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에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저는 라일라 데이비(Laila Davey)입니다.
저는 KAD(한국 입양인)의 딸이자, 2세대 필리핀계 호주인입니다. 부모님은 호주 멜버른에서 만나셨고, 저는 줄곧 이곳에서 자라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 조상호(영문 이름 앤드루)는 1985년, 두 살이 되기 직전에 빅토리아주 벤디고로 입양되셨습니다. 그 후 1988년에 양부모님은 또 한 명의 한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하셨고, 1990년대 당시 아버지와 그 여동생은 이글호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필리핀 산페르난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레이테에서 보냈습니다. 12살 때 외할머니(롤라)와 함께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하셨습니다.
부모님은 2007년 멜버른의 리알토 타워에서 처음 만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투자은행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살루트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아버지가 어머니를 설득해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 뒤 이야기는 잘 아시다시피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DoKAD(Descendants of Korean Adoptees, 한국 입양인 2세)중에는 자신의 뿌리와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 모두 아시안계였기 때문에 이 부분이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호주에서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필리핀 음식과 문화를 배웠고, 두 살 때 처음으로 필리핀을 방문했고, 네 살 생일은 어머니의 고향 마하플락(레이테)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저와 닮은 가족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경험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주었고, 그때부터 저는 언제나 필리핀 가족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필리핀 문화는 흥미롭고 따뜻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멜버른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쪽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영어만 하는 백인 부모 밑에서 자라 서양식 식습관을 가졌고, 한국에 관한 지식은 제한된 채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안의 한국적인 부분과 저를 연결짓기 위해 오랫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어릴 적엔 제 아버지 쪽 조부모님이 왜 저와 이렇게 다르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아버지께 물어보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제 탓이 아닌 부분(외모 등)으로 평가받는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외모를 연결 짓는 것이 피상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아마 초기 입양인들이 양부모와 함께한 첫 몇 년 동안 느꼈을 감정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과 관련, 저에게 가장 깊게 남은 경험 중 하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였습니다. 의사가 '가족력 중 이런 병력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제 가족의 절반은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라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입양인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저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 눈빛은 제 정체성의 일부가 영원히 공백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2022년 10월,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명동 길거리 음식, 홍대의 K-pop 댄스 공연, 광장시장의 칼국수를 즐기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한 아주머니가 저희에게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처음에는 '현지인이 우리를 선택해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에 뭔가 연결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설명하자, 그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치고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외감과 거절당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방문을 떠올리면 슬픔이 남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지인들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제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우리는 한국 언어도 문화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도 언젠가 설날, 추석, 조상 제사, 한복 입기와 같은 한국 전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방법은 한국에서 살고, 공부하며, 현지인처럼 살아가는 것뿐일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남자친구는 한국인입니다. 제가 그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인 편향이 작용했을까요?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한국에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그가 제 한국 현지 적응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입니다.
DoKAD로서 저는 많은 제약과 한계를 마주합니다. 제 상황에 저의 선택권이나 목소리는 없지만, 여전히 남들과 다르게 취급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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