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언론 개혁' 일환으로 추진해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23일 본회의에 상정됐다. 언론사에 대한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포함된 법안으로, 민주당은 이를 '허위 조작정보 근절법'이라고 이름붙여 추진해왔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결동의와 법안 표결을 마친 후 곧바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에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23일 오후 현재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다.
법안은 공익이나 타인의 이익에 손해를 가하거나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언론사나 유튜버 등이 의도적으로 이를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징벌적 손해배상) 했다.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현행법 규정은 '사실'을 '개인 사생활을 내용으로 하는 사실'로 바꾸기로 했다. 이 조항의 폐지 또는 친고죄 전환 주장이 있었지만 이는 없던 일이 됐다.
당초 이 법안은 전날인 22일 본회의에 상정돼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진보성향 시민단체 등에서도 위헌 우려와 함께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막판까지 급히 손질이 이뤄졌다.
이날 본회의에 올라온 안은 그 수정의 결과물로,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 조건을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 '공익 침해' 등으로 엄격히 했다. 이는 과방위 통과시에는 포함됐던 내용이나, 법사위 심의 단계에서 삭제됐다가 최종 수정안에서는 복구됐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여건을 명확히 해 위헌 소지를 제거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언론·유튜버 재갈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가가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언론과 유튜브를 검열하고,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처벌하는 이 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전체주의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하는 '검열국가 선언'"이라며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했다.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이 법안에 대해서는 우려·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참여연대는 지난 21일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언론보도를 포함한 표현물에 대해 온갖 소송전이 난무할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공론장의 위기이다. 국회는 위헌적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것이 아니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목적으로 지난 10일 (과방위에서) 처리된 정보통신망법 대안은 허위조작정보의 폐해를 줄이기보다 언론 감시기능 위축, 표현의 자유 침해 위험이 훨씬 커 시민사회와 언론계 등에서 폐기 및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왔다"며 "허위정보 유통금지 조항에 대한 수정만으로 법안의 본질적인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불명확한 개념, 추상적 공익 개념, 위축효과 유발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공론장의 토대를 국회 스스로 흔들고 있다"며 "정보의 허위 여부와 그 해악성 여부를 국가가 1차적으로 판단하고 이에 더해 사기업인 플랫폼에게 표현물에 대한 광범위한 삭제 권한 등을 주는 것은 자기검열과 위축효과로 이어지고 결국 민주주의 공론장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법안은 여러가지 위헌적 문제를 담고 있다. 첫째, '누구든지 허위의 정보로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유통을 금지'하는 것은 2010년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미네르바 결정'에서 위헌으로 결정한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 통신'과 그 구조와 내용이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둘째, 과방위 안에선 삭제키로 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도 '개인의 사생활을 내용으로 하는 사실'에 대해선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일부 남기기로 한 것은 후퇴"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언론의 권력 비리 보도, 미투 운동, 내부고발, 소비자 제품 평가 등을 억누르는데 악용되어 사회적으로도 폐지 요구가 높다.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정보통신망법 및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의 범위는 주장에 따라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일 수 있다. 예컨대 현직 장관 자녀의 학교 기부 목록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인가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고위공직자가 자신에 관한 비리의혹 보도에 대해 사생활이라고 주장하며 고소한다면 이로 인한 형사사법절차의 개시 자체만으로도 언론의 감시기능 등은 현저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0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미디어기독연대·언론개혁시민연대·오픈넷·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참여연대·커뮤니케이션법연구소·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한국여성민우회 등 10개 시민단체는 연명으로 낸 성명에서 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의 기능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크다"고 했다.
이들 10개 단체는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불법화해 유통을 금지하고, 행정기관 심의를 확대하며, 언론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가 중심의 규제와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해 헌법에 반한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며 "이를 그대로 둔 채 일부 조항을 삭제했다고 해서 위헌성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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