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힘' 치료 주장…환자는 죽고 한의사는 '살았다'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 검사가 과거에 환자 죽인 의사 '살려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기획기사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을 통해 의료면허를 취소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검사 덕분에 '생명연장의 꿈'을 이룬 의료인들을 추적하고 있다.

<셜록>은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받아낸 법원 사건번호에 근거해, '영적인 힘'을 믿다가 환자를 죽게 만든 한의사 박지숙(가명) 씨의 판결문을 찾아냈다. 판결문에 적힌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경남 합천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한의사 박 씨. 그는 2015년 5월 13일 자신의 한의원 직원 조미현(가명) 씨와 함께 대구 남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한 부녀를 만났다. 뇌경색으로 입원한 아버지 임태욱(가명, 당시 67세) 씨와 그의 보호자인 딸 임보라(가명) 씨다. 한의원 직원 조 씨는 부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를 영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터무니없는 자기소개에도, 한의사 박 씨는 오히려 조 씨의 말을 거들었다.

"임태욱 씨를 대학병원에서 퇴원시켜 우리 한의원에서 치료받게 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자칭 '영적 치료사'인 조미현(가명) 씨는 임태욱(가명) 씨의 주치의를 자처하며, 직접 침을 놓고 뜸 시술도 했다. 사진은 자료사진. ⓒpixabay

부녀는 이들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15년 6월 17일, 임 씨는 박 씨의 한의원에 입원했다.

자칭 '영적 치료사'인 조 씨가 주치의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의원 직원 조 씨는 한의사 박 씨의 지시를 받아 임 씨에게 직접 침을 놓고 뜸 시술도 했다. 둘은 임 씨로 하여금 대학병원이 처방한 약을 못 먹게 했다. 의학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을 임 씨에게 먹이기도 했다.

'영적인 힘'을 믿은 한의사와 한의원 직원. 둘은 갈 데까지 갔다. 임 씨의 호흡이 멈추고 손이 까매질 정도로 위태로운 때, 박 씨는 임 씨에게 필요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 응급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그를 옮기지도 않았다. 같은 시각, 조 씨가 그에게 침을 놓았다.

결국 2015년 6월 23일 임 씨는 사망했다. 그가 박 씨의 한의원에 입원한 지 6일 만이었다.

▲'영적인 힘'을 믿은 한의사 박지숙(가명) 씨와 한의원 직원 조미현(가명) 씨는 결국 뇌경색 환자 임태욱 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셜록

한의사 박 씨는 법정에 서야만 했다.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법관 황지원)은 2020년 10월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어간 박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사와 박 씨 모두 항소하지 않아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다.

자칭 '영적 치료사'에게 대리치료를 지시하다 결국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한의사. 그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의료면허 취소'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을 경우 의료면허 등을 취소해야 한다.(11월 20일부터 '의료사고를 제외한 모든 범죄'로 확대) 의료법에 명시된 규정이다. 그리고 이 절차에서 검찰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재판 결과 통보를 요하는 사건의 재판결과 확정시 공소제기한 검찰청 사건계에서 서식을 기재해 주임검사의 서명날인을 받아 주무관청에 통보해야 한다." -대검찰청 예규 '인·허가 관련 범죄통보지침'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검찰이 박 씨의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의료면허 취소 처분을 내려야 할 보건복지부는 박 씨가 처벌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고, 당연히 박 씨의 의료면허는 취소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 결국 검찰이 심폐소생' 해준 의료면허다.

ⓒ셜록

이 같은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감사원은 지난 6월 대검찰청 정기감사에서, 2020년부터 2022년 10월 말까지 검찰의 재판결과 미통보로 인해 의료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료인 32명(의사, 약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의 사건을 지적했다. 재판결과를 통보하지 않은 관할 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 총 18곳이다.

이중 확정판결 이후에도 '취소되지 않은 의료면허'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의료인은 15명이다. 이들의 평균 월 소득은 1279만 원. 여기엔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병원비가 일부 포함된다.

사실 감사원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감사원은 2021년 3월 대검찰청 정기감사 때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이 확인한 사건에 해당되는 의료인은 총 15명이다. 이중 검찰이 '살려준' 의료면허로 돈을 번 의료인은 10명, 이들의 월 평균 소득은 1587만 원이었다.

검찰의 미통보는 근무태만일까, 직무유기일까. 면허취소 대상 의료인의 전체 수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잘 드러난다. 사실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돼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는 의료인 수는 평균적으로 1년에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2021년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 4월까지 의료면허 취소 대상이 된 의료인은 고작 65명에 불과했다. 그 중 검찰의 재판결과 미통보로 인해 의료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료인이 15명이다. 약 23%, 네 명 중 한 명 꼴이다. 면허취소 대상 전체 의료인 수에 비해, 검찰의 미통보 비중이 너무 높다.

<셜록>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검찰의 미통보로 인한 의료면허 취소 지연 기간을 확인했다. ‘영적인 힘’에 의지해 환자를 죽게 만든 한의사 박 씨게, 보건복지부는 올해 7월 21일에야 의료면허 취소 처분을 내렸다. 최종심 선고일자(2020년 10월 21일)로부터 약 2년 9개월이 지난 때다.

▲<셜록>은 재판결과 통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검사를 쫓아가 질의를 해봤지만 '언론과 접촉할 수 없다'는 답변밖에 듣지 못했다 ©주용성

박 씨가 뇌경색 환자를 방치해 죽게 만든 사건은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에서 공소제기를 담당했다.

셜록은 지난달 16일 거창지청에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거창지청 담당자는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담당 주임검사가 현재 거창지청에 근무하지 않아서 답변을 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1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대검찰청에도 질의했다. 지난달 8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사건 담당 주임검사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감찰 계획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달 26일 "관련 법령 확인 및 검토에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답변처리 기한을 연장했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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