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전환 늦추는 尹 정부 정책, 경제도 망친다

[초록發光] 경제와 재생에너지

2014년 국제 비영리환경단체 The Climate Group과 탄소공개프로젝트(CDP)가 파리협정 성공을 이끌기 위해지지 캠페인 형식으로 시작한 RE100은 이제 기업운영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2023년 현재 415개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재생에너지 소비 비중을 49%까지 키우고 재생에너지 전력의 100% 전환 목표 시기는 종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기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아닌 '지구열대화'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RE100 실천 활동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BMW, 애플, 메타, 제너럴모터스 등 초기 회원 기업들의 주도로 RE100 이행을 이들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연계된 기업들에게까지 촉구하게 되면서 RE100은 유사 무역장벽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들 기업의 국외에 소재하는 기업들에 RE100 이행을 담은 별도 납품 기준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정해진 연도까지 RE100 목표 이행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기업에도 RE100 회원 가입을 촉구하는 압력이 되었다. 2020년 SK 하이닉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34개 국내 기업이 회원사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내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RE100 이행이 실제 계약 취소로까지 이어지는 등 실질적으로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 볼보로부터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해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이행하지 못해 최종 계약을 하지 못한 국내 기업이 생겨났다고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제 기업 활동의 필수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둘러싼 국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RE100 회원 국내 기업들은 탄소중립 이행에 정부보다 앞장 선 위치가 되었다. SK 하이닉스의 경우 2020년에 이미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공표했다. 결국 정부 지원 정책에 앞서 기업들이 각자도생으로 탄소중립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2021년에야 에너지공단의 K-RE100 제도 설계로 기업 지원에 나섰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한 수단으로 녹색프리미엄, 제3자 전력거래계약(PPA),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의 지분 참여,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기업 지원 정책으로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기업이 높은 전기가격으로 지불하는 녹색프리미엄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된다는 보장을 받지 못하므로 RE100 인증을 못 받는 경우가 발생했다. 애플의 경우 녹색프리미엄을 통한 재생에너지 공급 자제를 국내 기업에 요청했다고 한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를 가능하게 하는 제3자 PPA는 시행 후 1건 밖에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REC의 경우도 기업이 구매할 만큼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어 활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자체가 정체를 겪으면서 기업은 지분 참여나 자체 건설 방안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량 자체가 증가해야 하는데 2021년도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4.1%에 불과하다. RE100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 비중이 2%에 불과하여 일본의 15%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현재 23%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기업의 직접 구매를 통한 재생에너지 조달이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RE100 이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확충이 필요한 것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은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중심 에너지 공급 정책 선회로 한계를 맞고 있어 RE100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지난 정부 목표의 30.2%에서 21.6%로 하향 조정해 두었다.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 상승에 가장 기여가 높았던 태양광 발전 분야에서 소형 태양광 고정가격 제도를 폐지하는 등 오히려 사업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계획입지로 풍력과 해상풍력 확대를 보장해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풍력발전보급촉진특별법은 논의만 되고 있을 뿐 진전이 없다. 산업단지 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각종 인허가 규제 개선과 관련 법안 제정이 필요함에도 정부의 정책 활동은 정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자구책으로 재생에너지 조달이 용이한 해외에 공장을 짓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통해 기업이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기업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이제 재생에너지는 경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29일 독일 연방정부는 높은 에너지 가격과 인력부족, 관료제의 폐해 등으로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 회생을 위한 10가지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이 경제 현대화와 기후 대응을 위한 탈탄소경제 수립을 동일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정책의 핵심으로 성장기회법 제정을 밝히면서 동시에 산업 탈탄소화, 교통전환 등을 위해 기후전환 기금의 2110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음을 선언했다. 또 다른 중요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재생에너지 설비에 필요한 전력공급망 확충을 위해 인허가제도 개선 속도를 낼 것을 천명하였다. 재생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그간 하루에 30개 축구장 넓이로 증가해간 태양광 발전 설비를 43개로 늘려나갈 수 있도록 인허가 제도 개선에 노력할 것임을 분명히 해두었다. 전력망 확충과 수소공급 확대를 통해 에너지안보와 에너지경제성 확보를 위한 2030년 80%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목표를 이룰 것을 다시 확인해둔 것이다. 독일 경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의 탈탄소화가 우선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RE100 기업 지원 정책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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