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모든 기득권 내려놓겠다 …질서 있게"

혁신위 조기해체에 김기현 사퇴론까지…'비주류 중진 vs 친윤 초선' 거친 설전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조기해산을 둘러싸고 '김기현 책임론'을 주장하는 당내 중진들과 이에 반발하는 친윤 초선 의원들 간 반목이 불거진 가운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혁신위 '중진·주류 희생' 의결안과 관련해 본인 또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득권 포기'의 구체적 내용이나 시기는 언급되지 않아 당내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가 최후로 보고한 혁신안을 언급하며 "일부 현실정치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에 까다로운 의제도 있으나, 그 방향성과 본질적 취지엔 적극 공감한다"며 "혁신위의 소중한 결과물이 우리 당헌당규에 따라 조만간 구성 예정인 공천관리위원회를 포함한 당의 여러 공식기구에서 질서 있게 반영되고 추진될 수 있게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울러 저를 비롯한 우리 당 구성원 모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즉생의 각오와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국민 목소리에 답해나갈 것"이라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직접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이나, 혁신안 취지에 공감한다는 언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는 앞서 발언 외에도 추가적으로, (혁신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수용될 수 있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김기현 지도부는 혁신안과 관련, 이전부터 '속도 조절론'을 펼쳐왔다. 이날 김 대표의 발언은 혁신위 조기해산으로 당 안팎에서 책임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기득권 포기 발언을 통해 일면 혁신위의 성과를 치켜세우면서도 기존의 속도조절론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수석대변인은 최근 공관위 구성 시점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법 저지' 등 목적으로 공관위 구성이 늦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서도 "실무적으로 준비하는 데 며칠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12월 중순이라는) 범주 내 일 것"이라며 "항간의 얘기처럼 공관위 구성이 아주 멀리 지연되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최고위에 인요한 혁신위를 대표해 혁신안을 보고한 박성중 혁신위원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란 것은 혁신적인 안을 제시하는 것이고, 혁신안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당의 문제"라며 "(혁신안 제안과 당의 수용) 그 사이엔 시차가 있을 수 있지만, 저희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등 지도부 측과 발을 맞췄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혁신위 조기해체 이후 당내 비주류 중진들을 중심으로 '김기현 책임론'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앞서 전날 5선 중진 서병수 의원이 본인 페이스북에 "혁신위를 구성했는데 어째 국민의힘 지도부에는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만 드러냈다"며 "이제 결단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실만 쳐다볼 게 아니라 단호하게 바로잡겠다는 결기가 김기현 대표 당신에게 있냐고 내가 진작 묻지 않았던가"라고 했다.

3선 하태경 의원 또한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대표에 대한 국민적 검증이 끝났다. 그동안 김 대표가 보여준 모습이 혁신을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방해까지 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의 X맨이 됐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김 대표가 계속 대표 하면 땡큐',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이런 조롱을 하고 있는 단계다. 김기현 대표가 더 이상 버티면 추해진다"고 김 대표 사퇴를 강하게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김기현 당대표의 '당 지지율 55%, 대통령 지지율 60%' 공약이 내년 총선 55~60석으로 바뀔까 두렵다"라며 "김기현 당 대표와 지도부는 총선승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김 대표 책임론에 힘을 실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이날 공개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희생과 헌신인데, 현재 당에서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며 "당의 혁신과 쇄신이 절실한데, 이것이 미뤄지고 뭉개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안철수·나경원 두 사람은 지난 3.8 전당대회 당시 김 대표의 당권 경쟁자로 꼽혔던 이들이다.

최고위 공개회의에서도 일부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를 언급하면서 지도부를 겨냥 "혁신위의 헌신적 노력에도 당 지도부가 그에 걸맞는 호응을 못했다는 세간의 지적이 매우 뼈아프다"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지도부 중 대체 어느 누가 혁신위의 희생에 대한 요구에 답을 내놓았나"라고 질책했다.

반면 다른 지도부 인사들과 친윤계 초선들은 이같은 비판을 반박하며 김기현 지도부를 옹호하고 나섰다. 김석기 최고위원은 최고위 공개발언에서 "대안 없는 지도부 흔들기를 멈춰야 한다"며 "당대표가 물러나는 순간 너도나도 서로 싸울 것이며 오히려 대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고 했고, 김가람 최고위원도 "남은 절반의 (혁신) 완성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비판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다”며 “대체 당 대표가 물러나는 데에 어떤 혁신과 전략이 있나"고 김기현 책임론에 날을 세웠다.

당 최고위원, 조직부총장을 지낸 배현진 의원도 본인 페이스북에 "본인들의 무능을 백번 자성해도 모자랄 이들이 되레 김기현 지도부를 향해 '수포자(수도권 포기자)'라며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 가세했다. 이날 오전엔 태영호, 강민국 의원 등 국민의힘 내 친윤계 초선 의원들이 텔레그램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김 대표 사퇴를 요구한 중진 의원들을 향해 "자살 특공대", "퇴출 대상자" 등이라 비판한 일이 알려지며 김 대표 거취를 둘러싼 당내 대립이 극에 달했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박정하 대변인은 해당 대화방 사건에 대해 "텔레그램 방에서 이미 많은 의원들이 얘기해서 제가 추가적으로 보탤 건 없다"면서 "다만 김병민 최고위원이 말한 것처럼 최근 '견리'라는 게 화두가 되고 있는데, (김 대표 사퇴를) 주장한 분들은 '견리'를 넘어 '탐 사리' 수준으로 간듯하다. 내 정치, 자기 계산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고 지도부 방어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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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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