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 "한국정부, 무자비하고 잔인"

1주기 앞두고 한국 찾은 외국인 유족들 "설명도 지원도 X, 대사관에선 모욕 받아"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외국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 한국을 찾아 '한국 정부의 외면과 냉대'에 아픈 심정을 토로했다.

오스트리아 국적 희생자 김인홍 씨의 누나 김나리 씨, 노르웨이 희생자 스티네 에벤센 씨의 유가족 등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저지른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부끄러운 진실과 우리 외국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거주하고 있는 김나리 씨는 참사 이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 지난 1년 간 발을 굴러왔다. "10월 29일 이후 이태원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유가족들의 이해를 돕는 제대로 된 브리핑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나리 씨는 특히 이태원 참사와 관련 △유족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 가족들은 고립 상태에 있고 △피해자들은 비난을 받고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국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김 씨는 사태 수습 단계에서 동생 김인홍 씨의 사망증명서, 응급 보고서, 소방서 담당자 진술서 등을 전달 받았다. 그러나 김 씨는 "이 문서들 중 어느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도) 저희에게 설명하지 않았으며, 최악의 상황은 설명 자체를 거부당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담당부서에 전화도 걸어봤지만 "의사와 응급구조대원들이 충격을 받아 통화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응급보고서의 경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 보고서를 받는 것 자체가 번거로웠다."

김 씨는 "외국인 피해자 가족들은 고립된 채 살아간다. 우리에게 보고되거나 전달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는 유일한 이유는 제가 언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당국이 정보접근이 어려운 외국인 유족들에게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유족들 설명에 따르면 정부의 방치로 고통에 빠진 외국인 유가족들이 김나리 씨 외에도 많았다.

이란인 희생자 알리 파라칸트의 유가족은 최근 '1주기를 맞아 참사 현장에 방문하고 싶다'며 주 이란 한국 대사관에 비자 발급과 여비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한국 정부는 22일간 무응답으로 임하다가 참사 1주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최근에서야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면 빨리 처리해주겠다'는 답을 남겼다. 여비 지원은 불가능, 비자 발급 비용도 자부담이었고, 그조차 한국 측 유가족들이 행정안전부 지원단에 알리 씨 유족들의 이야기를 문의한 결과였다.

알리 씨의 가족들에 따르면 이들은 시신인도 및 장례식 과정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응답밖에 들을 수 없었고, 구급일지 등 병원에서 발급한 서류도 받지 못했다. 알리 씨의 부모님이 자식의 죽음과 관해 알 수 있던 것은 사망증명서 한 장 뿐이었다. 부모님은 '29일에 참사가 일어난 후 어떤 과정에서 30일에 사망하게 된 것인지'만이라도 알고 싶었지만 한국으로부터는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한국 대사관은 이들이 알리 씨의 한국 계좌에 남아있는 돈을 찾으러 오자,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낸 돈 100달러가 구권이라는 이유로 '올해 발급된 신권으로 바꿔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알리 씨 가족들은 국내 유가족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가족들을 모욕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김 씨는 이 같은 사정을 두고 "우리가 스스로 도움을 구하는 것 외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한국 정부가 외국인 피해자를 지원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되물었다.

외국인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에도 분노를 내비쳤다. 김 씨는 "많은 한국인, 심지어 정치권 인사들까지 이태원에 간 것이 마치 피해자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러한 언어폭력은 이제 멈춰야 한다"라며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것도 힘든데, 동생의 죽음을 정당화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윗선'의 책임을 적시하지 않고 끝난 지난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김 씨는 "저는 이 모든 사실과 관계자들의 위법 행위를 강조하고 싶지만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며 "한국 정부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되물었다.

이어 그는 "159명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었는데 그들을 구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라며 "우리가 무엇을 해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질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한 한국인 희생자 유연주 씨의 아버지 유형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은 "참사당일과 그 직후 수습과정, 구급일지에 적힌 내용 그 모든 것에 의문을 품은지 1년이 다 되도록 정부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라며 "한국인 유가족에게도 이 정도인데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무책임하게 대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알리씨 가족들만이 아니라 다수의 외국인 희생자들이 비슷한 처우와 고통속에서 1년을 보내셨을 것"이라며 "부디 각 국의 대사들도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여해 주셔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생존자 그리고 그 진실을 찾는 과정에 관심을 보여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159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에는 총 14개국의 26명 외국인 희생자들이 포함돼 있다. 유가족협의회는 이들 희생자들의 출신국인 14개 국가 주한 대사관에 1주기 시민추모대회 초청장을 전달한 상태다.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 방한 외신기자회견에서 오스트리아 국적 희생자 김인홍 씨의 누나 김나리 씨가 발언하고 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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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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