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당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 투표를 통해 당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규정과 총선 공천 규칙을 변경하는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 안팎에서는 이로써 민주당이 친명(親이재명) 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밑작업을 끝마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사당', '개딸당'이라고 당 주류와 지도부에 날을 세워온 비명(非비이재명)계의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7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중앙위원회를 열고 2건의 당헌 개정안에 대해 찬반 토론을 벌인 후 오후 3시까지 온·오프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개표 결과에 대해 변재일 중앙위 의장은 "중앙위원 총 605명 중 490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331표(67.55%), 반대 159명(32.45%)를 기록, 재적 중앙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투표 안건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표결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 비중을 현재 60대 1에서 20대 1 미만으로 변경하는 안과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10%인 현역 국회의원의 경선 득표 감산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하는 공천 규정 개정안 등 두 가지였다. 해당 안건들은 지난달 24일 최고위원회, 27일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중앙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왔다.
중앙위는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기초자치단체장, 상임고문 등 모두 600여 명으로 구성돼있는데,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중앙위원들이 대거 친명계 인사들로 꾸려져 이날 안건들이 무난하게 가결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중앙위 모두발언에서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당 지도부로서는 당원 민주주의와 당 민주화 측면에서 당원들의 의사가 당에 많이 반영되는 민주 정당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어느 정도 표의 등가성 보장 방향으로 당헌 개정을 시도하게 됐다"고 했다.
비명계에서는 이 두 가지 안건에 대해 '비명계 공천 학살', '친명 지도부 체제 공고화' 방안이라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총선 공천 시 평가 하위 의원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는 것은 곧 비명계 의원들을 쉽게 쳐내기 위한 방편이며, 전당대회에서 강성 지지자들이 상당수 포진된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는 것은 친명 성향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날 중앙위 표결에 앞서 진행된 찬반 토론에서도 비명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특히 이날 투표 과정에 여러 '꼼수'가 섞여있다며 절차적 문제도 제기했다. '원칙과 상식'의 이원욱 의원이나 박용진 의원 등 소신파뿐 아니라, 친문계 좌장 격인 홍영표·전해철 의원도 공개 반대토론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먼저 첫 발언자로 나선 박용진 의원은 "시스템 공천의 핵심이 뭐냐. 예측 가능성이다”라며 "그런데 바로 이렇게 (총선) 코앞에서 바꾸나. 국민이 뭐라고 생각하겠나”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당헌이 편의주의적으로 바뀌면 다음 지방선거 때는 기초·광역단체장에 관련된 당헌·당규는 그때 또 지도부의 편리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이라며 "당의 원칙과 국민 약속을 지켜달라. 부결시켜달라”고 호소했다.
박 의원은 중앙위 회의 후에도 자신의 SNS에도 글을 올려 "우리 당헌 97조, 101조에는 후보자의 심사기준, 경선방법은 선거일 1년 전에 결정한다고 기간을 명시해두고, 102조에서는 심사결과에는 경선결과를 포함한다고 하고 있다”며 "문재인 당 대표 시절부터 굳건했던 '1년'의 예측 가능성, 시스템 공천의 근간을 감산기준 변경을 통해 '경선 결과'를 흔들어 버려선 안 된다”고 부연했다.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인 '원칙과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도 "이 대표가 말한 국민 눈높이의 국민이 누구인지 굉장히 의심스럽다"라며 "말 바꾸기를 일삼고 대의원제를 폐지하자는 것도 국민 눈높이냐"며 반발했다. 이 의원은 "직접 민주주의가 정치 권력과 결합할 때 독재 권력이 된다는 것을 나치에서 봤다"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 부대와의 결합으로 총선에 패배했다.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고강도로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왜 중앙위를 온라인으로 반을 섞어서 하나. 온라인으로 하면 토론을 안 듣고 그냥 투표만 한다"며 "이런 것 또한 통과시키려는 꼼수밖에 안 된다. 이제 '꼼수 정당'이미지를 탈피해달라"며 회의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비명계 설훈 의원도 "적어도 시스템 공천에 대해서는 손을 안 대는 것이 당 분열을 막고 단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며 "대의제는 기본이다. 대의제를 무시하고 1인 1표를 하자고 하면 일반적인 당무는 어떻게 처리하나"라고 반대 토론을 했다.
뒤이어 전해철·홍영표·윤영찬 의원 등 친문계 의원들도 같은 취지에서 부결 입장을 밝혔다. 전 의원은 "10년간 지켜온 민주당의 모습을 지금 바꾸면 어떻게 100년 정당을 만들겠나"라며 "대의원제 문제를 왜 지금 말하느냐. 이 건은 일단 부결시켜 주시고, 지도부가 충분히 논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홍 의원은 "(대의원제 축소가) 혁신위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하는데, 김은경 혁신안 1호가 뭐였나.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렇게 했느냐. 왜 그것은 관철시키지 않나"리고 이 대표를 직격하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대의원제"라고 강조헀다.
윤 의원은 "축구경기를 하고 잇는데 갑자기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룰 바꾸라고 하면 되겠느냐"라며 "지금 당 분위기는 대의제는 악이고 직접민주제가 선이라고 하는데, 여기 계신 지역위원장(중앙위원)들도 다 대의제의 일원이다. 일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장악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대의제가 존재하고 이게 모든 나라가 선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문명순 중앙위원은 "과거에는 (대의원제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국민 눈높이가 높아지고 달라졌고, 당원도 마찬가지다. 우리 더이상 과거에 매몰되지 말자”며 가결 취지로 발언했다. 한영태 경북 경주 지역위원장도 "대의원 등가성을 기본적으로 낮추면 중앙당에서 경북을 홀대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가 없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정치하는 정당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근본적인 것은 1인 1표제가 맞다”고 거들었다.
약 100분 간의 토론이 끝난 뒤 표결은 온·오프라인에서 3시간 동안 동시 진행됐다. 그런데 민주당은 2건의 당헌 개정안을 각각 투표하게 하지 않고 일괄 투표 방식으로 진행해 '꼼수' 논란에 추가로 불을 붙였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원래 같은 당헌 개정안은 한꺼번에 의결이 된 것이고 과거에도 동일한 당헌 개정안일 때 한꺼번에 투표 진행했던 게 일반적 과정이었다”면서 "경우에 따라 안건을 분리한 적은 있었는데 이번엔 통상적 절차에 따라서 같이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위원들께서 두 가지 내용을 다 파악하시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사무총장의 이같은 설명에 대해 원칙과상식 소속 김종민 의원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꼼수 표결에 꼼수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법안을 심사할 때 개별 사항을 심의해서 한꺼번에 의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여야 합의가 됐을 때의 경우다. 합의가 안 됐는데도 일괄 의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전혀 별개 사안을 하나로 의결하는 건 원칙과 상식에 완전 어긋나는 것”이라며 "마치 영화 <서울의 봄>에서 나오는 탈원칙·비상식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비주류에 속하는 또다른 의원은 "이미 (지도부의) 답은 정해져있고 중앙위는 거수기 노릇을 한 것 아닌가 안타깝다”고 했다. 앞서 이원욱 의원은 이날 오전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최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여태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가장 민주주의가 실종된 정당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당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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