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UN서도 '여성부 폐지로 여성부 기능 강화' 답변 … 여성계는 "기만"

시민사회, UPR 한국정부 답변에 반발 … 여성·노동·성소수자 인권에 "거짓말 했다"

유엔(UN) 회원국 간에 이뤄지는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의 한국권고가 시행된 가운데, 국내 시민사회는 해당 자리에서 나온 한국정부의 답변이 "기만"이자 "거짓 답변"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4차 UPR 한국권고엔 유엔 소속 98개 회원국들이 모여 지난 2017년 3차 UPR 이후로부터의 국내 인권상황을 브리핑받고 권고사항을 전달했다. 법무부·외교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 10개 관계부처 합동 정부대표단(수석대표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자리에 참석했다.

법무부는 회의 종료 직후 "다수 국가에서 강제실종방지협약 가입,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가입, 인신매매방지법 제정, 대체복무제 도입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며 참석 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 시민사회의 의견은 달랐다. 당일 유엔 측 온라인 생중계 등으로 회의를 모니터링한 국내 시민단체들은 해당 자리에서 정부가 여성·노동·성소수자 인권 등과 관련해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한 정부의 답변이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일부 국가들은 앞선 사전질의와 이번 현장질의를 통해 국내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에 대한 우려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여가부가 폐지되어도) 여가부의 정책과 업무는 축소·약화되지 않을 것"이며, 기능 이관 등을 통해 "여성과 아동 등을 더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이번 답변은 부처 폐지에 찬성하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지난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밝혀온 입장과 그 내용이 같다. (관련기사 ☞ '김현숙의 역설' … '여가부 폐지'로 여가부 기능을 강화하겠다?) 야권 및 국내 여성계는 '여가부를 폐지함으로써 여가부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식의 해당 논리에 지속적인 비판 입장을 내비쳐왔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 참석한 정부대표단 ⓒ법무부 제공

지난 27일 정부 답변에 대해 비판 성명을 게재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성명에서 "여가부가 전담부처의 위상을 잃을 경우, 국무위원으로서의 심의·의결권, 전담부처의 입법권과 집행권이 상실되며,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성평등 정책 총괄⋅조정기능은 축소·폐지될 수밖에 없다"라며 "독립적인 성평등전담기관이 사라지고 복지부 산하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들어가는데 기존 업무가 축소되거나 약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되물었다.

같은 날 한국여성단체연합 또한 논평을 내고 "정부가 (UPR에서) 여성 인권 증진 측면에서 '개선되었다'고 설명한 많은 부분은 여태껏 법과 정책에서 성차별적 구조를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수많은 여성들의 피해 위에서 만들어졌고 개선되어 온 것들"이라며 "효율을 운운하며 (여가부) 부처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발상과 그에 따른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연합은 정부가 이번 UPR에서 △낙태죄 폐지 후속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 △강간죄 구성요건을 협박·폭행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는 권고 등을 받고서도 "법적인 공백", "관련 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황" 등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서는 국제인권기준의 '모범사례'가 되겠다고 공언했으면서도, 막상 "회원국의 질의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며 전혀 '모범 사례'가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단체들은 여성 이슈 외에도 노동·성소수자 인권 등에 관한 사안을 정부 답변상의 문제로 지목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정부가 "노동자의 노동3권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거짓 답변했다"라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음에도, (정부대표단은) 이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마치 한국에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양 답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대표단은 이번 UPR에서 국내 노동3권에 대한 타 국가 질의에 대해 "한국은 노동3권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매우 넓게 규정하고 있어 근로계약을 통해 사용자의 지시 감독을 받는 전통적인 고용 형태 외에도 화물차 지입차주, 배달 라이더 등 다양한 특고 노조 설립도 허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여당 측이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부터 강력한 반노조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단의 긍정적인 답변은 사실상 거짓 진술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바람' 측은 특히 정부대표단이 언급한 화물차 노동자와 관련해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노동자성과 노조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작년 파업 때는 '업무개시명령'을 받으며 탄압당했으며, 지금은 공정거래위 조사와 고발 협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단체는 정부가 UN 측에 "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이라 답변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2008년 이래 앵무새처럼 '검토중,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라며 해당 사안에 대한 정부의 답변을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4차 UPR 회의에 참석한 98개 회원국 중 총 17개 국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한국정부에 권고했지만, 회의 당일 정부대표단은 모두 브리핑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사실상의 불수용’ 입장을 고수했다. (관련기사 ☞ UN 권고도 무시? 한국, 인권브리핑에서 '성소수자' 내용 제외)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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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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