치 여정 가운데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

권영길 : 민노당의 창당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만큼, 동시에 가장 뼈아픈 순간이 민노당의 분당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 이후 지도부 책임론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이 대거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17대 대선에서 노‧심을 누르고 대선 후보에 선출된 권 전 대표는 민노당에 남았다. 편집자주)

그런데 왜 분당을 했을까. 국민들이 지지를 잃어서 그런 것이었나. 아니었다. 민노당은 거의 20% 가까운 지지를 받는 길목에서 간판을 내렸다. 스스로 분열을 한 것이었다. 국민들이 차려준 밥상을 스스로 걷어찼다. 국민들은 한국의 정당 정치에 신물이 날 대로 나고 절망하고 있다가 민노당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는데 그렇게(분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선 때문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패권 싸움 때문이다. 이제 좀 살 만하니 서로 '내가 더 먹을래' 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의 보수정당에서 보여주고 있는, 씻어내야 할 그 패권 놀음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 분당으로 민노당, 한국의 진보정당은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서 한국 사회 발전이 정지되어 버렸다. 만약 민노당이 분당되지 않았으면 나는 한국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어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우리가 명실상부하게 내‧외형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이 상승해 세계 모범국가가 됐을 것이다. 한국 정치도 바람직하게 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당되면서 이런 것들이 다 무산됐다고 본다. 그래서 그 분당은 우리 한국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명적 과오를 범한 범죄행위라고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 성찰하고 반성해야 된다.

프레시안 : 노선 투쟁이 아니라 패권 싸움이라고 굳이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권영길 : 노선 투쟁과 패권 싸움 두 개가 다 혼재돼 있을 거다. 노선이라 하면 흔히 NL(자주파) PD(평등파)로 구분하는데, 사실 그 구분도 기본적인 발상은 패권 때문이다. 민노당 창당 전에 노선 갈등이 없었을까. 지금보다 더 강했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쟤들하고는 절대로 같이 못 한다' 그랬다. 민노당 당명 정하는 현장에서 뛰쳐나가는 교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용해가 된 결과가 민노당의 창당이었다. 함께 술도 밥도 같이 못 한다는 그 두 진영을 한 자리에 끌어다 앉혀서 녹였다, 민노당 창당이 진보진영에 한 엄청난 기여다. 창당 되고 나서도 이른바 1차 북 핵실험이 일어나서 당 안팎이 난리가 났다. 그렇지만 양측이 8시간 가까운 토론을 해서 공통된 성명서를 냈다. 불가능할 거라 했는데 불가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화학적 결합이 80% 정도까지 이르렀기도 했다.

프레시안 : 분당의 책임 당사자인데, 그 이후 노 전 의원 등과 함께 당시 분당에 대한 반성적 토론을 하는 등 과정은 없었나.

권영길 :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없었다.

프레시안 : 분당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진보정당 역사를 함께 했던 노 전 의원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이 본인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남긴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권영길 : 노회찬과 권영길의 길은 출발에서부터 그의 생 끝까지 함께 걸어온 길이었다.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을 함께 만든 것도 노 의원이었고,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나를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로 강력하게 요청한 사람도 노 의원이었다. 내가 활동하던 경남 창원성산(구 창원을) 지역구도 노 의원이 이어받아 나갔다. 그런 긴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내가 받는 아픔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노 의원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렇게 가지 않았으면 지금 진보정당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허무한 생각이란 걸 알지만, 인터뷰 내내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해서 계속 강조해왔지 않나. 한국 정치개혁을 위해선 정당 개혁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선 진보정당이 굳건했어야 한다. 현재 분열돼 있는 4개 진보정당의 통합은 단순히 진보정치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통합의 역할을 노 의원이 잘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내가 노 의원과 둘이서 약속한 게 있다. 같은 지역구였기 때문에 노 의원이 여기서 재선이 되면 가장 먼저 창원에서부터 흩어져 있는 진보정치 세력을 합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해보자고 했다. 창원에서 진보 통합을 이뤄내면 전국의 진보 통합을 이뤄내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의견 일치를 봤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떠나 보내서 굉장히 안타깝고 쓰라리다. 요즘 진보정당 통합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보니 더욱 그 점이 아프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지금 진보정당이 위기에 빠진 이유에 대해 저마다 해석을 내놓는데, 권 전 대표는 그 근본적 이유를 2008년 분당 사태에서 찾는 것인가.

권영길 : 1차 분당이 2007년에서부터 시작됐고, 그 후에 이래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다시 통합된 게 통합진보당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갈라졌다. 그게 2차 분당인데 이때는 감정 싸움으로 워낙 상처가 깊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결국 분당 때문에 (진보정당의 위상이) 여기까지 온 것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분당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그 죄를 씻지 못한다. 성찰하고 반성한 결과는 뭐였겠나. 찢어진 당이 하나로 다시 연대‧통합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한예섭)

"'2중대' 논쟁은 잘못, 협력 자체는 문제 아냐"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진보정당, 특히 정의당의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권영길 : 나는 정의당의 '2중대' 논쟁은 잘못된 논쟁이라고 보고 있다. 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분명한 가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노동이다.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노동자들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말이 아니다. 노동자만을 위한 정책을 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180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0년 세월을 거친 오늘날에도 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이 병폐를 넘어서는 것, 이게 진보정당의 기준이다. 그 바탕 위에서 기후라든지 성소수자라든지 여러 문제가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기후 문제는 진보정당의 핵심적 문제다. 기후 위기가 왜 오는가. 그것은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성장 지상주의 때문이다. 즉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가 만든 산물이다. 그러면 이 기후 위기를 청산하고 대처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기후 위기가 자본주의 산물이란 점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결국 한국 사회 전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선 다른 당하고도 협력하고 힘을 빌려야 한다. 마치 민노당이 주5일제를 의원 10명으로 이뤄낸 것처럼. 그런데 진보정당의 기둥이 뭔지도 모르고 기조도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당원들조차 인식을 못하고 사회적으로 인식이 안 잡혀 있는 상황 속에서 민주당을 따라잡기하는 것처럼 됐다. 그리고 그 결과, 민주당이 마치 진보정당의 표상으로 되어버렸다. 이런 게 문제인 것이다.

민주당과 협력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다시 민노당 이야기를 하자면, 우린 한나라당하고도 가서 협상하고 힘을 빌렸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협력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문제인 것이다.

프레시안 : 민노당이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보다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노당이 내걸었던 아젠다가 유효하고, 진보정당의 가치를 노동 중심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권영길 :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가 진보정당을 요구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 무상교육? 민노당이 먼저 외쳤다. 그런데 대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이 되고 있나? 안 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수업료 면제는 됐지만, 우리는 한 3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했는데 1단계 초입에서 (무상교육이) 멈춘 것이다. 무상보육도 하나도 안 되는데 저출산 이야기하고 애를 낳으라고 한다. 집 걱정은 풀렸나? 안 됐다. 여전히 이 문제를 환기시키고 풀어야 된다.

프레시안 : 진보정당 내 통합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진보진영 내 일부 후배 정치인들은 '통합'이란 형식에 매이다 보면 치열한 내부 논쟁이 어려워 진보 정치가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펴기도 한다.

권영길 : 지금 현재 우리의 유권자들이 진보정당에 요구하고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다른 것 없다. '너희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나라. 너희들끼리 뭐가 다른지 모른다'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하나로 돼서 나타나면 그때 찍을까 말까인데, 그게 아니라면 열외가 될 수밖에 없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그랬는데 보수는 부패로 안 망한다. 한국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았다. 한국 진보는 분열로 들어서서 이대로 가면 완전히 망할 것이다. 이번 총선이 그렇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지금의 진보 정치가 너무 노회화됐다, MZ세대와 공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권영길 : 나는 기본적으로 'MZ세대'라는 용어가, 보수정치 세력이 교묘하게 만들어 낸 '포섭'용어라고 보고 있다. 우선 세대로 구분해선 안 된다, 젊으냐 늙으냐의 생물학적 기준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20대 후반이 세계를 지배했고 오늘날 30대 총리들 많지 않나. 프랑스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34살 총리(가브리엘 아탈)를 임명했는데, 우리 같으면 '왜 이렇게 젊냐' 이런 걸 따질 수 있지만, 거기서 따라붙는 건 과연 이 총리가 이민의 문제, 교육 평등의 문제를 얼마나 잘 처리할 것이냐다. 특히 우리 진보정당은 세대관을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본다. 실천력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새 시대에 맞는 진보정당의 역할과 방향이 무엇인가.

권영길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위기가 왔다. 동시에 기후 위기, AI가 유발하는 노동 위기가 우리에게 동시에 불어닥쳤다. 이 3대 위기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그것에 응답하는 형태가 무엇인가. 바로 진보정당의 건설이다. 진보정당이 아니고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전문가들이 팬데믹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앞으로 올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바로 공공의료 시스템의 구축이다. 혹자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적 처방법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니고는 여기에 대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경제‧사회 전문가들뿐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기후 위기는 자본 중심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풀어갈 수가 없는 문제다.

그럼 일자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지지 않겠나. 누가 AI를 관리하고 운영하고 생산할 것이냐. 재벌에 맡긴다? 절대로 맡길 수 없다. 착한 자본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노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노동을 해야 된다. 공익 노동 개념을 받아들여야 된다. 그럼 공익 노동에 대한 돈을 어떻게 지급하나. 개인이 소득세를 내듯 '로봇세(로봇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에 부과하는 세금. 편집자주)를 내게 해야 한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이걸 새로운 사회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슬라보예 지젝도 새로운 공산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새 사회주의가 요구되고 있고 그렇게 가야 희망이 보인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나 다른 문제들을 이야기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걸 위해서라도 진보정당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1차적으로 총선 이후에 진보정당이 새롭게 건설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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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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