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에서 정치·선거·공공 여론조사와 데이터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여의도 아저씨'이지만, 미국 정치를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입니다. 최초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자 우리와 같은 양당제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민주정치의 전범(典範)처럼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요.
지금은? 글쎄요, 오히려 한국 정치가 가진 심각한 문제들, 즉 양극화, 이념화, 협상과 타협의 실종, 맹목적 팬덤, 정치의 사법화 등을 비추는 거울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여기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만, 저에게 결정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2016년 1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일입니다. 캠페인 기간만 해도 저는 인종과 성, 이민자 등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마저 내버린 듯한 그에게 열광하는 일부 미국인들을 애써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이나 반감에 공감이 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포퓰리즘 이데올로기가 결국 승리합니다. 정말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한 것인가, 다른 나라 선거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며 촉발된 사건입니다. 놀랍게도 트럼프가 나서서 시위 참여를 독려했고, 폭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하원의장 사무실과 상원의장 의장석을 점거했습니다. 이 일은 미국의 최상위 의사 결정 기관이 자국민들에 의해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는,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최근에 벌어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입니다. 미국에서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 다음인 권력서열 3위인데, 의회의 표결 끝에 해임안이 가결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그것도 같은 정당 소속인 공화당의 강경파 의원(맷 게이츠)의 주도로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결탁해서 임시 예산안을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미국 의회는 내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만, 공화당 초강경파 의원들이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셧다운(shut down)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매카시 의장이 연방정부 예산 동결을 골자로 한 수정안을 전격 제안해 압도적인 가결을 끌어냈고,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셧다운 위기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 경제도 당분간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매카시 해임을 주도한 이들 일부는 심지어 후임 하원의장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의원이 아닌데요?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만, 미국 헌법에는 하원의장을 원내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로 치자면 국회의장을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이 해도 된다는 것이죠.
현재 미국 하원은 공화당 221석, 민주당 212석으로 9석 차이에 불과한데, 공화당에서 강경파라고 할 수 있는 비율은 약 10%, 20명 정도라고 합니다. 강경파가 빠지면 공화당은 과반에 미달해 어떤 법안도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사실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여기는 강경파의 눈에 민주당과의 초당적 협력으로 의회를 이끄는 매카시 의장은 눈엣가시였던 겁니다. 지금 미국은 하원의장 공석인 초유의 사태로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길 때마다 위협을 받습니다(Our democracy is threatened whenever we take it for granted)."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미국 정치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궁금하던 차에 <아메리칸 카오스(American Chaos)>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받았습니다. 2018년 제작된 이 작품은 영화감독 제임스 D. 스턴(James D. Stern)이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지지자들과의 대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대표하는 트럼프의 엄격한 이민·무역 정책, 거침없는 성격, 주류 정치의 아웃사이더라는 포지션에 매혹됩니다. 자신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낍니다. 결국 트럼프가 워싱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불만스러운 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게 되죠. 현재 트럼피즘(Trumpism)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만 없어진다면 트럼피즘도 사라질까요? 저는 트럼프 현상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정치인이 정치 불신과 혐오를 이용해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대감과 불화, 증오가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는 음모론에 기반하고, 허위 정보(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정부를 믿지 않고, 사법기관을 의심하며, 마녀사냥을 감행합니다. 마치 종교가 다르다고 전쟁을 치러야 했던 절대 신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미국의 상황이 안타까운 건, 다른 나라의 정치임에도 기시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거대 양당의 강경파가 주도하는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도 대화, 협상, 양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다 보니 극한의 대결과 제로섬 게임만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선명성 경쟁이 과열되고, 극단적 지지층의 목소리만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타협이 비겁함을 의미할 필요는 없습니다(Compromise need not mean cowardice)." -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 1955년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겠다(Let us never negotiate out of fear, but let us never fear to negotiate)." - 존 F. 케네디,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사
냉전 시대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케네디 대통령은 정치적 용기와 원칙을 확고히 지키는 동시에 더 큰 이익을 위한 협상의 힘을 믿었습니다. 타협이 실종된 정치는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무능한 권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당파의 이해를 국가의 이익에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주권자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민생의 문제는 의제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오로지 내 편과 네 편만 남습니다.
예산 삭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연방정부 폐쇄를 감수하려 했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행동은 정당한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셧다운을 막기 위해 자신이 속한 정당의 목표를 양보하고 민주당과 타협한 매카시 하원의장이 옳았을까요? 만약 우리나라의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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