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성평등 목표치 낮게 설정하고 '목표 달성됐으니 평가지표 없앤다'?

여가부 소관 '성별영향평가 내실화 노력 지표' 삭제 위기 … 여성계 "기만"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내 성평등 관점을 평가하는 '성별영향평가 지표'가 삭제될 위기에 놓였다. 여성계에선 "이미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정책 연구기능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행정안전부와 여성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행안부 소속 지자체합동평가위원회 지표개발추진단은 이달 3일 열린 1차 회의에서 여성가족부 소관 '성별영향평가 내실화 노력' 지표의 삭제 여부를 심의했다. 추진단은 2025년 지자체 합동평가를 위한 지표들을 3차례에 걸쳐 심의한다.

행안부는 해당 심의의 1차 회의 당시 성별영향평가 내실화 노력 지표를 두고 "현재 지표로는 평가의 변별력이 부족하므로 대폭적인 지표 개선이 없으면 일몰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해당 지표가 '변별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2015년 도입된 이후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최근 3년간 모든 시‧도가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앞서 지난 24일 <한겨레>는 해당 회의에서 '성별영향평가 내실화 노력' 지표가 유지·보류·삭제 카테고리 중 '삭제'로 분류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행안부는 이에 대해서는 "지표 삭제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성별영향평가 지표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정책이 '성평등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지표다.

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사업 등이 성차별적이진 않은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정책적 시스템인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사업 구축의 핵심적인 요소로 꼽힌다.

벨기에 부처간조정그룹(IGC)의 성별영향평가, 캐나다의 젠더 기반 분석 플러스(GBA+) 평가 프로세스 등이 이에 속한다. 국내에선 현재 260개 광역·기초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성별영향평가 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이 같은 성주류화 사업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일관적으로 보여왔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여가부 발의 법률인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2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에서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의 설치를 '의무'에서 '선택'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위원회 또한 성별영향평가법에 따라 성별영향평가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구성되는데, 정부는 당시에도 "여가부 장관은 중앙위원회의 구성 목적을 달성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앙위원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법률개정안에 삽입했다. 성별영향평가 지표와 관련해 '모든 시·도가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다'는 이번 행안부의 설명과 그 궤를 같이 하는 모양새다.

이에 여성계는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여성가족부 기능 마비와 정책 집행을 방기"해온 윤석열 정부가 "이제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성별영향평가'까지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 등 국내 231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27일 공동성명을 내고 "지자체 합동평가 지표에서 성별영향평가 지표 삭제는 퇴행"이라며 "행정안전부의 성평등 정책 퇴행 시도 규탄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행안부가 성별영향평가 삭제 논의의 이유로 제시한 '변별력이 없다'는 설명을 두고 "높게 설정해야 할 목표치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정하고는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지표는 '평가 실시율'과 '정책개선 이행률'로 구성되며 두 기준 모두를 충족했을 때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평가하는데, 해당 지표의 2023년 실시율이 기존의 10%에서 7%로 하향조정되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비유하면 '성평등 목표치'를 낮게 설정해 놓은 후 "모든 시‧도가 목표치를 달성"했으니 더 이상의 성별영향 평가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단체들은 또 다른 목표치 달성 기준인 정책개선 이행률 목표치 또한 "최대치가 24%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 설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성별영향평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성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성별영향평가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성별영향평가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다"라며 "성별영향평가의 본래 목적에 따르면 시행되는 모든 사업이 기준을 달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했다는 이유로 지표를 삭제한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성별영향평가법'은 "정책의 수립과 시행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2011년 제정됐다. 단체들은 "성별영향평가 지표가 합동평가 지표에서 삭제된다면 이미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정책 연구기능은 더욱 약화될 것"이라며 "정부는 지표 삭제가 아닌 달성 목표치를 높여 정책의 효과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행안부는 <한겨레> 보도 이후 낸 입장문에서 "(해당 지표는) 여성가족부에서 지표를 재검토하여 수정안을 제출하였으며, 7월 28일 제2차 분과회의시 심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23 여성신년인사회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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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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