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죽으라는 건가…배달운전 중 '왜 늦냐' 메시지 응답 요구하는 죽음의 알고리즘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산재 1위 배달업, 알고리즘 검증이 필요하다

"형님, 그거 골병이에요, 골병(骨病). 산재 아니라니까. 세월에 장사 없다고,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어. 시간 있으면 침이나 좀 맞으러 다녀요. 산재 같은 헛꿈 꾸지 말고."

자동차공장에서 20~30년 조립 업무를 하면 어깨관절, 손목관절, 허리요추에 심한 통증이 온다. 겉으로 보면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니 꾀병처럼 의심받기 일쑤였다. 1990년대만 해도 낯설게 들렸던 근골격계질환(筋骨格係疾患)은 "골병은 산재가 될 수 없다"는 종전의 상식을 깨고 세상에 등장했다.

'산재 아니라 골병' 잘못된 상식을 깨고

이제 제조업 산업재해 관련 통계를 보면 '질병' 산재 규모가 '사고' 산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제조업 산재 하면 끼임·부딪힘·추락·깔림·화재 등의 '사고'를 떠올리지만 수십년 노동으로 축적된 질병 요인이 산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질병 산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근골격계질환이다.

상식을 깨고 거대한 변화가 벌어지기까지 근골격계질환을 소개하고 연구해 온 많은 노동안전 전문가들의 기여도 컸지만, 나는 이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쪽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1990~2000년대 민주노조운동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 시절 제조업 사업장 노동안전 간부·활동가들은 "꾀병 갖고 억지 부린다"는 자본의 악선전만이 아니라 "이건 골병이지 산재가 아니"라는 조합원들의 잘못된 상식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주야맞교대로 조립·용접 업무를 하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어려운 단어로 가득 찬 책으로 이 질환에 대해 학습했다.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반대로 현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선전·교육 자료를 만들어내야 했다. 수많은 실태조사가 노조 간부·활동가들 손에서 직접 설계되었고, 현장을 발로 뛰며 실태조사가 벌어지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사례가 수집되었다.

노동안전에 진심이었던 민주노조운동

실태조사는 기계적 설문조사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억울한 사연 모음집이었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꾀병 아니냐 놀려대요."

"그동안 맞은 침과 뜸, 한약만 해도 몇 년치 연봉은 됩니다."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살 충동이 생길 정도에요."

"오늘은 사표 내야지 출근할 때마다 다짐했다가 포기하길 몇 번이나 했는지…."

억울한 사연이 쌓일 때마다 노동안전 간부·활동가들의 확신도 깊어졌다. 처음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는데 조합원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토록 절절한 얘기와 사례를 모아갔는데도 꾀병 취급하는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분노가 쌓이며 점거농성도 이어졌고 조합원을 위해 기꺼이 감옥에 가는 간부·활동가도 생겼다.

그 시절 민주노조운동은 임금·고용 못지않게 노동안전·산업안전을 중요한 의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노동안전을 전문 분야로 파고드는 간부·활동가도 제법 있었는데, 밀레니엄(2000년) 전후로 민주노조운동은 중요한 실험을 시도한다. 단위노조 위원장 바뀔 때마다 간부를 모조리 교체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최소한 산업안전·노동안전은 전문성 고려해서 연속성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전문성에서도 노조가 앞서다

실제로 주요 노조가 이를 실행에 옮겼다. 정부의 산업안전 담당 공무원도 1~2년 주기로 바뀌고, 회사 안전담당자도 2년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에는 이제 집행부에서 최소 4~5년 잔뼈가 굵은 노동안전 전문 간부·활동가들이 포진하게 된다. 정부나 자본도 해내지 못한 일을 노동조합이 감행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노동안전·산업안전 파트에서 조직력·투쟁력만이 아니라 정책역량과 전문성까지 노조운동이 정권과 자본을 앞선 때가 바로 이 시기(2000년대 초중반)였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여세를 몰아 심야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주간연속 2교대를 밀어붙이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다.

멀쩡히 출근한 노동자가 탈의실에서 사망, 작업 중 휴게실에서 잠시 조는 줄 알았는데 사망한 채로 발견, 이틀 연속 특근 후 집에서 잠자다 숨진 채 발견…. 사인을 조사해 보면 모두 심장이나 뇌혈관 문제로 세상에선 '돌연사'로만 치부했던 이런 사망사고의 원인이, 장기간 반복된 심야노동에 있음을 밝혀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IMF 구제금융 시기 정리해고·구조조정의 광풍 속에 상당한 후퇴와 타격을 입었던 민주노조운동은, 2000년대 들어 근골격계 산재 인정과 주간연속 2교대 등 노동안전을 의제로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다. 구조조정으로 주춤했던 임금인상률도 꽤 회복되었는데, 노동안전에 대한 현장의 높은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임금인상이라는 자본의 양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산재 1위 배달 라이더, 중대재해는 0건?

올해 상반기에만 16명의 배달 라이더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어가는데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혹시 중대재해법은 플랫폼노동에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중대재해법의 '종사자' 개념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이 아니라 도급·위탁계약 등으로 일하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모두 포함된다.

다만 노동자 또는 종사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해서 무조건 중대재해가 되는 건 아니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나 안전·보건 관련 법령을 위반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배달 라이더를 비롯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산안법 조항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사업주는 폭언·폭행 매뉴얼 제공 등 아주 간단한 몇 가지의 '안전보건조치'만 하면 모든 의무와 책임을 벗는다. 배달 라이더를 위한 산안법 적용 조항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으니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하려고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이는 구실을 찾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용노동부가 2021년에 제작·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펼쳐보았다. 중대재해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관계법령"에는 산안법과 함께 생활물류서비스법(생물법) 제36조가 포함된다고 적힌 대목을 발견했다. 생물법은 택배·배달 분야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니 배달 라이더가 적용대상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36조(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의 보호) ① 생활물류서비스사업자는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1.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제공

2. 생활물류시설 내 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위하여 필요한 주행로, 차량접안시설 등의 공간 및 시설의 충분한 확보

3. 혹서, 혹한, 폭우 또는 폭설 등 기상악화로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의 활동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한 안전대책의 마련

② 생활물류서비스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가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 정도 법률조항이라면 얼마 전 쿠팡이츠 골드플러스 리워드 조건을 충족하느라 하루 12~14시간씩 일하다 군포에서 버스에 치어 사망한 라이더유니온 고(故) 김용진 조합원 사건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수락률 90% 이상을 유지하면서 2주간 400건을 수행해야만 하는 조건, 특히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8월 초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다.

대기시간을 감안해 30분에 1건, 1시간에 2건의 배달을 수행한다 가정하면 2주 간 400건은 1주 100시간의 초장시간 노동에 해당한다. 20분에 1건, 1시간에 3건이라 가정해도 1주 67시간 노동으로 '과로사' 요건을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폭염과 폭우 속의 도로 위에서 이 정도 장시간노동이라면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하려고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이는 핑계와 구실을 찾는다고 했다.

알고리즘으로 행동패턴 통제하는 플랫폼기업

"본인이 자기 오토바이 타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앱을 켜고 배달을 하다가, 본인 또는 상대방 과실로 사고가 났다. 여기에 어떻게 플랫폼기업 책임을 물을 수 있나? 플랫폼기업이 도로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산을 더 넘어야 한다. 골병은 산재가 아니라는 인식만큼이나 강력한, 라이더 사고는 중대재해가 아니라는 인식 말이다. 플랫폼기업이 도로사정을 책임질 수는 없다. 플랫폼기업이 책임져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그들은 온갖 알고리즘을 동원해 라이더의 도로 위 행동패턴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배달 라이더에게 주행 중 응답을 요구하는 휴대전화 스크린샷.

가장 대표적인 알고리즘은, 주행 중에 라이더들이 자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조작하도록 요구하는 것들이다. 배달 업무할당이 완료되면 배달 완료 예상시간이 계산된다. 그런데 예상시간을 초과할 경우 앱은 자동으로 라이더에게 배달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다른 어려움이 있는지, 그럴 경우 다른 라이더에게 배정할 것인지 등의 질문 메시지를 발송하게 된다.

플랫폼기업이 알고리즘을 이렇게 짜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조건 빨리", "고객 불만 없이 신속하게" 배달이 완료되도록 라이더를 압박하는 것이다. 문제는 라이더들이 주행 중에 장갑 벗고 스마트폰 잠금해제 후 일일이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답변하지 않으면 일감이 다른 라이더에게 가거나 다음 일감을 받는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행 중에 전화를 받는 것도 도로 위 사고 유발 요인인데, 전화받는 것보다 더 위험천만한 메신저 응대를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한다. 이거야말로 '산재를 유발하는 알고리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플랫폼기업이 도로사정을 통제하진 않지만, 라이더들의 도로 위 행동패턴을 알고리즘으로 통제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알고리즘 검증(Algorithm Inspection)

이미 유럽과 동남아 등 해외에서는 배달 라이더를 비롯한 플랫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알고리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배차·평가·가격 알고리즘과 로직이 라이더의 과속이나 휴식 부족, 주의분산을 유발하는지 위험성 영향평가나 정기적인 점검·감독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다.

주행 중 주문 수락이나 각종 메시지 응대를 요구하는 인터랙션 차단, 음성 또는 핸즈프리로의 소통 전환, 폭염·폭우 등 악천후나 러시아워에는 속도보다 안전 가중치 높이기, 연속 수락률이나 증시응답 페널티 폐지, 속도중립적 보상 재설계 등 대안에 대한 논의도 정말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해외 연구 사례가 지적하는 내용은 동일하다. 알고리즘을 직접 조사·감독하고 규제하지 않으면 배달 라이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A.I.(인공지능, Artificail Intelligence)에 대한 A.I.(알고리즘 검증, Algorithm Inspection)이 필요한 시점이다. 알고리즘을 검증해 낼 능력 있는 인재들을 교육·훈련하고 발굴하는 것도 시급하다.

"예전에는 라이더 사망사고를 중대재해 인정 안 하고 교통사고로 처리했다며? 위험한 알고리즘 조사도 안 하고 말이야. 6개월에 한 번씩 알고리즘 유해요인 조사가 이뤄지는 요즘에 비하면 참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네."

골병도 산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만들어냈던 민주노조운동, 그래서 정기적인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당연하게 만들어냈던 그 힘과 전통을 되살릴 때이다. 후배 세대들이 저렇게 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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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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