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에 '출마설'까지…보수 위원들의 역습? "인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해설] '박정훈 패싱', '김용원 출마설' … 인권위서 무슨 일이?

"김용원 인권위원은 사퇴하라."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4층 전원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퇴를 요구 받은 이는 인권위 상임위원 중 한 사람인 김용원 위원. 지난 8월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 당시 군인권보호관으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그는 인권위 내 '정파성' 논란의 핵심에 있다.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 정의기억연대 수요시위 인권침해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편파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일면서다.

인권위 진정 사건은 3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만장일치' 의결을 통해 인용·기각 등 결정이 이루어진다. 위원장 혹은 2인의 위원이 인용과 기각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안건은 11인 구성의 전원위원회로 넘어간다. 다만 최근엔 일부 위원이 이 같은 인권위 규정을 무시하거나 "선례를 따져봤을 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권위 안팎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 위원 논란도 그가 '인권위 내부 규정을 무시, 혹은 편법으로 우회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0월 이충상 전 국민의힘 전북도지사 선대위원장이 '극우논란'에도 불구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인권위에선 수요집회 방해, 윤석열차 검열, 이태원 참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진정사건을 둘러싸고 일종의 내홍이 불거져왔다. 시민사회에선 "보수성향 위원들이 인권문제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고, 여기에 최근 김 위원의 '부산 영도구 총선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정파성 논란이 극에 달했다.

<프레시안>은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 정의연 수요집회 방해사건, 또한 해당 사건들 이후 이어진 보수성향 위원들의 인권위 내부 규정 조정 시도 등 주요 사안들을 중심으로 김용원 상임위원을 둘러싼 정파성 논란을 시간 순으로 되돌아본다.

① 수요집회 보호요청 진정사건, 규정 어겨 '기각'으로 뒤집다?

수요집회 방해사건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수요집회에 대한 보수성향 단체들의 방해 행위가 문제가 된 사건이다. 정의연은 "위안부 앵벌이" 표현과 같은 모욕·욕설·성희롱 등 맞불집회 주최 측의 집회 방해 행위를 두고 경찰의 적극행정을 요구하며 지난해 1월 집회보호 등에 관한 진정을 인권위 측에 접수했다.

담당 소위인 침해1소위(위원장 김용원)는 진정 1년 8개월만인 지난 8월 1일 해당 진정을 기각 결정했다. 이때 절차적 문제가 제기됐다.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을 의결 조건으로 두고 있는 인권위법 13조에도 불구, 김 위원이 '2인 기각 찬성, 1인 기각 반대' 의견으로 해당 진정에 대한 결정을 기각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9월 8일, 해당 기각 결정에 대한 두 개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먼저 김 위원은 개인명의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사건과 관련) 위원 1인만이 인용해야 된다고 주장해 표결결과 (인용이) 부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인권위 조사총괄과는 인권위법 13조를 들어 "위원장은 위원 3명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음에도 해당 진정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선언했다"며 "법적 근거가 없는 기각 선언"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조사과에 따르면 조사과는 침해1소위에서의 재논의를 주장했지만, 김 위원은 '(해당 진정을 기각 처리하지 않으면) 소위원장으로서의 직무를 거부'한다고 밝히며 기각 결정을 강행했다. 이후 침해1소위는 3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김 위원은 본인의 기각 결정을 이행하지 않은 조사과 직원들의 인사조처를 소위원회 재개의 조건으로 걸고 있다고 전해진다.

해당 기각 결정과 관련해선 절차뿐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인권위를 찾아 김 위원의 사퇴를 촉구, 해당 기각 결정에 대해 '인권위의 지난 결정 선례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권위는 지난해 1월 정의연의 진정 직후에는 수요집회에 대한 긴급구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해당 사건을 두고 "단순히 두 개의 보호받아야 할 집회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며, 인권보호를 위한 세계 최장기집회인 수요시위를 "어떻게 보호해야할 것인가 염두에 두는 것이 인권위의 기본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 위원은 같은 사건에 대한 기각 결정의 사유를 "서로 상충하는 집회 중 특정 집회를 국가가 우선 보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특정 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사전에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년 8개월 만에 같은 기관에서 상충하는 결정이 나온 셈이다.

한 총장에 따르면 김 위원의 기각 결정 선언 직후 종로경찰서는 맞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정의연 측 집시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 고소에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모욕 등은) 상충되는 반대되는 집회에서 좀 격앙되게 표현하였을 뿐"이라는 이유였다.

한 총장은 "경찰은 오랜 세월 동안 이 고소 건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인권위 결정 직후 (같은 논리로) 불송치를 결정했다"라며 "인권위 결정엔 강제성이 없지만, 이렇게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정파성에 매몰될 경우, 행정영역 전반의 반인권적 처사에 광범위한 '명분'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인권위의 규정 개정을 규탄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② 박 대령 긴급구제 '기각' 왜? … 꾀병 논란에 전원위 파행도

수요집회 관련 기각 결정이 내려진 8월, 김 위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다른 소위인 군인권보호위원회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군인권센터가 8월 14일 제기한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이 기각되면서다.

김 위원과 그가 소위원장으로 있는 군인권보호위원회는 8월 초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의 폭로로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질 당시 박 전 단장에 대한 국방부 측 조치를 규탄하는 군인권보호관 명의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가량 뒤인 8월 29일엔 태도를 뒤집어 박 전 단장 긴급구제 요청을 기각 결정했다. 김 위원은 당시 시점에 박 대령이 이미 견책 징계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현 상황에)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결정의 취지를 밝혔다.

해당 기각 결정은 침해1소위에서의 결정과 달리 군인권보호위원회의 만장일치로 의결된 사안이다. 다만 이에 대해선 '진정이 제기된 이후 15일 동안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는 시간 끌기 논란이 일었다. (관련기사 ☞ 인권위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기각에 "국방부에 가세하나" 비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김 위원의 해당 조치를 가리켜 "인권침해가 예상돼 긴급구제 조치를 요구한 것인데, 자기가 보름이나 시간을 허비해놓곤 그 사이에 이미 인권침해가 발생했으니 구제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간의 긴급구제 조치 결정 과정을 되돌아보면, 박 대령 긴급구제 요청 건에 대한 논의가 15일이나 걸린 일은 분명 이례적이다. 2010년 9월 1일 해병대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긴급구제 요청은 접수 당일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2020년 고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 심사에 관한 긴급구제 요청 또한 당일 위원장의 상임위 개최로 긴급구제 권고가 결정됐다. 2022년 공군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제 권고도 마찬가지, 당일 상임위에서 의결됐다.

당시 인권위 내부사정을 살펴보면 의혹이 증폭된다. 긴급구제 요청에도 군인권보호위가 열리지 않자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8월 18일 상임위원회를 개최, 해당 요청 건을 상정하려 했다. 김 위원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상임위를 반대하고 이에 불참했다. 하나는 "군인권보호위 소관업무를 상임위가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고, 하나는 본인의 건강문제였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제20조는 상임위원회가 "전원위원회 또는 위원장이 상임위원회에 회부한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 위원장은 지난 8월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법률상으로도, 안건의 시급성으로 해당 안건을 상임위에서 논의해야 했다고 해명했다.

같은 날 김 위원은 "(상임위가 열렸던) 그 주 동안 건강상태가 매우 나빴다"고도 해명했지만, 진정인인 임태훈 소장은 "인권위는 (상임위 회의 참석을 위한) 화상시스템도 다 갖춰놓고 있다"며 "인권위 내부에선 당일 화상 장비를 직원을 통해 김 위원에게 보냈는데도 (김 위원과)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안다"고 <프레시안>에 전했다.

그달 29일에야 열려 긴급구제 기각 결정을 내린 군인권보호위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관계자는 "소위원회의 구체적인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릴 수 없다"고 전해왔다. 다만 박 대령에 대한 군의 견책 징계는 소위가 열리지 않은 15일 사이 결정됐다. 센터 측이 제기하는 '시간 끌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이 '이미 징계가 내려졌다'는 기각 명분을 시간 끌기를 통해 의도적으로 형성했다는 지적이 유효할 수 있다.

센터 측의 반발과 함께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꾀병 논란'이 일자 김 위원은 같은 달 29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군 긴급구제 안건은 상임위가 아닌 군인권보호위 소관인데, 왜 위원장은 상임위를 급히 열어 논의하려 했나", "꾀병을 추론한 보도로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었는데 인권위에서 어떤 조처를 할 거냐"고 항의했다.

센터에 따르면 김 위원은 당시 '긴급구제 안건을 (군인권보호위원회가 아닌) 상임위원회에 상정한 이들이 외부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인권위 박진 사무총장과 군인권조사과장 등에 대한 조사 및 중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군인권조사과장은 해병대 수아외압 사태 사건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주무부서 담당자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9월 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김용원 위원, 여당 출마 움직임?…"공천용 기각", "보복 각하" 논란도

지난 10월엔 김 위원을 둘러싼 '출마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0월 5일 인권위 내부 익명게시판에 김 위원이 고향인 부산 영도구에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개인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오면서다.

추석 기간 당시 김 위원은 "정겹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라는 인사문구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직을 명시한 추석 인사 현수막을 영도구 거리에 게시했다. 김 위원은 이어 10월 13일엔 부산 영도구청이 주최하는 영도다리축제 개막식에 참석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인권위 내부에선 김 위원의 '총선 출마설'이 전부터 거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은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해당 지역 경선에 참여했다 낙선했고, 이후엔 무소속 출마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과거 무소속(15대, 18대 총선), 민주국민당(16대), 새누리당(20대) 등에서 경선 혹은 총선에 참여했던 이력이 김 위원의 23대 총선 출마설에 불을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 9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인권위 내외의 소식에 따르면 김 위원은 부산 출마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8월 당시의 '박 대령 긴급구제 기각 결정'에 대해 "공천용 기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훈 대령을 둘러싼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는 대통령실 개입설로 인해 민감한 정치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김용원 출마설'에 대한 인권위 내부 분위기를 묻자 "그런 소문이 들린다"고 답했다.

김 위원은 언론 등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총선 출마 의지에 대해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는 취지로 답을 남겼다. 현수막 게시 등 지역활동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고향 지역에 인사한 것뿐'이라는 원론적인 답을 남겼다.

같은 달엔 인권위가 2014년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 진정사건을 각하하면서 김 위원에 대한 '인권위 진정사건 보복 각하' 논란도 일었다. 해당 사건의 진정인인 고(故) 윤승주 일병의 유족들은 지난 9월 5일과 11일 고(故) 이예람 중사 유가족 등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 김 보호관이 박정훈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안건을 기각한 일을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유족에 따르면 담당 조사관은 해당 각하 결정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상임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 등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군인권보호관인 김용원 위원이 단독 결정한 것'이라고 유족들에게 안내했다. 지난 4월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 진정을 도운 군인권센터 측은 김 보호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6일 진정 접수 이후 인권위는 조사관을 배정하고 조사를 개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유족 측에 통보했으며 △김 위원(군인권보호관) 또한 사건 관련 자료들을 제출 받고 유가족에게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구두약속을 남겼고 △지난 5월 31일에는 담당 조사관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진정인 조사를 실시하는 등 해당 진정 사건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이들(인권위)은 윤 일병 사건이 2014년에 발생하여 진정의 원인이 된 날로부터 1년 이상 지나서 진정한 경우로 각하 사유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4호의 단서조항, 제50조의 7 제1항 단서조항에 따라 각하하지 않고 조사를 개시한 것"이라며 "사건을 조사 개시(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갑자기 발생 1년 이상이 지난 사건이라며 각하하는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일병 유족들 또한 김 위원이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윤 일병 사건 관련 유족들의 진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방침"이라 말한 일 등을 언급하며 "김용원 씨는 지금 군인권보호관의 공적 권한을 휘둘러 유가족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구두 및 매체 인터뷰 등을 통해 '진정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해놓고 갑작스레 입장을 뒤집는 것은 "명백한 보복"이라는 주장이다.

'보복 각하' 논란이 일자 인권위는 같은 달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윤 일병 사건 관련 진정 접수 후) 2014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동법 제32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각하 요건을 벗어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며 "고 윤 일병 유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④ 인권위의 이상한 규정 개정 … '민감 사안 입맛대로 주무르려'?

다시 수요 집회 진정 기각 사태로 돌아오자. 지난 10월 30일 인권위 전원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김용원 인권위원은 사퇴하라"는 구호가 등장한 계기가 있다. 김용원 위원 등의 주도로 발의된 '소위원회에서 의결되지 않은 안건의 처리'에 관한 안건 때문이다.

이날 전원위에서 논의된 해당 안건은 "개별 소위(3명)에서 위원 1명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인 전원의 만장일치 합의로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그간 인권위의 결정절차를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다. 김용원 위원을 비롯해 '극우논란'이 일었던 이충상 위원, 한석훈 위원 등 여당 추천 인권위원들의 주도로 위원 6명이 해당 안건을 발의했다.

지금까지 인권위에선 진정 사건에 대해 소위 차원의 만장일치 결정이 끝내 불발될 경우 안건을 전원위에 올려 심의·의결해왔다. 김 위원이 지난 8월 침해1소위에서 수요집회 관련 사건을 '다수결 의결'한 데 대해 인권위 사무국이 반발할 수 있던 법적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 이번 안건이 통과되면,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절차적 정당성을 따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안건이 기각되는 경우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은 침해1소위의 다수결 안건 기각 사건이 논란이 된 시점에 이 같은 규정 개정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등을 입맛대로 의결하기 위한 '개악 시도'라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인권위는 정의연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피고이기도 하다. 지난 수요집회 관련 사건 기각을 두고 '3인 의결이 아닌 2인 의결의 기각 결정이 부당하다'는 내용을 주로 한 소송이다. 인권위 규정이 변경될 경우엔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인권위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전원위에 참석한 김수정 위원은 진정 사건에 대한 "충분한 숙의과정"을 상실케 하는 해당 운영규정 개정이 "(사건을 진정한) 국민들에게 불리한, 공정하지 못한 절차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규정 개정을 공동 발의한 이충상 위원 등은 "(만장일치 규정으로 인해) 사안이 기각도 인용도 안 되면 한 없이 기다려야 하나. 인권위는 지금까지 (사건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경우) 적당히 타협해온 것"이라며 "지금까지 20년간 인권위는 잘못 운영돼왔다"고 주장했다.

수요집회 방해사건과 관련된 행정소송, 해병대 수사외압 사태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 진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인권위 내부에 산적한 상황에, 인권위 규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한국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부재 등으로 차별 사건을 겪는 개개인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인권위 차별 진정'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각 결정이 쉽고 빨라질 경우 인권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인권위원은 "인권위 20년 역사 동안 만장일치 의결 규정이 혼선으로 작용하거나 사안을 무리하게 딜레이시킨 적은 없었다"라며 "(만장일치 규정은) 여러 논의와 숙의 끝에 합의에 이르기 위한 장치이고, 그게 인권위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인권위의 규정 개정을 규탄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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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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